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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네씨 Feb 22. 2024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체리 주빌레

영화 <바튼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수상작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과 폴 지아마티의 재회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 <바튼 아카데미>가 2월 21일 국내 개봉했다. 둘의 재회는 20년 만으로 <사이드웨이>의 후속작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영화의 외적인 성과를 짚어보자면 제81회 골든 글로브 2관왕 수상, 제96회 아카데미 5개 부문 노미네이트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미리 만나볼 수 있었고, 필자는 는 오늘부로 3번째 관람을 마쳤다.


영화의 원제인 'The Holdovers'는 '남겨진 자들', '남겨진 것들'을 의미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화는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자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한 장소에 정박하게 되는 이들인데 각자 느끼는 감정도 각자 지닌 상처도 다르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주특기인 일상 코미디물로, 기쁨과 슬픔을 오가는, 신랄함과 따뜻함이 교차하는 감동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 이 글은 <바튼 아카데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70년, 미국의 명문 사립고등학교 '바튼 아카데미'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휴가를 맞아 떠나려는 학생들과 교사들로 분주하다. 그러나 고대 세계사를 가르치는 교사 폴 허넘(폴 지아마티)은 학교에 남게 된다. 개인 사정으로 집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돌볼 교사가 꼭 한 명씩은 상주해야 되기 때문이다. 학생 중에는 유일하게 남은 앵거스 털리(도미닉 세사). 재혼한 어머니의 신혼여행 일정으로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지내게 되는 처지다. 그리고 얼마 전 베트남전 참전으로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바튼 아카데미 출신의 아들을 잃은 교내식당 주방장 메리(데이바인 조이 랜돌프)까지, 세 사람은 덩그러니 학교에 남겨진다. 이들은 원치 않았던 동거동락을 시작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순간 서로의 비밀을 하나둘씩 공유하면서 특별한 감정을 쌓아가게 된다.



연기력과 연출력의 앙상블


우선 주목할 것은 배우들의 일품 연기다. 고지식하면서도 고(高)지식한 교사 연할을 탁월하게 연기하는 폴 지아마티를 비롯해 메리 역을 맡은 더바이 조이 랜돌프는 제77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을 수상한 바와 같이 안정된 연기력을 펼치고, 신인 배우인 도미닉 세사는 풋풋한 학생 모습을 보여준다. 인물들의 서사를 쌓아두고 셋의 케미스트리를 폭발시키는 감독의 노련함도 돋보인다. 이렇듯 배우들의 연기력은 감독의 연출력과 결합하며 빛을 발한다. 그렇다면 감독은 연출 면에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여실히 나타내기 위해 촬영부터 후반 작업에 힘을 쏟았다. 그는 "아예 7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처럼 제작하고 싶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우선 영화 세트를 짓지 않고 미국 동부 뉴잉글랜드주에 위치한 '디어 필드 아카데미'라는 곳에서 1.66:1의 화면비로 촬영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지만 후반 작업을 통해 스크레치 노이즈를 만들고, 모노로 녹음하여 사운드의 입체적인 특징을 살렸다. 쇼킹 블루(Shocking Blue)의 '비너스(Venus)'부터 더 템테이션(The temptation)의 '사일런트 나이트(Silent Night)'까지. 영화 전반에 깔리는 사운드트랙은 70년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1970년대의 자화상



앞서 언급했다시피 영화는 1970년대 뉴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를 확대해보면 당시 미국의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는 여러 맥락에서 읽힐 수 있는데 첫째로 계급적인 맥락이다. 학비가 부족해 베트남전에 참전할 수밖에 메리의 아들과 예일대, 코넬대 등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는 다른 바튼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대비된다. 둘째는 세대적인 맥락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처럼 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을 겪고 있는 앵거스는 기성세대와 그 이후 세대의 문제의식을 동반하고 있다. 그러나 폴에 의해 앵거스의 걱정은 조금 덜어지는 듯하다.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를 토닥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튼 아카데미는 기부를 통해 아이비리그 대학에 예사로 가는 고급 사립학교인데, 쿤츠를 포함한 학생들은 자기 말이 맞다며 서로 다투고, 동양인을 서슴없이 비하하고,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마마보이의 모습을 보인다. 개인주의와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이 미국의 중추가 돼 만들어갈 미래를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이에 감독은 반성의 태도와 고찰을 지니고 1970년으로 되돌아가 앵거스만큼은 좋은 품성의 젊은이로 성장하도록 한다. 이와 함께 폴이 지닌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영화는 이렇듯 미국이 나아갈 방향을 은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바튼 아카데미>는 남겨진 사람, 남겨진 감정, 남겨진 상처에 관한 영화다. 영화 중반이 되어서야 혼자 지내는 폴, 털리, 메리를 한 화면에 담아낸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의 외로움이 길고 길었음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한편 영화의 후반부에서 상대방이 자신한테 거짓말을 해서 해를 입었지만, 현재에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면서 오히려 진실을 드러내는 폴의 모습은 가히 인상적이다. 이는 "바튼맨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대사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대목이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폴이 아니다'라는 폴의 결의와도 같이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라스트 씬은 폴의 패배적인 결과가 아닌 앞으로 뻗어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영화 <바튼 아카데미>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사소하지만 사랑스러운 휴먼 코미디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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