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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사이로 스며든 세계의 얼굴

by ninebtls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고향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어릴 적 기억 속 그 조용하고 단조로운 읍내가, 이번엔 전혀 다른 얼굴로 저를 맞이했습니다.

시장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귀를 사로잡은 건
“사와디카~” “안냐하세요~” “테리마카시~”
이국적인 인사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금세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라고요.
식당 간판엔 베트남어·몽골어·우즈베키스탄어가 적혀 있고,
마트 한쪽엔 ‘Halal Food’ 코너도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어느 할아버지가 지나가시며 혼잣말처럼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요즘은 외국 사람 없으면 농사도, 식당도 안 돼요.”
한마디로 지금 시골의 현실을 다 담은 말이었습니다.


한국 농촌, 작은 지구촌이 되다.


이제 시골에 가면 논밭에서 만나는 분들의 국적이 정말 다양해요.
필리핀, 베트남, 몽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물론 도시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삿짐센터는 우베키스탄이 잡고 있다나??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 가면 세탁소를 하고 인도 사람들은 도넛가게를 하듯이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도 나라별로 전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하루만 걸어 다녀도 마치 세계 여행을 한 기분이 들 정도예요.

이분들은 더 이상 ‘일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진짜 우리 마을 주민이 되어가고 있어요.
주말이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여 향수를 달래며 자기네 나라 음식을 만들어 먹고,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한국 친구들과 똑같이 뛰놀아요.
한국어가 아직 서툴러도, 웃음소리만큼은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따뜻한 풍경입니다.


이미 와버린 다문화 사회


통계로도 확인되듯,
한국에 사는 외국인은 이제 270만 명을 훌쩍 넘었고, 전체 인구의 5% 이상이라고 합니다.

OECD 기준으로 이미 ‘다문화 사회’에 들어선 거죠.

특히 농촌의 변화 속도는 훨씬 빠릅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생긴 일손 부족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메워주고 있습니다.
어떤 마을은 농사짓는 열 명 중 여섯이 외국인이라고 할 정도니까요.
저출산·고령화가 이렇게 피부로 와닿은 적이 없었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


그래도 분명 좋은 변화입니다.
읍내의 빈 상점들이 베트남 쌀국숫집, 몽골식당으로 새로 문을 열고,
한때 ‘소멸위험 지역’이라 불리던 시골 작음 읍내가 이주민들 덕분에 다시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농촌에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어색함도 많습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말 한마디 못해서 혼자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쓰입니다.
특히 어르신들께는 이 변화가 너무 빠르고 낯설게 느껴지실 테니까요.

젊은 세대는 떠나고,
노인 세대와 외국인 근로자가 함께 사는 마을.
조금은 서툴지만, 새로운 형태의 한국 농촌이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중


이제 ‘혈통으로 하나인 단일민족’이라는 오래된 이야기는
조심스레 접어둘 때가 된 것 같아요.
다문화 사회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현실입니다.

중요한 건 “누가 왔는가”보다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조금씩 이해하려는 노력,
학교와 주민센터와 마을이 손잡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 이웃’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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