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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주 Aug 02. 2022

'질문빈곤사회' 를 읽고.

우리 사회는 '질문부자사회'가 될 수 있을까?

연초, 중학교 2학년인 아들 성훈이가 나에게 질문 폭탄을 던졌다.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창조론이 정말 사실이야? 진화론은 과학적인데 창조론은 좀 의심이 가”

“하나님이 사람의 길을 이미 계획하셨다면, 지금 내가 열심히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다 결정되었다는 거잖아”

“꼭 교회를 가야만 하는 거야?”     


예상치 못한 질문들이었지만 「질문빈곤사회」를 읽고 난 후 이런 질문을 받아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구박받았을 성훈이였으니까.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다시 교회 가자는 나의 말에 귀찮음과 어깃장을 놓는 말이었겠지만 이제 머리가 커지면서 슬슬 스며드는 종교에 대한 질문이, 한편으론 부러웠다. 난 그러지 못했기에.


학교에서 질문하면 선생님께 건방진 아이, 교회에서 질문하면 믿음이 떨어진 성도, 사회에서 질문하면 불순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에서 그저 가르치는 대로, 믿으라는 대로, 말하는 대로 믿고 따르기만 했다. 그 결과 우리는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에, 진실을 외면하는 언론에, 물신만 남은 종교에 선동되고 있는 건 아닐까.     


저자(강남순 교수)는 우리 사회에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 질문이 없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정치, 사회, 종교, 교육, 언론 그 모든 영역에 무조건 따라가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던질 때 사유 주체(thinking subject), 판단 주체(judjing subject), 그리고 행동 주체(acting subject)가 될 수 있고 정치적, 종교적 선동에 의해 집단화돼 움직이는 전체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늘 질문을 던지셨다. 특히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 묻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순차적으로 질문하셨다. 나는 이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생각한다. ‘기독교 사업가’의 선동에 사유 기능이 마비된 채로 아멘을 부르짖지 않으려면 말이다. 주체적인 믿음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성훈이의 질문 폭탄은 제대로 된 믿음을 갖기 위한 주체적인 사유라고 믿고 싶다. 이를 통해 주체적인 판단, 주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전제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매우 공정해 보이는 말과 현상에 대해서도 저자는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공정의 탈을 쓴 능력 중심주의가 그것이다. 자신이 특정한 능력을 가진 것이 정말 자기 자신만의 노력과 능력 덕분일까?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오로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좌지우지되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으니 말이다. 

능력 중심주의 가치관에 사로잡힐 때 나는 당연히 대우를 받아야 하고, 자신보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패자로 간주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능력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늘 느끼게 되고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린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흑인, 아시아인, 이민자, 난민에게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사회가 연대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것들에 속지 말아야겠다.  

    

그 외에도 성소수자, 장애인, 난민들을 사회적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도 던진다. 그 누구도 ‘불법’인 인간은 없다, 존재를 부정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저자의 따끔함에 나는 정말 우리의 이웃들을 환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자신을 향한, 사회를 향한 무수한 질문은 결국 자크 데리다가 강조한 ‘함께 살아감’이 펼쳐 지는 인간적인 사회로 이끌어 간다.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구분 짓지 않고, 나와 다름을 혐오하지 않으며, 이웃을 환대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저자를 나는 작년 12월에 만났다. 책처럼 저자도 차가운 분일 줄 알았는데 웬걸, 다정함으로 무장한 분이셨다. 어쩌면 이 다정함과 애정이 있기에 이 책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성훈이가 질문 폭탄을 던졌을 때, ‘우와~어려운 질문이다. 엄마도 생각을 못했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하자’ 고 시간을 벌었다. 며칠 뒤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듣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알아보자고 합의했다. 만약 그때 “공부나 해”라든가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어” 등의 반응을 보였다면 성훈이는 어땠을까? 다신 나와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이 책이 고맙다. 


앞으로도 성훈이가 맘껏 질문하기를 바란다. 끊임없이 궁금해하기를 바란다.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게 바라보기를 바란다. 질문 빈곤 사회가 아닌 질문부자사회 속에서 우리가 좀 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덧 : 자크 데리다의 생각이 곳곳에 배어있는 이 책 덕분에 저자의 신간 「데리다와의 데이트」를 무척 기다리고 있다.


「질문빈곤사회」, 강남순, 2021, 행성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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