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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영 Sep 16. 2023

일어서는 건 어쩌면 한순간

생각의 변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힘

계속된 전학으로 친구 사귀기가 애매해진 상황에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고마운 친구가 있었다.

키도 크고 이쁘장하게 생긴 데다 반장이었는데, 키가 아담하고 귀엽게 생긴 친구와 함께 셋이 어울려 다니게 되었다.


이 친구들도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가족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 고민들을 함께 나누다 보니 빠르게 가까워졌다.


집이 점점 불편해지던 나는 하교 후 친구집에 자주 놀러 가게 되고,

수다를 떨면서 놀다 보면 잠시 걱정들을 잊게 되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

그날도 평소처럼 늦은 저녁, 좁고 긴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다. 

골목 중간쯤에 있는 우리 집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뒤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탁!)


순간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누군가 나를 잡아끌었고

동시에 놀라서 소리치자마자 입을 막았다.

손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소리 지르면 죽여버린다”

나를 협박하며 우리 집 바로 앞 주차장으로 끌고 들어갔다.


온몸으로 거부하며 발버둥 쳤지만 역부족이었다.


“가만히 있어”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일부러 얼굴을 또렷하게 보지 않았다.

내가 완전히 알아본다면, 나를 진짜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던 것..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다니, 기억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생각했다.

‘아... 난 이제 죽겠구나.. 그래, 그럼 증거라도 남기자.’


핸드폰 배터리가 완전히 나간 상태였는데

일부러 내 핸드폰을 뺏어 손으로 터치하도록 유도해야겠다는 생각에 전원을 켰다.


“뭐 하는 짓이야 xx”

불빛이 보이자 당황하며, 흥분한 상태로 급히 빼앗아 지문을 마구 묻히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뭐라도 남긴다면, 범인을 찾을 수 있겠지… 잘했어 ‘

그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생각한 나 자신을 칭찬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무모한 행동으로 수명을 더 빨리 단축시킬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들면서 조금 소름이 돋았다.


다행히도 그 후 조금 지나 경찰이 도착해서

나는 살 수 있었다.


언니가 잠깐이지만 약 2초 정도의 비명 소리를 듣고

왠지 모르게 께름칙해서 신고를 했다고 한다.


평소 골목에서 애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곤 했는데

한 번도 신고한 적 없던 언니가 그날은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후 현장 조사와 지문 감식,

몇 번의 반복된 질문에 상황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진술을 해야 했고, 나의 일상은 달라졌다.


지문이 불확실하게 찍혀있는 데다

비가 많이 내려 증거 부족으로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비 오는 날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택시에 기사님과 단둘이 있지 못해서 혼자서는 택시도 타지 못하게 되었고.., 버스에 혼자 남게 되면, 심장이 빠르게 뛰며 과호흡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중간에 내려버리기도 했다.


대낮에도 갑자기 길을 걷다가 구석진 곳이나 모퉁이가 보이면 누군가 있는듯한 인기척을 느껴 놀라거나 무서웠고 

환청이 들리거나 악몽에 시달리기도 해서

부모님 방에서 함께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엄마와 상담을 다니고 병원도 다녔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어느 순간,

스스로 생각을 바꿔버렸다.


처음엔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며 원망과 자책, 분노가 느껴졌지만


'그래도 살아 있어 다행이야'

'엄마와 이야기할 수 있음에 감사해'

'잠자고 일어나고 씻고 밥 먹고., ' 


해와 달이 뜨고, 하늘을 보며 걷는

그런 사소한 일들에 감사하게 되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고, 내가 숨 쉬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엄청난 가치를 느끼며 안도하곤 했었다.


그리곤 빠르게 회복하고 견뎌내는 스스로를 대견하다 여기고 '우리 가족 중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나는 초긍정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된다.


'내일이면 없을지도 모를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


나는 이전보다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마저 특별해졌다.


순간적인 생각의 변화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는 걸 처음 깨닫게 된 날, 그리고 그때의 마법 같던 긍정의 힘을 다시 떠올려 본다.


현재의 나는 잊고 있던 기억들을 꺼내보며

요즘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가 아닌'그저 행복하게 살면 된다'라고.


행복은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또다시 느끼고 있다.


또, 그 일이 생기고 난 후

언니도 아주 조금씩 변해갔다.


나는 경험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고,

언니는 시간이 지나며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며 스스로 깨달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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