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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네씨 Feb 02. 2024

먹지 마세요, 믿음에 양보하세요

영화 <클럽 제로>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사실이 만약 거짓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예컨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는가? 이런 흥미로운 물음 앞에 도착한 영화 <클럽 제로>는 순종과 복종 사이,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있으나 어딘가 섬뜩한 한 인물에 의해 발현되고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인물의 정체는 바로 엘리트 기숙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양교사 '미스 노백'이다. <클럽 제로>는 특별한 식사법을 가르치는 미스 노백과 그를 맹신하는 학교 학생들의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충격적인 소재와 감각적인 색채로 눈길을 사로잡는 <클럽 제로>는 작년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경쟁작으로 선정됐으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되어 많은 관객에게 호평을 이끌어냈다. 주연을 맡은 미아 와시코브스카는 <클럽 제로>를 준비하면서 예시카 하우스너 감독과 미스 노백이 가진 동기와 의도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했다. 그는 "미스 노백이 스스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자신의 가르침이 실제 아이들을 돕고 있다고 굳건하게 믿고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에 뒤쳐지지 않는 연기력을 펼치는 아역들이 출연하며 극의 긴장감은 갈수록 고조된다.


※ 이 글은 <클럽 제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TEP 1. 깊게 심호흡하고 눈앞의 음식에만 집중해 보세요
STEP 2. 한 번에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어보세요
STEP 3.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세요
모든 단계를 통과한 여러분을 이제 '클럽 제로'의 회원으로 임명합니다!


의식적 식사를 의식한다는 것


미스 노백은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직접 만든 자료를 이용해 '의식적 식사'를 가르친다. 미스 노백이 제안하는 이 식사법은 다음과 같다. 눈앞의 음식을 천천히 응시하면서 먹으면 음식을 먹는 속도가 줄고 자연스럽게 먹는 양도 줄게 된다. 그렇게 음식을 적게 먹으면 환경을 지킬 수 있고, 소비주의에 맞서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마음의 평화까지 얻게 된다는 것이 미스 노백의 주장이다. 적게 먹으면 오히려 더 오래 살 수 있고 건강해질 수 있으며 환경 보호까지 할 수 있다는 미스 노백의 가르침에 동의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학생들도 있다.


의식적 식사를 하는 것은 단지 아이들이 먹을 것을 줄이는 대신 자신의 결핍이나 부모나 사회로부터의 기대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미스 노백의 역할인 만큼, 그의 관심을 받은 학생들은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열고 믿음으로 보답한다. 의식적 식사법을 성공적으로 터득한 학생들은 그의 지도를 받고 다음 단계로 향하며, 채식 위주의 '식물성 모노 다이어트'를 거쳐 아예 음식으로부터 해방되는 금식이라는 최종 단계에 도전한다. 영양의 문제로 시작하지만, 결국 믿음의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다.



결핍과 기대가 만든 환상


마찬가지로 미스 노백의 생각이 아이들을 어떻게 조종하는지 살펴보자. 의식적 식사와 식물성 모노 다이어트 두 단계를 통과한 '라그나'와 '엘사'에게 금식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클럽 제로'에 대해 설명하는 미스 노백은 자신 역시 클럽 제로의 회원이며 신체와 정신 건강, 환경을 위해서는 먹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펼친다. 선뜻 믿기 어려운 클럽 제로의 모토에도 '프레드'와 '벤'까지 합류하며 이들은 크리스마스 당일 미스 노백을 따라 클럽 제로의 일원이 된다.


라그나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는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을 갖고 있고, 엘사는 아버지에게 먹기를 강요받는 동시에 섭식장애를 앓고 있으며, 선천적 당뇨병을 앓고 있는 프레드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외로움을 느끼고, 벤은 싱글맘이자 워킹맘인 엄마를 기쁘게 할 전액 장학금을 받기 위해 미스 노백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특히 벤은 처음에 미스 노백의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식사법도 따르지 않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의심을 거두고 미스 노백의 말을 따르게 된다. 이처럼 <클럽 제로>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또래 집단 내의 욕망과 역학 관계, 믿음과 신뢰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가 던지는 우리에게 던지는 서늘한 질문은 '먹지 않고 살 수 있는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실인 것에 사실이 아니라는 믿음이 과연 통할 수 있는가'이다. 우리 주변에는 음식을 먹는 것 외에도 여러 행위를 통해 신뢰를 형성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면면을 포착할 수 있다. 그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해보는 것도 영화가 제시하는 하나의 액션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나쁜 방식으로 아이들을 조종하는 어른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미스 노백은 결국 학부모회에 의해 학교에서 쫒겨나게 되지만 학생들과 계속해서 접촉하게 되는데, 과연 그 끈끈한 관계를 어떻게 분리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끔 한다.


끝으로 영화 <클럽 제로>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조종과 믿음에 관한 현대적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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