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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둘과의 2주간 생존기

노년의 육아, 그 벅찬 행복과 현실 사이

by ninebtls

능력자? 애국자? 그저, 사랑하는 손주들의 할머니/할아버지일 뿐입니다!"


주변에서 손주 둘을 돌본다고 하면 흔히들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아들은 ‘애국자’라는 칭찬까지 듣곤 하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녀석들이 없는 집은 텅 빈 운동장처럼 썰렁합니다. 2주 전, 해외 출장으로 바쁜 아들 대신 며느리와 두 손주가 잠시 저희 집에서 지내기로 했을 때, ‘매일 손주들을 볼 수 있다니!’라는 설렘과 동시에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교차했던 건 우리(저와 아내)만의 비밀일 겁니다.

평소에는 서울에 있는 양가 부모님들이 1주일을 나눠서 번갈아 가며 손주들을 아들 집에서 돌봐주었기에, 이렇게 2주 동안 온전히 우리 집에서 손주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2주는, 짧지만 강렬한 ‘육아 전쟁’과 같았습니다.

24시간 풀가동, 예측 불허의 육아 현장


젖먹이 작은 손주와 에너지 넘치는 큰 손주가 함께하는 집은 24시간이 숨 막히는 풀코스 전투입니다.

AM 07:00: 젖병 소독과 분유 준비, 동시에 잠에서 들깬 몽롱한 상태에서 등원을 거부하는 큰 손주를 달래 옷을 입히는 아침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입니다.

1시간 거리의 어린이집을 차로 등원시키기 위해 며느리가 집을 나서면, 그 시간부터 저녁까지 젖먹이 손주는 온전히 우리의 몫이며 힘든 싸움이 시작됩니다.

PM 05:00: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큰 손주와 젖먹이 손주의 재회는 잠시의 평화를 깨고 다시금 활기 넘치는(때로는 정신없는) 혼돈의 저녁이 시작됨을 알립니다.

"할머니, 여기 다쳤어요!"라며 달려드는 큰 손주를 붙잡고 연고를 발라주는 사이, 젖먹이 손주는 눈 깜짝할 새 소파에서 굴러 떨어질 뻔합니다. 천사 같은 미소 뒤에는 예측 불가능한 행동들이 숨어있죠. 울음소리는 흡사 경보음처럼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이 순간, ‘방심은 곧 패배’라는 육아의 철칙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극한 상황에서 피어나는 생존 노하우


특별한 육아 비법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이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몇 가지 ‘기술’이 자연스럽게 습득되더군요.

레이더 가동, 24시간 경계 태세:

젖먹이는 순식간에 작은 물건을 입에 넣을 수 있고, 큰 손주는 이것저것 위험한 곳이나 물건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초집중 모드’는 필수입니다.


프로 배우 뺨치는 연기력과 순발력:

“할아버지도 공룡 엄청 좋아해!”라며 어설픈 티라노사우루스 흉내를 내다 허리가 삐끗하기도 하고,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1인 다역 성우처럼 목소리를 바꿔가며 연기해야 합니다. 수많은 질문에 일일이 가장 좋은 해답을 찾아 설명을 해야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젖먹이에게는 창밖의 움직이는 차를 보여주며 ‘시선 돌리기’는 이제 저의 필살기가 되었습니다.


무한 체력과 넓은 아량:

“할아버지, 힘들어! 안아줘!” 15kg에 육박하는 손주를 안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온몸의 에너지가 방전됩니다. 잠은 손주들의 스케줄에 맞춰야 하고, 새벽 3시에 울면 온 가족이 ‘비상 대기’ 상태에 모두 출동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피로는 사치일 뿐입니다.


위기관리 능력:

“엄마 보고 싶어!”라는 외침은 가장 강력한 위기 신호입니다. 이때는 엄마 이상의 매력적인 ‘대체재’를 즉시 제시해야 합니다. 비밀간식(며느리가 건강을 생각해서 안된다고 싫어하지만 우리만이 통하는 비밀 간식 초콜릿 등)이나 이불 그네 태우기는 효과 만점이죠.


작은 성장의 순간을 함께 기뻐하기: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처음 뒤집기에 성공했을 때, 배밀이로 장난감을 잡았을 때, 혼자 앉고 서고 걷기 시작했을 때, 서툰 말로 의사 표현을 할 때… 그 감격은 그 어떤 어려움도 잊게 하는 마법 같은 순간입니다.

고됨 속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행복의 감정

솔직히, 손주들을 돌보는 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퇴근 후 며느리가 건네는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라는 따뜻한 한마디,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해!”라며 달려와 안기는 손주의 작은 몸짓은 그 모든 피로를 눈 녹듯 사라지게 합니다.

노년의 육아는 분명 힘든 여정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처음 저희 아이들을 키울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감정들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손주들의 작은 성장 하나하나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고, 그들의 웃음은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는 행복을 선사합니다.

할머니/할아버지, 당신은 이미 슈퍼히어로입니다.

손주를 돌보는 것은 인생의 두 번째 육아라고들 합니다. 아이들은 우리를 다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저희 집안의 여러 가지 규칙들은 손주들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지기 일쑤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강력한 감정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손주들을 위해 헌신하고 계신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께 존경과 응원의 말씀을 전합니다. 당신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슈퍼히어로입니다!


며느리와 두 손주가 2주간 머물 우리 아파트에는 함께 타고 온 며느리 차는 외부 차량로 무한 주차가 안되고 월 100시간의 주차 허용시간을 초과되는 경우 시간당 500원씩 주차료를 관리비에 부과한다고 합니다.

출산 장려, 인구 감소 지원 특별법은 있으나 보완해야 할 다양한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실질적인 도움이 되겠네요. 아기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출장을 다녀온 아들이 이번 주 또 두 손주를 데리고 금요일 저녁에 와서 일요일 가겠다고 합니다. 우리 부부는 또 바빠집니다.

나는 화장실 청소와 아들 부부가 머물 방청소와 거실 믈걸레질, 창틀과 집안 전체 먼지 닦기, 기본 장난감 세팅(트램펄린:점프점프하는 거, 레고 테이블, 자동차, 몬테소리 장난감, 쟁가를 거실 적당한 장소 곳곳에 두는 것)하고 아들 부부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나도 잘 먹어 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 준비로 바쁩니다.

아들이 손주 둘을 데리고 집에 도착하면 우리 집은 다시 웃음꽃이 멈추지 않는 시끌벅적한 행복한 시간이 시작됩니다.

2박 3일 을 보내고 일요일 저녁 손주들 목욕까지 시키고 이제 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손주들과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보내는 순간 집안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허전함과 조용한 평화가 다시 시작됩니다.


손주들이 오면 좋고 놀다 집으로 가면 더 좋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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