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브리나」, 2018
사각예술은 각종 영화, 만화, 음악 등을 리뷰하고 해석하며 덧붙이는 매거진입니다. 업로드 주기는 비정기적이며 현재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운영 중에 있습니다 :)
모든 작품은 스포일러를 동반할 수 있으며 들러주신 노고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미국의 만화가 닉 드르나소의 작품인 「사브리나」입니다. 세계적 문학상인 맨 부커 어워즈에서 무려 그래픽노블로 후보에 선정된 초유의 작품이기도 한데요.
사브리나라는 실종 여성과 그 주변인의 삶. 한 시민의 죽음으로 몰려든 세간의 관심을 떠받치기 위한 음모론들. 본 작품은 정보 과포화의 시대 속 진실의 행방. 또 질문에 짓밟힌 누군가와 진실이 얼마나 얇고 나약한 것인지 이야기합니다.
특히나 인물들의 알 수 없는 표정과 모호한 그림체로 '단절'을 표현하며 작품 내내 주어지는 의문인 '왜?'를 채우기 위한 독자들의 바쁜 눈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연출을 보여주는데요. SNS의 발달과 함께 현대에 팽배해진, 그 의미가 조금 변색된 '진실 공방'의 이면을 보여주는 듯도 합니다.
・ 줄거리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브리나'라는 여성이 갑작스레 실종됩니다. 우애가 좋았던 여동생, 산드라와 사브리나의 연인이었던 테디는 갑작스레 모든 걸 잃은 기분에 빠져 허우적댈 뿐인데요.
여자친구의 생사조차 불분명해지자 테디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동네를 떠나 옛 친구였던 캘빈의 집에 얹혀살게 됩니다. 미 공군 소속이자 기러기 아빠였던 캘빈은 테디를 흔쾌히 맞이하죠.
그렇게 시작된 두 남자의 어색한 동거. 희망이 가끔은 가장 잔인한 기다림을 만들기에, 두 사람은 각자의 기다림을 짊어진 채 '단절'의 고통으로 힘겨워합니다.
캘빈은 큰 절망에 빠져 무기력해진 테디를 걱정하며 진심으로 그를 보살피고, 테디는 말 그대로 먹고, 싸고, 자기만 하며 시간을 허송세월 보냅니다. 올려다볼 수 조차 없는 막막한 슬픔 앞에서 그저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죠. 쳐다보면 다가올까 애써 시선을 돌리듯.
캘빈 역시 딸과 재회하고 싶은 마음에, 그의 대사처럼 '양육비만 따박따박 보내주는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보지만 쉽지만은 않죠.
한 편 테디와 산드라의 기다림이 무색하게 그녀의 실종 사건은 더욱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사브리나는 사실 잔인하게 살해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촬영된 스너프 필름이 인터넷에 유출된 것인데요.
방구석 외톨이이자 게임에 빠져 살았다던 '티미 얀시'라는 남성이 일으킨 끔찍한 사건. 녹화 테이프를 여러 곳에 발송 후 본인도 목숨을 끊었기에 가해자와 피해자 말고는 질문도, 대답도 의미가 없어져버린 비극이 되어버립니다.
하물며 티미가 생전 진성 음모론자였다는 점이 빌미가 되어 사브리나 납치살인사건은 온갖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죠.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암흑 세력의 쇼다!
곧 터질 정치권 이슈를 가리기 위해 무고한 미국 시민을 희생시켰다!
사브리나는 살아있다, 그 주변인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사브리나는 애초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역배우를 세운 이 사건 자체가 사기극이다!
피해자의 남자친구라던 작자는 어디로 튀었나! 어째서 함구하는가.
잠재적 용의자를 먹이고 재워주는 캘빈 로벨이라는 자는 누구인가!
공군에서 일한다는 캘빈은 분명 이 거대한 부조리극의 앞잡이가 분명하다.
우리는 속지 않는다.
이 시스템은 천천히 국민들을 빨아먹기 위해 변화했고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한 군대가 매일 밤 집결되고 있으며
조용히 진행될 학살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진실을 추구할 것이다.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진실을 증명해 보이겠다.
트루스 오어 데어는 영미권에서 플레이하는 '진실 게임'입니다.
1. 한 명을 지목해 Truth or Dare? 라고 물으면, 지목자는 트루스 혹은 데어 하나를 선택합니다.
2. 진실(Truth)을 선택할 경우 받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야 하고,
3. 행동(Dare)을 선택할 경우 왕게임처럼 시키는 행동을 해야만 하죠.
사실상 진실 게임에 승패란 업습니다. 게임의 희비를 가르는 기준은 술래를 정하는 가위바위보, 진실의 유무가 아닌 누가 플레이하냐에 따라 다르니까요. 진실은 누군가에겐 폭탄이기도 하고, 시시하며 예상 가능한 범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트루스 오어 데어에서 이겨먹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도 플레이어이면서 가장 중요한 룰을 지키지 않으면 되겠죠. 참 꼴 보기 싫은 얌생이 짓이 해답입니다.
모든 답변을 거짓말로 대답하고, 상대의 모든 답변을 거짓말로 치부하며 '데어'를 고른 이들에게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시키곤 만족한 채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매일같이 들이닥치는 기자와 입맛대로 바꿔 보도되는 기사. 반 협박에 가까운 편지들과 신경쇠약을 일으키는 수백 통의 메일. 사브리나의 주변인들은 이 진실 게임에 반강제로 참여함과 동시에 조금씩 망가져갑니다.
질 게 뻔한 그들에게도 유일한 해결방법은 시간이라는 듯이, 비극은 안타깝지만 내일도 모레도 일어나는 일이기에 서서히 잊힙니다. 게임의 패배자들이 겪던 고통들은 썰물에 끌려가듯 어느새 세상의 관심에서 사라지죠. 남은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그저 죽지 않은 존재들. 그 속에서 천천히 다시 일어나 보려는 사람들 뿐.
이 글의 제목에도 등장하지만 이 작품의 중요한 지점은 '진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을 찾고 싶어 헤집어대는 언론과 음모론자들, 컷 구석구석을 눈으로 뒤지는 우리가 엉뚱한 짓을 하고 있죠.
그래서 티미 얀시는 사브리나를 왜 죽였을까요?
당사자들은 카메라의 플래시 소리와 켜켜이 쌓이는 메일함 속에 녹아든 이러한 궁금증들의 무게에 짓눌려 천천히,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진실 게임에서 이기고자 했던 이들은 여유롭게 손을 털고 의자를 빼고요.
「사브리나」는 SNS와 거짓말의 네트워크가 과포화된 현대에서 변질된 진실이라는 가치를 다룹니다. 또 훨씬 쉽고 간편하게 행해지는 폭력과 거짓 음모 속에서 사람들은 더 쉽고 간편하게 희생된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이와의 단절, 타인과의 단절, 감정과의 단절, 그리고 진실과의 단절. 포커페이스처럼 인물들은 간혹 무슨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독자에게서조차 단절된 그들의 진실된 감정, 찡그림.
표정을 숨긴 채 자신만의 비극을 숨겨야 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사실 그 무엇과도 연결되지 못한 채 삶을 영위하는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비극에 대해서 떠벌리지만, 누구도 그것들의 시작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