내 아마추어 사진동무는 함께 촬영을 갈 때면, 매번 자기가 가진 장비를 전부 다 가지고 왔다. 그가 배낭을 열었을 때, 촘촘하게 칸막이가 쳐진 수납공간이 한 곳도 비어있지 않고 렌즈로 빼곡히 차있는 걸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무거울 텐데 왜 그러느냐'고 내가 묻자, 그는 '어떤 사진을 찍게 될 지 몰라서' 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건 그 분이 초보사진가였을 때 얘기고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난) 요즘은 그렇지 않다. 시내에 나갈 때는 단렌즈를 끼운 카메라 한 대만 가져 가고 풍경사진을 찍으러 야외에 갈 때도 렌즈 두 세 개만 가방에 넣는다.
만약 사진을 찍을 때, 매 순간 그 상황에 맞는 화각의 렌즈가 준비되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실력’일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전부 다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어떤 것은 찍고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 관심 밖의 것을 포기하긴 쉽지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간절히 찍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그런 일을 줄이려면 사진에 관한 많은 경험과 식견은 물론이고 자기 앞에 펼쳐진 상황을 이해하는 통찰력도 필요할 것 같다.
경험이 많은 여행자가 배낭을 더 현명하게 채울 줄 아는 것처럼, 사진가방도 시간이 흐를수록 효율적으로 꾸리게 되어, 점점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다. 요점은 물론 가방 안에 꼭 필요한 장비만 넣고 쓰지 않을 장비는 넣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이 모자라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누적되면, 적은 장비를 들고 다니더라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 적절한 장치를 손에 든 채 기회를 맞이할 가능성도 점차 높아질 것이다. 동시에 스스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점점 더 분명해진다.
한편, '더 많이 포기할수록 더 많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렌즈 화각 선택과 사진가의 취향 또는 철학...
어떤 화각을 좋아하는 지를 보면, 나는 그 사진가의 취향과 사진에 대한 관점을 대강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어떤 사진기자는 ‘자기는 표준화각의 렌즈를 아예 쓰지 않는다’고 했다. 말을 들어볼 것도 없이, 그 이유는 ‘사진이 너무 평범해서’ 일 것이다. 표준렌즈의 화각은 사람 눈으로 본 상태와 흡사하다. 대단한 장면을 만나야만 대단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광각렌즈처럼 원근감이 과장되어 다이내믹하게 보이지 않고, 망원렌즈처럼 배경이 좁고 흐려져서 피사체가 부각되는 맛도 없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입장에서는, 들이대는 맛도 없고 끌어당기는 맛도 없어서 심심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특별한 사진을 얻기 힘든 측면이 있다.
진기한 장면을 사진에 담아서 사람들을 놀래 키고 싶을 때 광각렌즈로 근접해서 촬영하면 효과가 증폭된다. 원근감이 과장되고 왜곡되어, 별 것 아닌 피사체도 웅장해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멀리 있고, 접근이 힘든 피사체를 마치 코앞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실감나게 찍으려면 망원렌즈가 유용하다. 거리를 압축해서 보면, 화면에 가득 찬 사물의 모습이 극적으로 부각되어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된다. 그에 비하면 표준화각으로 보는 세상은 늘 보던 모습 그대로여서, 싱겁기만 하다. 그래서 자기 사진이 특별해 보이기를 원하는 사진가들은 표준 화각보다는 광각이나 망원렌즈의 화각을 더 좋아한다. 자극적인 것을 원할수록, 남들 시선을 끌고 싶을수록, 초 광각과 초 망원을 향해 마냥 치닫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어떤 사진가는 표준화각을 유난히 좋아한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중요하게 여긴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걸작은 표준화각에서 나온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사진의 성패가 주로 피사체에 달렸다’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진짜 좋은 걸 만나야지, 카메라를 이용해서 잔재주나 부리는 식으로는 결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주장이 그 말 속에 감춰져 있다는 뜻이다. 렌즈 화각을 이용한 극적인 표현효과는 잠시 사람들 시선을 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진의 본질적 가치와 무관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사진에서 정작 중요한 건, 사진을 찍는 순간 카메라 앞에 놓인 피사체와 그 공간이고 거기 담긴 의미라고 보는 것이다. 왜곡하거나 변형하면 의미가 약화되고 ‘실제’가 아예 날아 가버릴 수도 있다. 그는 필시, ‘픽션’이 아니라 ‘다큐’를 원할 것이다.
사진은 크기가 고정된 네모난 틀 안에 세상을 집어넣는 일이다. 틀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다양한 것들을 다양한 형태로 구성해서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무엇이 담겼는지 보면 사진가의 철학과 취향을 알 수 있고 어떻게 담았는지를 보면 그의 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전부 선택의 과정이고 그 선택의 중심에 렌즈화각이 있다. 사진가가 손에 들고 작업에 이용하는 ‘틀’의 성질이 바로 렌즈화각에 담겨있는 셈이다. 선택된 렌즈화각은 사진가의 시각을 규정짓고 시야가 미치는 범위를 통제할 뿐 아니라 사진의 감각적 외관에도 영향을 준다. 원근감이 변하고, 명암의 톤이 달라지고 이미지의 경계가 부드럽거나 날카로워 보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사진가의 선택이 렌즈화각에 의해 직접적으로 제약 받는다는 부분이다. 사진가는 자기의도를 펼치기 전에 항상 손에 쥔 카메라의 렌즈화각부터 들여다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작업을 하려면 그 일에 맞는 연장이 필요한데, 사진에서는 렌즈화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렌즈화각에 의해 피사체가 사진에 포함되는 범위가 정해지고 나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도 결정된다. 사진가는 자기가 화각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가지고 있는 렌즈 화각에 따라서 수시로 자기의도를 바꿀 수도 있다. 내 생각에, 전자가 이상(理想)이라면 후자는 현실이다. ‘그림의 떡’이라며 탄식하거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처지’가 되는 일을 사진에서 아주 흔하다. 그래서 렌즈화각 선택은 더 난해한 문제가 된다.
렌즈화각의 기본적인 성질...
망원 화각은 피사체를 담고 광각은 상황을 담는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망원 화각은좁은 범위가 프레임에 담기는데 비해 광각에는 넓은 범위가 포함되니, 당연히 갖게 되는 보편적 관점이다. 피사체와 배경이 차지하는 면적의 비율이나 '피사계 심도'같은 광학적 특성면에서도 망원렌즈가 피사체를 부각하기에 더 유리하다. 그래서 인물사진처럼 목표물(?)이 분명할 때는 망원렌즈를, 풍경사진처럼 전체적인 광경을 담을 때는 광각렌즈를 주로 쓰게 된다. 또한 망원화각은 사진가가 피동적인 입장이 되기 쉬운 반면, 광각렌즈는 더 능동적이 되는 경향도 있다. 그건 촬영거리와 화각의 기울기 때문이다. 광각으로 다가가서 찍을 때는 내가 요리조리 움직여서 다르게 찍을 수도 있지만 망원으로 멀리서 찍을 때는 특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따라서 '망원 화각을 쓰면 피사체를 부각하기에 좋고, 광각은 전체 상황을 묘사할 때 더 유리하다'는 식의 말은 설득력을 갖는다.
렌즈화각의 성질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추측이 '거의 사실에 가깝다'는 확신이 굳어진다. 망원렌즈를 좋아하는 사진가는 자기가 찍고자 하는 대상이 분명하다. 그는 주로 어떤 인물을, 동물을, 물체를 찍기 위해서 카메라를 든 것이다. 망원렌즈를 쓰면 시선의 방향이 분명하고 초점 문제가 긴박해진다. 배경이 좁고, 흐려져서 사진에 피사체가 부각된다. 게다가 사진이 거의 피사체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기가 돌아가서 볼 수 없으니) 새가 돌아 봐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먼 거리에서 사물을 보면 바라보는 각도와 시선의 방향이 별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의 성패가 거의 피사체와 그 움직임에 달려있고, 무기력한 사진가는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는 것이다.
한편 광각렌즈를 좋아하는 사진가는 피사체 그 자체보다는 사진(혹은 구성미)에 관심이 더 많다. 물론 사진에 (피사체 뿐 아니라) 배경을 포함한 주변이 다 담기고, 배경도 강력하게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점 문제에 느슨해지는 대신, 전체적인 프레임 구성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근거리에서는 자기가 움직여서 피사체와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고, 시점을 바꿔 가며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카메라와 피사체간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촬영위치와 앵글을 바꾸는데 따라 사진에 나타나는 효과도 다이내믹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두고도 다양한 그림이 나올 수 있기에 사진가는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물론 일반적인 풍경 촬영처럼, 단지 넓은 범위를 담을 목적에서 광각렌즈를 사용할 때는 그렇지 않다. 그 때는 내가 움직여서 사진에 변화를 줄 수 없으니, 망원렌즈로 촬영할 때와 마찬가지로, 피사체와 주어진 상황에 기대는 수 밖에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렌즈화각은 촬영 '범위'와 '거리'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광각렌즈는 넓게 찍으려고 사용할 때도 있고, 가까운 걸 찍기 위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망원렌즈는 좁게 찍거나 먼 것을 찍을 때 필요하다. 한데 내 생각에, '범위'의 관점보다는 '거리'의 관점에서 화각을 바라보는 편이 더 유리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의 관점을 갖는 것이다. '광각렌즈는 주로 가깝게 다가가서 찍는 용도로 쓰는 물건이다.' 그래서 광각렌즈를 끼웠을 때는 일단 피사체에 가깝게 들이대고 보는 것이다. 광각일수록 초점거리가 짧다. 따라서 근거리에 초점을 맞출 때 비로소 (피사계 심도 등) 렌즈의 광학적 표현력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생긴다.
기회의 문제 그리고 렌즈화각 선택의 기술...
오래 전에 나는 우연히 외국의 어떤 유명한 사진가가 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사람이 북적대는 홍대 앞 길거리에서 조수를 한 명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조수는 카메라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면서 그가 원하는 장비를 꺼내 건네주는 역할을 했다. 한 쪽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등에 배낭까지 멘 그는 다른 쪽 어깨와 목에도 카메라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골프장에서 캐디가 용도에 맞는 골프채를 꺼내서 건네주는 광경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기 앞에 나타날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진가의 열의도 느껴졌다. 나는 그의 열정이 눈물겨웠다.
‘장치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다’는 사진의 속성을 고려할 때, '적절한 장치를 선택하는 것'은 일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사항이다. 망치가 필요한 일에 해머를 들 수는 없는 문제다. ‘렌즈화각 선택’은 작업의 첫 단추를 꿰는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일의 전제조건이 되어, ‘기회를 누릴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피사체가 아득히 멀리 있는데, 지금 손에 쥔 카메라에 광각렌즈가 끼워져 있다면 속수무책이다. 사진 찍을 기회를 가지려면 먼저 그 상황에 맞는 화각의 렌즈가 끼워진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닭 쫓던 개’가 된다.
단지 현실적인 문제일 뿐이지만, 물리적 기계장치를 사용하는 작업이 갖는 한계이고, 사진가에게 늘 따라붙는 골칫거리 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줌렌즈가 개발되었고, 렌즈 하나에 어지간한 광각부터 상당한 망원화각까지 커버하는 광범위 줌렌즈도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편의성의 대가로 기능상의 약점을 떠안게 되어 선택에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든 것 같다. 단렌즈만큼 좋은 줌렌즈나, 커버하는 화각의 범위가 좁은 줌렌즈보다 더 좋은 광범위 줌렌즈는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기능이 좋을수록 부피가 커지고 무게가 무겁게 태어나는, 기계장치들의 숙명적 현상 역시 선택을 망설이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왜곡과 수차가 적으면서도 밝은 조리개가 장착된 렌즈를 작고 가볍게 만드는 건 물리법칙에도 위배되는 난망한 일이다.
아무튼, '사진은 기회의 문제다.'
여기서 '기회'란 물론 '사진 찍을 기회'를 말한다. 원하는 피사체를 만날 뿐 아니라, 그 때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어야 기회가 생긴다. 기회를 자주 가지면, 그러니까 자주 찍다 보면 좋은 사진을 건질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물론 실력이 좋아야 좋은 사진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감각이 '좋은 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고, 기술이 실수 없이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면, 좋은 사진을 찍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그 전에 (찍을) 기회부터 갖고 봐야 하니, 솜씨나 감각보다 더 중요한 건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실력발휘’도 눈앞에 좋은 것이 나타나고, 그 때 손에 카메라를 쥐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흔히 ‘사진은 발로 찍는다’며 유난히 ‘기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진가들도 많은 것처럼, ‘기회를 얻는 능력’이 곧 사진솜씨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렌즈화각은 '기회'와 관계가 깊다. 기회가 바로 코앞에 와 있어도 그 상황에 맞는 렌즈가 카메라에 끼워져 있지 않다면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찍는다고 해서 전부 사진이 되는 건 아니다. 최적의 프레임을 선택하는 것은 사진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망원렌즈로 당겨서 찍어야 할 대상을 광각렌즈로 아득히 멀게 담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진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상황에 맞는 렌즈화각으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기회는 항상 사진가가 현재 가지고 있는 렌즈화각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한편 가방에 넣을 렌즈화각을 선택하는 것은 곧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렌즈를 다 넣어갈 수는 없을 테니, 어차피 일부는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되도록이면, 좋아하는 대상이나 좋아하는 방식이 있다면, 그 사진을 위한 렌즈부터 챙겨야 한다. 하지만 사진이 늘 그렇듯, '나의 호불호'에 앞서는 건 '피사체와 그것이 놓인 외적조건'이다. 장소의 특성과 일기상태에 따른 여러 변수들을 먼저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렌즈 선택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가방이 크다고 해서, 굳이 가득 채우려고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몸이 지치면 열정도 시들해지기 마련이고, 가능성이 너무 많으면 집중하기 힘든 법이다. 내 경우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방이 가벼워지면서 선택의 범위도 점점 좁혀져 갔던 것 같다. 시간은 힘도 빼앗아가지만, 열정도 빼놓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군더더기를 줄이고 실속을 챙길 줄 알 만큼, 내가 약간 더 똑똑해져 갔던 것일 수도 있다. 가방에서 한 개라도 더 빼내려고 치열하게 고민을 하다 보니, 효율성이 커지고 실패는 점차 줄어 든 것도 같다. 아무튼 '선택'에는 '포기'가 따르기 때문에 (렌즈 화각 선택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나는 길거리에 나갈 때는 40mm 내외의 단렌즈를 끼우고 간다. 거리사진의 핵심은 아무래도 ‘속도’라고 봐야 한다. 원하는 게 눈에 보이면 바로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한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서면 풍경은 영화처럼 눈앞을 스쳐가고, 한 번 지나간 필름이 다시 재생되는 일은 없다. 상황은 매 순간 변하고, 움직이는 세상을 향해 샷을 날리는 식이다 보니, 눈이 빠르고 손도 빨라야 한다. 찬찬히 구도를 잡고 느긋하게 피사체를 향해서 초점 맞출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심지어 안 보고도 찍을 수 있어야 하고, 다음 장면을 미리 예측해서 셔터를 누를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결과물의 성패는 역시 ‘구성’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빛과 그림자와 건물과 사람의 움직임 등이 사진 프레임 안에서 미적 구성을 이루는 타이밍을 잡는 게 핵심이다.
화각이 넓으면 사진에 너무 많은 것이 포함되어 구성미를 기대하기 어렵고, 좁으면 초점 때문에 속도에서 불리하다. 그래서 어중간한 40mm내외의 렌즈를 주로 선택하게 된다. 초점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지 않으면서 왜곡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건물과 도로와 그 안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도시 길거리 구조와 규모를 고려할 때, 가장 적당한 촬영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화각이기도 하다. 다가서면 피사체를 부각할 수 있고 물러나면 상황을 설명하는 사진도 가능하다. 물론 좁은 골목이나 사람이 붐비는 곳에 들어서면, 좀 더 넓은 광각이 유리하고, 물러날 여유 공간이 충분한 곳으로 나오면 더 좁은 화각이 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약간 어두워도 덩치가 작고 구동속도가 빠른 렌즈가 낫다. 크기가 작아야 동작이 편하고 남들 시선을 덜 끌 수 있다. 조리개를 활짝 열어서 얕은 심도로 촬영하고 싶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제대로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어렵다. 초점 잡는 데 실패하면 사진을 버리기 때문에 선택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공연히 고성능의 커다란 렌즈를 들고 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인근 공원이나 집 주변으로 나갈 때는
최단촬영거리가 짧고 조리개가 많이 개방되는 35mm 내외의 광각 단렌즈와 매크로렌즈를 가져간다. 그 때는 주로 화단이나 숲 속 혹은 연못 등을 탐색해서 식물을 찍거나 구성 위주의 소박한 풍경사진을 찍게 된다. 충분히 여유 있게 촬영할 수 있어서, 매크로렌즈로 느긋하게 초점을 맞추거나 조리개를 활짝 연 광각렌즈를 피사체에 바싹 갖다 대고 찍는 것도 가능하다. 대부분 근거리 촬영이라 (피사체에 접근하기 쉬워서) 단렌즈를 가져 가도 된다. 한 낮에 빛이 거칠게 비치고 달리 볼거리가 없다고 판단되면, 주로 매크로렌즈를 끼우고 그늘진 곳을 들여다 본다. 그런 상황에서는 숲 속을 뒤지는 수밖에 달리 대안이 없다. 매크로렌즈로 좁은 공간을 탐색하다 보면, 빛의 상황이 어떻든, 뭘 하나 건져올 수 있다. 매크로렌즈는 별 볼일 없는 곳에서도 최소한의 사진찍을 거리를 제공해주는 마법 같은 물건이다. 하지만 실은... 나 때문에 매크로렌즈를 샀다가 그냥 서랍에 쟁여두는 사진동무들이 많았다. 그래서 노파심에 덧붙이는 말인데,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취향이 엇갈릴 수도 있는 물건인 것 같다.
여행에는 역시 광범위 줌렌즈다.
물론 ‘사진을 위한 여행‘이라면 풍경사진에서처럼 미리 정보를 얻어서 필요한 장비들을 챙겨야 한다. 하지만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는 경우’라면 사진장비는 최대한 간단하게 가져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진촬영이 여행에 방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24~105mm정도의 줌렌즈를 가져가면 못 찍을게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물론 그 렌즈 하나로는 품질이 뛰어나다거나 특별한 사진은 기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대신 피사체가 뛰어나고 특별할 테니, 사진 그 자체에 대한 기대는 약간 줄여도 괜찮지 않을까? 원래 새로운 것들로 마음이 들떠 있을 때는 관점을 피력하기도 힘든 법이다. 나는 낯선 여행지에서 허둥대며 이것저것 집적대지 않을 자신이 없다.
풍경사진을 찍으러 나설 때는 미리 그 장소에 대해 알아보고 렌즈를 챙긴다. 아무래도 잘 모르는 장소로 갈 때는 배낭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과 마주칠지, 뭘 찍게 될지 모르다 보니 이것저것 넣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풍경촬영의 특징은 얕은 심도를 활용할 일이 많지 않고, 촬영에 다소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점이다. 이건 곧 밝은 조리개를 가진 성능 좋은 고가의 렌즈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다만 대부분 넓은 공간이라, 이동이 어려워서, 줌렌즈가 없으면 곤란한 경우가 생긴다. 이른바 소위 ‘발 줌’이 안 통할 때가 많다는 뜻이다.
대부분 화각 구간 별로 몇 개의 줌렌즈를 가져가게 되고, 흔한 구성은 17~35mm 24~70mm 70~200mm 식이다. 여기서 한 개 빼고 싶으면, 나는 24~70mm를 뺀다. 경험상 셋 중에 제일 적게 사용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만, 잘 하는 짓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앞에서 예를 든, 그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기자와 같은 이유에서다. 만약 사진 품질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면, 충분한 광각부터 상당한 망원까지 넓은 범위의 화각을 전부 커버하는 광범위 줌렌즈 하나면 된다. 그러면 가방이 훨씬 가벼워진다.
하지만 어떤 렌즈를 선택하는 이유가 오직 화각 때문만은 아니다. 기능과 쓰임새에 따라서도 렌즈선택은 달라진다. 매크로렌즈가 필요할 수도 있고, 밝은 단렌즈가 유용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표준 줌렌즈를 뺄 때는, 그 대신에 밝은 매크로 렌즈나 단렌즈를 넣을 때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가방을 가볍게 하고 싶어서) 광범위 줌렌즈와 매크로렌즈나 밝은 광각 단렌즈 중 한 개만 가져갈 때도 있다. 풍경사진에 힘을 좀 빼고 그 대신 꽃사진이나 생태사진에 집중할 작정인 것이다. 풍경은 주로 광범위 줌렌즈로 찍고, 발밑으로 시선을 돌려서 식물이나 벌레를 탐색할 때는 매크로 렌즈나 광각단렌즈를 쓴다.
전에 내가 풍경사진을 좋아하지 않았던 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는 그랬다. 열정이 넘쳤고, 피사체보다는 ‘나의 역할’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잘 해야만(또는 내가 잘하기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은 생각이 약간 달라져서 풍경사진도 좋아한다. 아마 ‘내가 뭘 어떻게 한다‘는 것보다 ’만남 그 자체‘에 의미를 두게 된 것 같다. 좋은 걸 만나면 좋아서 (수첩에 ‘좋았다’라고 적듯이) 사진을 찍어두는 식인데, 전에는 그 이상의 의미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 때 나는 대게 어떤 장소로 찾아가서 적당한 위치에 카메라를 세우고 풍경이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풍경이 나타나면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아니면 사진을 찍지 못했다.
장소와 날씨 등의 외부 상황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그 방식이 나는 답답했고 그러고 있는 내가 마치 바보 같았다. 잠도 설치고 장시간 운전해서 어떤 장소에 찾아갔지만, 날씨가 여의치 않아 빈손으로 돌아올 때는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엇보다 광활한 풍경 앞에 서면, 앵글을 바꿔서 사진에 변화를 줄 수 없고, 프레임 구성에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풍경은 밑에서 올려다보거나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없고 옆으로 돌아가서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물러나거나 다가가기도 용이하지 않아 촬영거리와 풍경의 면적에 따라 일정한 화각의 렌즈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서, 사진을 남들과 다르게 찍을 여지도 거의 없었다. 멀리 있는 것들을 겨눌 때, '렌즈 화각'은 단지 프레임에 포함할 범위를 지정하는 기능을 할 뿐, 다른 쓸모는 없었던 것이다.
피사체에 의존해서 찍은 사진이다 보니, 사진에도 피사체만 보일 뿐, 사진가인 내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남이 찍은 사진과 내가 찍은 사진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고, 굳이 내가 그 풍경사진을 찍어야 할 이유를 찾기도 힘들었다. 나는 사진에 내가 조금 더 개입할 수 있는 방식에 끌렸던 것 같다. 그건 풍경이 나타날 때를 기다리는 대신, 내가 움직여서 좋은 관점(view)을 찾아내는 방식이었다. 적당한 장소에 찾아가서 걸어 다니면서 피사체를 탐색했다. 너무 넓지 않은 공간을 촬영영역으로 한정해서 멀리 있는 것보다는 가까운 것에 주로 시선을 두게 되었다. 점차 사용하는 렌즈화각이 넓어졌고 광각렌즈를 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다가갈까 물러설까, 앉을까 일어설까, 옆으로 돌아가서 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구성에 몰두했다. 화각이 넓은 렌즈를 끼우고 다가서서 찍는 것과 좁은 화각을 써서 물러서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을 지를 두고 고민할 기회도 가졌다. 그 모든 판단과 결정에는 내 취향과 기질이 작용했고, 사진에 그런 게 담길 가능성이 약간 열리는 것도 같았다.
참 ! 카메라 가방을 쌀 때 등장하는 또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바로 가방을 쌀 때, 카메라에 어떤 렌즈를 끼워 둘까 하는 부분이다. 나는 특히 이 부분에 대해 유난히 진지하게 고민하는 편이다. 물론 가방 안에는 여분의 렌즈가 들어있지만, 나는 미리 카메라에도 적당한 렌즈를 마운트한 채로 넣는다. 그 때 어떤 렌즈를 끼울 것인지가 큰 고민거리가 되는 것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렌즈부터 바꿔 끼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앉을 곳도 없고 배낭을 잠시 벗어 놓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엉거주춤 선 자세로 렌즈를 바꿔 끼울 때는 위험도 따른다. 바람이 많이 불고 먼지가 날아다니는 실외에서 렌즈를 교환하려고 디지털카메라의 마운트를 오래 열어두는 건 꺼림칙한 일이기도 하다. 당장 센서에 붙는 먼지만이 문제가 아니다. 마운트가 열렸을 때 들어간 먼지는 오랫동안 그 안에 살면서 두고두고 애를 먹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마운트가 열린 상태로 두는 시간이 짧아질 수 있게 동작을 효율적으로 구성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려고 애를 쓴다. 렌즈를 한 번도 교환하지 않고 촬영을 마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일 것이다.
무엇을 찍게 될 지, 어느 정도 거리에서 사진을 찍게 될 가능성이 높은 지 생각해보면 유용한 화각이 무엇인지 대충 판단할 수 있다. 맨 처음 마주칠 상황을 미리 예측해 보는 습관은 렌즈 교환 횟수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현장을 잘 아는 경우에는 미리 계획을 세워서 동선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렌즈교환을 위한 계획을 세워볼 수도 있다. 판단이 서면, 적당한 화각의 렌즈를 끼워서, 카메라를 가장 꺼내기 쉬운 위치에 넣는다. 물론 그 판단이 잘못되면 (미리 렌즈를 끼우지 않고) 빈 카메라를 가져가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현장을 확인한 다음에 맞는 렌즈를 골라서 끼우면 되지만, 나는 렌즈 한 개를 골라서 미리 마운트한 상태로 가져가는 편이다.
사진 찍기는 ‘반복해서 선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고 피사체를 선택하고 앵글과 프레임을 선택하고 장치를 선택하고 조리개와 셔터속도 등을 선택해서 사진을 찍는다. 선택은 기회와 관련이 있다. 선택한 결과가 사진으로 되지만, 나머지 선택되지 않은 수많은 기회들은 '포기한 사진'이 되는 셈이다. 좋은 선택이 좋은 기회와 연결되어 좋은 사진을 남기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현명한 사진가는 집에서 사진가방을 쌀 때 이미 첫 번째 선택이 시작된다는 걸 잘 안다. 어떤 화각의 렌즈를 가방에 넣으면 다른 화각으로 찍을 수 있는 사진은 포기하는 셈이 된다. 물론 렌즈 화각 만은 아닐 것이다. 삼각대가 없으면 야경이나 장노출 사진을 찍을 기회는 포기하는 게 되듯이 모든 장비가 선택에 영향을 준다.
사진의 성패가 어느 정도는 장비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좋은 장비가 좋은 사진을 제공한다’는 공식 역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장비를 제대로 쓸 줄 아는 것도 사진가의 능력이다. 비단 렌즈나 화각 문제 만은 아니다. 플래시를 비롯해서 (사진에 좋은 효과를 주는) 여러 장치들을 제대로 써먹으려면 일정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물론 손에 익히려면 반복된 연습으로 숙달할 시간도 필요하다. 장비는 자기 역량만큼 들고 다녀야 한다. 아니면 장비와 씨름하다가 기회를 다 놓칠 수도 있다. 손에 들 수도 없는 커다란 칼을 들고 싸우겠다면서 고집을 부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많이 포기할수록 더 많이 집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