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에 아이가 놀러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고 해서 급히 딸기 한 바구니를 샀다. 딸기가 제철이기도 했고, 반나절을 논다기에 빈손으로 보내기보단 아이들 간식거리를 챙겨 보내면 좋겠다 싶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아이 친구들도 종종 엄마 들려준 먹을거리를 가지고 올 때면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 때문에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기 가져왔는데 드세요."
아이를 들어보내며 딸기를 내밀었다. 반갑게 딸기를 받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망설이며 말했다.
"아.. 음.. 집에 이미 딸기가 있어서요. 그냥 가져가서 드세요."
딸기가 든 손은 급히 무안해졌고 이것을 다시 가져가야 말아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딸기를 받으면 좋아하겠지?라는 상상을 하며 구매했던 몇 시간 전의 일이 뭔가 잘못된 것인가 하는 자책이 들었다. 딸기가 있는지 먼저 물어보고 구매를 했어야 했나? 다시 가져가는 게 오히려 무례한 것이 아닌가? 하며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괜찮아요. 저는 필요 없으니 가져다 드세요^^
안 받아도 될 것 같아요."
받으셔도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안 받겠다며 재차 표현하여 더 이상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 네~ 그럼 그냥 가져갈게요."
사실 딸기를 사면서, 우리 집에서 먹을 딸기도 한 바구니 더 사둔 터라 먹어야 할 딸기는 금 새 두 바구니로 늘어났다. 당분간 딸기를 실컷 먹겠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지 못하게 넉넉한 딸기가 생겼음에도 마음은 전혀 넉넉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것은 딸기의 보유 여부에 따른 구매가 아닌 그저 성의를 보인 것뿐이었는데 주고 싶은 마음이 거절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꽤 예절 바른 성격이다. 이 예절의 이면에는 거리감이라는 게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나 신세 지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 어려운 일을 말하거나 부탁하는 것을 꺼린다. 집에 있는 딸기를 또 받아 냉장고를 꽉 채우기보다는, 내가 먹는 편이 좀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딸기를 받지 않는 편이 먹을 것을 더 나누는 행위이니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거절을 당한 것이었지만 그녀로서는 배려 방식이었다.
어린 시절, 거절의 미덕이라는 걸 무의식 중에 배웠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와 같은 발언은 꽤 예의 바른 행동이었다. 이 말에는 "당신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저는 괜찮으니 더 이상 마음 쓰지 마세요."라는 메시지가 숨어있다. 그래서인지 무엇을 받을 때 이런 말을 종종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아유, 괜찮은데 뭘 이런 걸 다. 다음엔 이런 거 안 주셔도 돼요."
무언가를 주고받을 때 사람들은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한다. 고맙다는 표현을 내세우면 너무 대놓고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나 보이니,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라며 상대방에게 괜찮다는 표현을 한다. 이런 배려는 저따위에게 너무 과분하다며 약간의 거절을 하는 미덕.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생활에서 이런 미덕을 배웠다.
솔직히 말하면, 선물을 받는 건 너무 기분 좋은 일이다. 그 마음을 속물처럼 내색하는 게 예의 바르지 않는다는 가르침은 기쁜 표현을 제한했다. 좋지만 좋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것. 그건 상대방을 위한 예의 바르고 배려가 담긴 행동으로 배웠었다.
그리고 20대의 한 시점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잘 받아들이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라는 내용을 어떤 심리학 책에서 읽고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호의를 온전히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과거에 남발했던 수많은 괜찮아요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도와 드릴까요?" "아니에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괜찮습니다."
"물 드릴까요?" "괜찮아요. 제가 갖다 먹을게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나름 배려한다고 대답했던 이런 말들이 반대로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내가 건네고자 했던 호의 역시 꽤 많은 순간 거절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거절은 예절이었음에도 이상하게 그걸 듣는 마음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생각해서 준비한 선물인데 다음엔 안 줘도 된다니 내가 괜한 짓을 한 걸까?'
'좋아할 줄 알았는데 불편해하네. 다음엔 이러지 말아야겠다.'
'이 사람은 받는 것을 어려워하는구나. 주지 않는 편이 좋겠다.'
결국엔 받더라도 거절의 미덕을 한 번씩 내비치고 마지못해 받는 순간들을 꽤 많이 경험했다. 나 역시 사회적 가르침으로 습관 된 표현들을 고치기 위해선 나름의 노력을 해야 했다.
"이거 저한테 마침 필요한 거였는데 선물해 주셔서 감사해요." "잘 쓸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들을 연습한다. 이런 것까지 뭘 연습하나 싶지만 감사의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려워하기보다는 AI처럼 툭툭 튀어나오는 대답이 조금 더 안정적이다. 쉬운 듯하면서도 이 상황이 닥치면 순간적으로 반응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마음속 연습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딸기 좋아하는데 잘 먹을게요."
이 말을 기대했는데 못 들어서 서운했을지 모르겠다. 정말 그 아이들은 딸기를 좋아해서 한 접시를 놔두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의 '드림'을 제안하는 것이 역으로 예의 바른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가까운 친인척, 회사 동료들 틈 사이 순간마다 거절의 미덕을 만난다. 요즘의 10대, 20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 윗세대에서는 여전히 거절의 미덕이 통하는 것 같다. 나는 내 방식대로 그들을 이해하며 무던히 지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무엇을 줄 때는 온전히 감사할 줄 마음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표현할 것이다. 받을 때의 미안함을 표현하기보단 주신 분이 흡족할 수 있게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