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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핑크 Nov 03. 2023

김하성의 골드 글러브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


최근 들어 야구 좋아하는 우리 집 두 남자들 때문에 자연스레 나도 야구의 세계에 빠지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유튜브로 올 시즌 핫했던 김하성의 경기 주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이름만 들었지 경기를 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쉴 새 없이 이야~를 연발하며 눈을 뗄 수 없었다.


"와~ 저렇게 플레이하면서 팀이 지면 너무 억울한데?"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며 팀의 승리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그의 노력들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0.1초가 아쉬워 맨손으로 공을 잡아 던지고, 누구보다 재빠르게 뛰어가 점프하면서 1루로 송구하는 몸놀림은 열정 그 자체로밖에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팀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시즌 초반부터 경기 영상을 챙겨보지 않아 자세한 경기 내용은 모르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을 하지 못했으니 그들의 목표는 이루지 못한 셈이었다.


팀이 지면 억울할 것 같다는 나의 심경을 알아차린 듯, 그는 최고의 수비수에게 주어지는 골드 글러브 2개 부문에서 최종 후보에 올랐다. 골드 글러브는 팀 성적과 상관없이 개인 기량으로 평가한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감독과 팀당 최대 6명으로 이뤄진 코치진의 투표, 미국 야구연구협회의 수비 지표를 합쳐 최종 수상자를 결정한다.






골드 글러상이 인상 깊었던 점은 팀의 성적과 상관없이 개인의 역량에 대한 평가와 보상 때문이었다.  


회사에서는 연말이 얼마 안 남은 이 무렵, 성과 평가 안내문을 받는다. 대체적으로 12월까지 업무 내용을 토대로 한 해 성과를 평가한다. 야구 시즌이 종료될 무렵 우승팀의 윤곽이 드러나듯, 회사에서는 연말이 다가오면 개인의 평가 결과도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팀원으로 있을 때는 성과 평가 알람이 와서야,

"내가 그동안 뭐 했더라?" 하면서 그동안의 업무를 정리하고,

"저는 놀지 않고 이렇게 열심히 일했답니다."를 최대한 어필하며 한 해의 성과를 정리했었다.


팀장이 되고 나니, 팀원들의 개별 성과도 내게는 중요한 업무가 되었다. 가을이 다가오면서 연초에 계획한 업무를 완수했는지, 그 결과는 어땠는지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사가 볼 때, "J 과장은 요즘 무슨 일 하고 있나요? 그동안 뭐 하고 있었는지 도통 모르겠네." 보다는,


"J 과장 이번에 커뮤니티 론칭하고 서비스 반응이 좋던데 준비를 많이 한 것 같네요." 하며 팀원의 칭찬을 듣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다.




IT업계는 사람과 컴퓨터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니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이다. 어떤 기획자가 어떤 디자이너와 개발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서비스 질과 개발의 퀄리티까지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그런 면에서 몇몇 팀원들은 면담 때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할 일을 모두 했는데  프로젝트의 다른 참여자가 성실히 임하지 않았거나, 다른 프로젝트의 우선순위에 밀려 원하는 시기에 완성되지 못한 경우 등 스스로가 할 수 없는 영역의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하성의 플레이에서 인상 깊은 것은 공이 애먼 데로 날아와도 어느샌가 그 앞에 서서 공을 잡아채고, 누구보다 빠르게 던져 아웃 카운트를 만들어 내는 점이었다. 비록 불가항력의 거리와 타자의 재빠른 달리기로 인해 세이프를 허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지라도 일단 공을 잡으면 최대한 빠르게 던져본다. 아웃이 될지 안될지는 던져봐야 아는 것이니까.


혼자만으로 이룰 수 없는 영역들 때문에 아쉬워만 하다가는 아웃 카운트를 만들어 낼 확률을 얻을 수 없다. 개발팀이 바빠 내가 만든 기획이 시작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놓일 때. 손 놓고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직접 만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개발이 필요 없는 리서치나 계획안, 이미 배포한 성과를 분석하는 등 빈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음을 증명해내야 한다. 오히려 두세 달 후에 신규 서비스로 준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크게 힘쓰지 않았는데 프로젝트가 물처럼 잘 흘러가면 좋으련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데도 여전히 장애물에 걸려서 허우적대는 날이 더 많다.


지난해에는 복직을 하고 회사 생활을 통틀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해찰 없이 일을 했다. 그럼에도 프로젝트 결과가 미비했고 나의 성과 역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삼진이 될지 안타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타선처럼, 내 일에도 알 수 없는 변수가 잦아 예정대로 잘 흘러가 주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팀원들이 12월까지 남은 두 달 동안 무엇을 완수할 수 있는지 나누고 있다. 과거의 나를 비추어,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 내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상황으로 인해 할 수 없는 것은 내년으로 미룬다. 올해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대한 마무리하여 성과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하성의 골드 글러브 후보 선정은 프로젝트의 성패에 따라 평가를 받는 환경에서 새로운 시점을 찾을 수 있었다. 골드 글러브는 개인의 역량과 노력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고 있어 팀의 성패와는 무관하다. 비록 내가 받지 못하더라도 이런 불가항력의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볼 수 있으니 대리만족을 느껴본다.


내가 속해 있는 곳에 골드 글러브 제도는 없지만, 스스로에게 골드 글러를 선사하며 올 한 해 괜찮았다고 위로해보고 싶다. 프로젝트의 성패와 상관없이 우리는 골드 글러브를 받을만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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