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가톨릭의 구마 의식을 다룬 <검은 사제들>, 사이비 종교의 미스터리를 파헤쳤던 <사바하>에 이어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파묘>가 2월 22일 개봉했다. 파묘란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하여 무덤을 파냄(破墓) 혹은 날이 샐 무렵(破卯)을 의미한다.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무덤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파묘>는 어두운 세계를 다루는 것 같지만 어둠 속에 있는 빛 같은 진실에 다가가는 여정을 그린다.
LA행 비행기에 올라탄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 거액의 의뢰를 받은 이들은 기이한 병을 앓는 갓난아이를 접하고, 집안의 장손인 지용(김재철)을 만나 대물림되는 유전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화림은 지용의 조부가 묻힌 묫자리가 화근임을 단번에 알아챈다. 화림은 지용에게 이장을 권하고 이내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영근(유해진)이 합류하게 된다. "전부 잘 알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상덕은 악지에 자리한 묘를 보고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화림의 설득으로 파묘와 굿을 동시에 진행한다.
※ 이 글은 <파묘>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컬트는 공포 영화의 하위 범주에서 속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귀신이나 유령이 등장하는 영화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오컬트 장르는 주술을 하는 원리나 규칙이 있어야 하며, 이를 이용한 신념이 영화 속에서 기능해야 한다.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의 주제로 한반도의 척추를 가로지르는 굿판을 벌이는 <파묘>야말로 그런 오컬트 장르에 올바른 면모를 드러낸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장재현 감독은 역사적 서사와 도시전설을 끌어와 한반도의 민족적, 민속적, 종교인류학적 맥락을 공유하며 미스터리한 매력을 배가시킨다. <파묘>는 서양 문화권을 토대로 진화해온 오컬트 장르의 한국적 해체와 재구성한 결과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되는 <파묘>는 각 장의 제목이 내용에 충실하게 반영되고, 또 그것이 영화 전체를 잘 어우르고 있다. 음양오행, 이름 없는 묘, 혼령, 동티, 도깨비불, 쇠말뚝 순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장은 관객의 이해를 돕고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게 음양오행이고 저게 동티야'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억지스러운 장면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행동을 통해 직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연출자의 의도에만 의존하지 않고, 관객도 영화의 키워드를 따라 자신만의 감상에 젖어들게 한다. 이렇듯 영화는 장르적, 대중적 재미를 고루 갖추고 있다.
배우 최민식은 데뷔 35년 만에 처음으로 오컬트 장르를 촬영했다. 그는 베테랑 배우답게 새로운 역할에도 노련한 연기를 선보였다. 배우 유혜진은 기존의 코믹한 이미지를 내려놓고 낯설고도 정겨움을 선사한다. 배우 김고은은 극중 무당의 대살굿, 도깨비놀이 등 무당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30대 무당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또 <사바하>에 출연한 배우 박정민을 통해 감독이 캐스팅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가 아니었으면 김고은이 소화하는 젊은 무당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배우 이도현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다. 그는 <스위트홈>, <더 글로리>에서의 캐릭터를 탈피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다.
배우들로 인한 기대감을 무너뜨리지 않는 건 감독의 몫이기도 하다. 장재현 감독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그 누구도 허투로 소비하지 않는다. 첫 등장에 신중하고 깔끔하게 퇴장시킨다. 극중 네 주인공은 균형감 있게 역할을 배분받음과 동시에 캐릭터성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각자가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풍수사, 장의사, 무당 둘이라는 일명 '묘벤져스' 같은 조합이다.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어 역사적, 민족적 소재를 서서히 부각한다. 조상의 묫자리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맞닿는 쇠말뚝설(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정기를 끊고자 쇠말뚝을 산간벽지 이곳저곳에 꽂아뒀다는 도시전설)을 비롯하여 주인공들의 이름이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일치하면서 영화의 반전을 제시하게 된다. 풍수사 상덕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김상덕(1892~1956)을 떠올리게 한다. 장의사 영근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개화파 정치인 고영근(1853~1923)을 연상시킨다. 무당 화림 독립운동가 이화림(1905~1999)과, 봉길은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와 연결된다.
이밖에도 조연으로 출연한 무당 광심은 독립운동가 오광심(1910~1976), 고등학생 무당 자혜는 독립운동가인 단재 신채호의 부인 박자혜(1895~1943)와 이름이 같다. 보국사는 나라를 지키는 절을 뜻하며, 보국사를 창건한 스님의 법명은 원봉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의열단장을 역임한 김원봉(1898~1958)을 상시시킨다. 일제강점기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세대적 맥락은 극중 등장인물들과 장소를 통해 외세에 당한 역사와 그 잔재가 지금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파묘>는 우리 과거의 아픈 상처와 두려움 같은 걸 뽑아버리고 싶은 감독의 마음과도 닮아 있다. 이런 주제의식은 오컬트 장르라는 장재현 감독의 우직한 세계관을 경유하면서 세련된 미스터리 영화라는 타이틀을 얻어낸다. <파묘>를 보고 나면 그의 전작들에 대한 호기심도 증폭되기 마련일 텐데 <검은 사제들>, <사바하>도 관람을 권하고 싶다. 완성도가 높고 해석의 여지가 넓은 작품들이다. 초자연적인 존재에 맞서는 인간들의 모습, 무속신앙과 한국적 요소들을 플롯에 잘 녹여낸 <곡성>도 추천하고 싶다.
끝으로 영화 <파묘>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파내야 할 것과 묻어야 할 것을 잘 구분하는 예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