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붕어빵 Apr 03. 2024

육아에는 차가 필요하다.

내가 차를 산 이유

    나는 차가 없다. 살면서 차의 소유 필요성에 대해서 느껴본 적이 없다. 물론 필요할 때도 있다. 서울을 벗어나거나 짐을 옮길 때는 필요하다. 필요하면 빌리면 된다. 결혼한 여동생에게 빌리던, 차고 넘치는 렌터카 업체의 도움을 받던, 방법은 있다. 오히려 차가 있으면 불편했다. 보험도 계약해야 하고 세금도 내야 하고 주기적으로 정비를 받고 빌라 근처에 주차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통체증이 싫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은 물론, 결혼 후에도 차가 필요할 때는 쏘카의 도움을 받았다. 차는 나에게 있어 사치품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여전히 나와 아내에게 차는 사치품이었다. 버스를 이용할 때는 아내가 아기띠를 매고(아빠는 뚱땡이라 아기띠가 안 맞는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유아차를 밀었다. 대중교통 이용에 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의 경우, 종착지의 엘리베이터 유무를 확인해야 하고 동선을 짜야했다. 버스에서는 아내가 타고 내릴 때 조심해야 한다. 심지어 하차하면서 아이를 안은 채로 앞으로 넘어진 아찔한 경험도 있다.

    차가 필요할 때는 쏘카를 이용했다. 집 근처에 쏘카 포인트가 많아서 이용이 편했다. 카시트를 집에 두고 필요시마다 쏘카에 장착해서 이용했다. 물론 카시트 설치와 분리에 불편함이 있지만, 우리 가족은 여전히 차를 바잉 목록에 올려두지 않았고, 그럴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두 가지 사건이 차의 필요성을 나에게 심어 주었다.


    쏘카는 반납 시간이 있다.

    휴대용 유아차를 구매하기 위해서 일산 킨텍스에 육아박람회를 가는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집 근처의 쏘카를 구하려 했지만, 아차, 근처에 시간 맞는 빈 쏘카가 없다. 결국에는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쏘카를 예약했다. 아기와 아내를 태우고 분위기 좋게 일산 전시회장에 도착했다. 돌아다니면서 박람회도 재밌게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유아차를 계약하고 시간 맞춰서 집으로 출발한다.

    그런데 이놈의 차가 당최 앞으로 못 나가는 거다. 사고가 있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자유로는 꽉 막혀서 엑셀 밟는 순간보다 브레이크 밟고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째깍째깍 시간이 간다. 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정시간은 점점 뒤로 미뤄져서 반납 예정시간을 넘어가고 있다. 반납 시간을 한시간 미뤄보려 했지만, 예약자가 있어서 30분 밖에 미루지 못하였다. 뒤에 카시트에 타고 있는 딸이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똥 싼 거 같은데?"


    불편한 표정의 아내가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시큼한 냄새가 스멀스멀 앞 좌석으로 흘러들어온다. 창을 열까 했는데, 이건 또 뭐야? 비가 온다. 시간은 촉박하고, 아이는 울고, 똥냄새에 차창도 열지 못한 채로 1시간 가까이 운행을 계속하여 반납지에 겨우 도착했다.

    평상시라면 집에 먼저 도착해서 아내와 아이를 내려주고, 카시트를 분리한 다음에 약속 시간 맞춰 쏘카 위치에 반납하는 프로세스다. 하지만 반납 시간이 이미 지나서 집에 먼저 들를 수는 없었다. 집에서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반납지에 시간 넘겨서 도착했다. 마음 놓을 새가 없다.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우산이 없다. 카시트도 분리해서 들고 가야 한다. 아이는 계속 울고 있다. 이 상황이 한심하고 울화가 치밀어도 표정에 드러내지 말자. 지금 나보다 아내가 더 힘들다.

    그렇게 세차게 내리는 비는 아니지만, 11월 저녁 7시의 비는 꽤나 차가웠다. 나는 유아차에 카시트를 싣고 밀면서 걷는다. 아내는 우는 아이를 패딩 안에 바싹 안고 내 뒤를 따른다. 조금이라도 비를 피할 수 있을까 싶어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아내는 중간중간 아이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다음날 몸살로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다행히 아이는 별 문제가 없었다. 아니다 문제가 없지 않다. 육아에 '병가'는 없다. 부모가 아파서는 안된다.


    응급 상황이란 것은 예기치 않기 때문에 무섭다.


    "여보, 아기가 열이 너무 많이 나."


    아내의 겁먹은 목소리에 벌떡 일어난 나는 시계를 확인한다. 새벽 2시. 아이는 그날따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깰 때마다 크게 울며 엄마를 불렀다. 아내는 잠도 못 자고 아이의 곁을 지키다 열이 높아 체온을 재본다.

    39도. 생각할 틈이 없다.


    "병원 가자."


    병원을 가야겠다고 했지만, 가까운 응급실조차 알아두지 않았다. 이런 멍청한 아빠같으니. 아이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들으며 근처 응급실을 검색한다. 이대서울병원. 멀지 않다. 차로 10분이면 도착한다.

    그런데 나는 차가 없다.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챙기고 아이 옷을 두껍게 입혀서 집을 나선다. 12월에 새벽 2시. 가장 추운 시간이다. 찬 공기를 느끼니 아이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 큰 길가로 한참 걸어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


    "이대서울병원 가주세요"

    "응급실 가시는 거예요?"

    그렇다고 하자 친절히 기사님께서는 응급실 문 앞에 우리를 내려주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병원 정문과 응급실은 한참 떨어져 있었다.


    코로나였다. 아내 역시 양성이었다. 아내와 아이는 그 상태로 특별 병동에 입원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무렵이어서 3일만 입원했지만, 퇴원이 더 문제였다.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우리 가족은 일반 택시를 탈 수는 없었고, 방역 택시를 잡아야 하는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30분을 그대로 방법을 찾아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결국 아이를 최대한 두껍게 입혀서 유아차에 태운 뒤 밖으로 나왔다. 12월의 추위와 싸우며 우리 가족은 그렇게 1시간 정도를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내 탓이 맞다. 차는 사치라고 생각한 내가 틀렸다. 아내와 딸이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차라는 운송수단이 필요했다. 우리는 차를 사기로 결심하고 약 1년간 돈을 모은 뒤, 5년 할부로 소형 SUV를 샀다. 차를 산 지금은 매주 차를 타고 외출하며 마트도 가고 멀리 공원도 간다. 물론 차 할부값과 기름값을 계산하면 지금 생활에 여유가 없지만, 지금 당장 내 가족의 편안함을 생각하면 치를만한 값어치를 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로 아빠가 엄마를 이길 수는 없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