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 빌런은 나였다
첫날 눈물의 똥꼬쇼를 마치고, 미리 계약해 놓았던 학교 소유 아파트 내 방에 도착했다. 일단 도착해서 어디라도 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4개월 전에 냅다 계약해 버렸던 방이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고 안전했던 까닭에 지쳤던 심신이 부활하는 기분이었다. 미국에서는 집을 내놓을 때 영상으로 룸투어를 찍어 공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방은 영상 속 레지던스 호텔 같던 모습을 빼다 박아놓은 형상이었고, 오히려 실물이 더 넓어 보이기까지 해 그만 조증이 발동되어 버렸다. 24시간 만에 도착했다면 보통 뻗어 자는 게 일반적인 순서일 텐데, 나는 주변에 장 볼만한 큰 마트를 찾아 셀프 동네투어를 떠났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나는 연구실과 집만 왔다 갔다 하며 3년을 보냈던 완벽한 홈바디였기에 거리감각을 상실한 지는 오래인 상태였다. 걸어서 30분인 거리에 꽤나 큰 마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나는 빠꾸 없이 슬리퍼를 신고 방을 나서서 걷기 시작했다. 걷고 걷고 걷고 또 걸었던 나... 절반 정도 왔을 때 이 정도 거리는 홈바디에게 가차 없는 장거리 여행인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신고 나온 슬리퍼는 또 얼마나 불편한지 걸을 때마다 거리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랜턴 플라이와 부딪혀 탭댄스 장단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아직 개강이 멀어 학생이 없는 탓에 해 질 녘 대로를 횡단하는 머리가 떡지고 얼굴이 상기된 아시아 여자애는 이국 땅에서 참 섞이기 힘든 그림이었다. 그렇게 겨우 자이언트 이글에 도착했다.
김첨지가 오늘 한 일 1. 마트 복도에 물 쏟기
나 뚝딱이. 새로운 마트에서 실수 없이 완벽하게 장을 보는 법은 없지. 목이 너무 말라 샀던 물은 또 뚜껑이 불량인 일이었다. 물은 줄줄 새 갖고 갔던 백팩을 흥건하게 적셨고, 헨젤과 그레텔마냥 내 카트가 가는 길마다 물로 길이 그려져 있었다. 직원들은 심각한 얼굴로 물로 흥건해진 복도를 닦으며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이 만연한 채 사태의 주범을 찾아야 한다는 듯 토론을 벌이고 있었고, 이를 뒤늦게 깨달은 나는 오줌 싼 강아지마냥 머쓱하게 물이 반쯤 줄어든 물병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드디어 찾았다" 하는 상쾌-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는데, 너무나도 스윗하게 "넌 그 물을 살 필요가 없다"라며 그 물병을 돌려주고 새 물을 사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이 이후에도 집 근처 편의점인 CVS에 갔을 때 과자를 떨어뜨려 온 바닥에 과자 내용물 전시회를 연 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직원분은 흘린 과자에 대한 값을 전혀 묻지 않고 새것으로 사라고 해줬었다. 서비스 정신으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싶겠지만, 순간 머리가 새하얘진 뚝딱이에게 내려진 하해와 같은 아량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감사함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김첨지가 오늘 한 일 2. 계산 거부 사태
다시 자이언트 이글로 돌아와 김첨지의 반성일기를 쓰자면, 신나서 슬리퍼 끌고 밖으로 튀어나온 뚝딱이는 현금을 챙기는 것을 까먹었다는 점을 짚어야 할 것이다. 뒤늦게 계산할 때가 다 돼서 그 사실을 알게 된 나. 하지만 나에겐 마스터카드가 있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꽤나 멋진 쇼핑을 한 뚝딱이는 거침없이 카드를 꺼내 리더기에 읽혔지만 돌아오는 건 오만가지 에러 메시지. 갖고 있던 카드를 다 꺼내 이거 넣었다 저거 넣었다 거진 마술쇼에 가까운 행위예술을 다 해보았지만 내 카드는 읽히지 않았다.
내 뒤에는 계산을 기다리던 아이 둘과 그들의 아빠가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한참을 뚝딱거리는 와중에도 보채거나 화내지 않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주려 이런저런 대안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스윗함을 맛본 마트 복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다시 맛본 스윗함에 감복해 '내가 방금 여기 처음 왔고-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사러 나왔고- 아직 여기 은행 계좌가 없고-' 등등의 과도한 정보를 남발하며 그들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그런데 아이 아빠는 내 사정을 듣고서는 내가 장 본 것을 대신 계산해 주겠다고 하셨다. 결국 내 카드 하나가 겨우 읽혀서 계산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나는 어디서나 뚝딱거려도 어디서든 호의를 받는 이런 경험은 처음 해본 것이었기에 그가 건낸 호의가 그저 너무 감사한 일이었고 한마디 말로 낯선 이곳이 따뜻해지는 경험이었다. 언젠가 내가 다시 이런 마음을 베풀 수 있기를 소원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김첨지가 오늘 한 일 3. 밤이 되면 마피아가 시민을 죽인다고
그렇게 얼렁뚱땅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대중교통을 어떻게 타는지도 몰랐던 나는 또다시 그 멀고 먼 길을 걸어서 돌아가게 된다. 문제는 돌아가는 길에 해가 깜깜이 져버렸다는 사실. 미국에서는 해지면 돌아다니지 말라고- 말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걱정 섞인 잔소리를 다 듣고 왔으면서 첫날부터 난 그걸 어긴다. 쏟은 물 때문에 가방은 젖었지, 마트 장 보는데 또 신나서 잡동사니는 한가득 샀지. 바리바리 보부상처럼 짐을 이고 진 아시아인 여자애가 해 다 진 거리를 탭댄스 장단에 맞춰 걷고 있는 평범하지는 않은 모습이었지만, 내가 눈에 띄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거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였다.
밤이 되면 마피아가 시민을 죽인다고. 술자리에서 그 게임을 이골이 나도록 했으면서 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어두워진 밤거리를 혼자 걷는 마음은 출소를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과 비슷할까. 걸어도 걸어도 집은 가까워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비행의 피로와 마트에서의 서커스가 주마등처럼 나를 스쳐가며 몸과 마음 곳곳을 아프게 찔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울지 않았으니까. 그걸로 일일 김첨지는 위안을 삼기로 했다.
집에 도착해 팝타르트를 밀어 넣은 나는 또 똥꼬쇼를 한다. 슈가하이 상태로 온 집안 대청소를 마치고 밤을 새 36시간 기상의 기적을 이룩했지만, 이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미련한 짓이었으므로... 이렇게 한 문장에 줄여버리고 싶다.
다음 글은 좀 더 밝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이곳 미국땅에서 나에게 찾아왔던 첫 번째 큰 행운에 대해 말할 수 있어서이다. 이 일은 국제학생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에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