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보다 어여쁜 생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없네요. 딸이네요."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로 성별을 들었을 때였다. 딸을 바라고 바랐던 나였기에 '그것'이 없다는 뉴스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 분명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된 인간은 한번 더 확인하기에 이른다.
"딸이 맞는 거죠?"
의사 선생님. 짜증 안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왜 딸을 바랐을까? 그것은 명확하다. 나라는 존재를 투영하여 아들이라는 종족을 알고 있고, 어렵지 않게 부자간의 생활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와 어떻게 지냈는가. 중학교까지 갈 것도 없이 초등학교 5학년 넘어서부터 하루에 나누는 대화라는 것은 고작 '다녀오셨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3종 세트다. 말도 없이 미소조차 짓지 않고 같이 얼굴 마주할 일도 거의 없는 그런 아들이었다. 걱정 끼치기도 싫었고 부담주기도 싫은 그런 장남이었다.
하지만 딸이라는 포지션의 내 여동생은 다르다. 자신의 원하는 바를 거침없이 아버지께 Go 하고 뜻대로 안 되면 떼썼으며, 자주 전화해서 귀찮게 굴었다. 당시 내 눈에는 철없는 막냇동생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것은 대화다." 나는 하지 못했던, 하려 하지 않은 부모와의 대화다. 어느 날 술이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아들은 재미없더라. 사고치지도 않고, 걱정시키지도 않고, 귀찮게 굴지도 않아."
동의하옵니다. 그래서 딸을 원했다. 귀찮아지고 싶다.
그렇게 온 심장을 담아 기다리던 딸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의 아내는 미인이다. 비교적 그렇다고 하자. 쌍꺼풀 있는 큰 눈, 갸름한 턱선에 적당히 건강미 있는 피부색까지. 이런 엄마를 닮아 우리 딸은 얼마나 이쁠까?
아빠를 닮았다.
이것은 '지구는 태양을 돈다'만치 명확했다. 작은 눈과 발달한 콧방울. 갈매기 눈썹에 좁은 이마. 두터운 귓불. 호빵같이 둥근 얼굴. 까만 피부. 그리고 무엇보다 외까풀이다. 내가 무엇보다 갈망했던 쌍꺼풀이 아니었다. 큰 눈에 쌍꺼풀의 소유자인 내 아내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여보, 유전에는 우성과 열성이라는 것이 있어. 우성이 열성보다 유전될 확률이 높데. 예를 들면, 곱슬머리가 우성이야. 그래서 곱슬머리가 유전될 확률이 높은 거지. 우리 딸이 곱슬머리네? 여보랑 내가 곱슬머리잖아. 내가 알아보니깐 쌍꺼풀은 우성이래. 우리 딸이 무쌍이네? 그래서 혹시 여보......"
"아니야!"
한 대 맞을 뻔했다.
이건 생각 못했다. 아들이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이지 않았을 건데, 딸이다 보니깐 외모에 신경이 쓰인다. 그래, 쌍꺼풀 뭐 그런 거 나중에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있더라. 아내 말대로 나중에 AS 해주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상상 범위 바깥의 다른 사건이 있다.
내 딸은 털북숭이다.
태어날 때 머리털 말고도 온몸에 털을 한 움큼 지니고 나왔다. 저 많은 털은 대체 어디서 갖고 나온 거야? 등에서부터 어깨, 팔까지 수북한 검은 털이 자리 잡고 있고 가장 큰 문제는 얼굴에도 털이 잔뜩 자라나 있었다.
내가 마흔 넘는 세월을 사는 동안 여러 매체와 주위를 통해서 수많은 아이를 봐왔지만, 이렇게 털이 많은 신생아는 처음 본다. 내 딸이 털북숭이라는 사실은 나에게 큰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고, 내 당장 뭔가 해야 하지 않나 싶은 강박증에 빠지기도 했다. 사실 아들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리라. 내 친구 중에 임꺽정만치 털이 많은 놈들이 존재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선생님, 제 딸이 털이 많아요."
물어봤다. 걱정하지 말란다.
"친구야, 내 딸이 털이 많아."
물어봤다. 나중에 다 없어진단다. 야, 근데 너도 엄마가 처음이잖아.
'털이 많은 신생아'
검색창에도 물어봤다. 흔치 않지만 빠진단다.
정말일까. 나 혼자 걱정 단독 드리블인가. 아이가 저렇게 털북숭이로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사춘기를 지날 때, 눈작고 코가 뭉툭하고 털이 많아 보이는 아빠를 원망하지 않을까? 놀림받지 않을까? 그런 아빠도 너만치 털이 많지 않아. 이런 멍텅구리 생각을 하며 나의 초강력 DNA를 탓하며 육아 라이프를 진행한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털이 빠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에 있는 털이 사라지는 것을 시작으로 어깨와 등에서 털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오 마이 갓, 감사합니다. 무교지만 말이지. 그것뿐만이 아니라, 20개월 즈음부터 비교적 미인 엄마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도 아빠의 지분이 월등히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지.
어여쁜 내 딸아, 나중에 너는 너의 외모에 대하여 관심이 지대해질 그날이 온다. 아빠 닮았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며 둥근 얼굴을 갸름하게 만들거나 눈꺼풀에 테이프를 붙여서 쌍꺼풀을 만드는 노력을 할지도 몰라. 갈매기 눈썹을 다듬고 피부톤을 단정하게 만들려고 할 거야. 위로가 안될 수도 있는데, 아빠의 눈에는 너보다 어여쁜 생물은 이 세상에 없단다. 그리고 너의 시대에 무쌍이 유행하길 기원한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