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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핑크 Sep 22. 2023

나의 상사는 목적에 집착했다.

목적 챙기셨나요?


기획을 시작할 때 화두는 무엇을 어떻게 만들까?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한 장으로 간략히 써야 하는 미션을 완수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학생 때에는 트리트먼트(treatment)라는 조금 생소한 단어로 교수님께 과제 요청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트리트먼트는 영화 시나리오의 초안이라는 의미로 내가 만들어야 할 콘텐츠의 간략한 설명서이다. 영화를 예매하기 전 간략히 내용을 볼 수 있는 영화 소개 내용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정의서, 기획 정의 서라는 문서라고 불리며 일의 첫 단추를 꿴다.


프로젝트 정의서에는 대략적으로 배경, 목적, 진행 방향, 개발 항목, 일정 등이 기본 사항으로 작성된다. 배경은 내가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한 문장 정도로 요약을 하고 이어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목적 항목에 나열한다. 진행할 프로젝트의 내용을 한 장에 요약해서 설명된 문서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결과물을 향해 진행될 것인지를 한 번에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기획 문서를 만드는 작업만큼이나 많은 소요시간이 들기도 한다.




나의 상사는 매번 프로젝트의 목적 문장에 집착했다. 진행 방향, 개발 항목에서 이미 할 일들이 무수히 나열되었는데도 목적 문장이 이상하다며 여러 차례 수정 피드백을 요구해 왔다. 목적이 잘못되면 아래 내용은 대부분 잘 정리가 되어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목적에는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결과물(성과)을 예측할만한 단서도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 더 설득력이 더 높아진다.


그렇게 이 일을 오랜 기간 하다 보니 목적을 작성할 때만큼은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가급적 모호하지 않은 표현과 명료한 단어를 사용해서  담백한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목적에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은 단순히 상사의 취향에 맞춘 ‘문서 작성 시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된 점은 우리의 시간이 돈과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월급을 주며 나에게 투자를 하는 것이고 그 결과물이 너무 늦지 않게 나오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낭비하는 시간 없이 결과물이 나오려면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기민하게 수행해야 한다. 그러니 이 초반부의 작업은 중요하고 또 중요할 수밖에 없다.


왜 하려고 하는가? 무엇을 위해 하는가?

그래서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해 보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도 비단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나의 고용주이니까,

내가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시간뿐이니까. 

이 시간을 써서 나올 결과물을 상상해 본다.

 

특히나 글을 쓰는 과정에는 이 생각을 여러 번 한다. 


이 글은 왜 쓰는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SNS를 보며 쉴 것인가 글을 쓸 것인가?

잠을 더 잘 것인가 한번 더 탈고할 것인가?


뚜렷하게 이루어야 할 성과가 있기보다는 그냥 하고 싶어서 쓰는 것이니 가끔은 이런 질문들이 스스로를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쓰다가 목적을 잃어 멈추어 버리기도 한다. 당장 하지 않아도 어떻게 되는 게 아닐 텐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야 하는가? 라며 쓰지 않아도 될 이유를 만들기도 한다.


글을 쓰는 것이든,

이루고 싶은 것이든,

목적을 가꾸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상사가 그렇게 집착한 목적에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의 답이 목적에 숨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어떤 결과물이 손에 닿지 않지만 스스로를 세울 수 있는 무기가 되기를 바라며 조금씩 시간 투자를 해보기로 했다. 언제 가는 나만의 목적을 찾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희망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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