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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하철 3분

힙스터 특) 발끈함

인디와 힙스터는 비밀친구

by 사각예술

Intro


Owen - 계승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며 파장을 일으킨 영상이 있습니다.

“인디밴드 특)”이라는 제목의 이 짧은 영상은

현재 대한민국의 인디밴드 사운드에서 클리셰처럼 굳어진 특징들을 나열하는데요.


https://www.youtube.com/shorts/cOJj-RAgQLw

Youtube 사이테
??? : 검정치마가 인디 씬에 독을 풀었다

몽환적인 기타, 속삭이는 보컬, 어딘가 아련한 시선과 무표정한 얼굴 등.


댓글란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생각나는 아티스트들을 말하기도 하고, 일종의 ‘공식화’가 되어버린 인디 씬에 탄식하기도 하며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이토록 뻔하지 않다며 항변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공감을 일으키는 영상에 실소를 내보였지만 또 깊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요.


영국 패션의 전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말하길,

Vivian Westwood
가치 있는 모든 것은 언제나
소수에 의해 인정되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한 문화의 굵은 뿌리가 되는 인물이 대중문화를 거부하고 ‘소수’라는 존재의 중요성과 숭고함을 강조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는데요.


하지만 앞서 소개한 '인디밴드 특' 영상처럼 주류에 반대하는 소수 정예인원들에게서 보이는 획일화된 모습, 다름이라는 몰개성화라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걸까요?


오늘날 장르 내에서 멸칭처럼 사용되는 ‘홍대병’이나 ‘힙스터’의 모순은 어째서 발생하는 걸까요?



I

있어 보이고 싶지 않아?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 자본’


사회에서 취향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예술을 소비하느냐로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려 하는데요.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러한 현상을 ‘문화 자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Pierre Bourdieu
취향은 단지 개인의 기호가 아니라,
나를 ‘어떤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는 사회적 행위다


부르디외는 교양, 말투, 예술 감식력 같은 요소들 역시 사회적 지위를 구분 짓는 자본적 가치를 갖는다고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있어 보인다는 뜻이죠.


와인을 잘 알면 와인 모임에서의 지위가 달라진다

다만 그의 이론은 “문화예술이 끝내 자본적 계급과 연결되면, 결국 소수 귀족을 위한 불평등을 부추기게 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사세’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하죠?


어쩌면 오늘날 누군가는 인디 음악을 듣는 것을 통해 ‘나는 감성적인 사람’, ‘나는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라는 식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음악 세계를 탐색하고, 주류와는 다른 취향을 강조하는 것은 곧 ‘취향의 우위’를 통해 문화 자본을 쌓으려는 시도로 읽히는 것이죠. 그렇게 인디는 몇몇 사람들에게 선택된 다름이 되고, 어느새 정형화된 감성의 틀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틀을 과하게 의식한 모습은 ‘힙스터병’, ‘홍대병’ 같은 말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또 이를 교묘히 흉내 내는 누군가는 공감과 풍자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이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취향마저도 결국 또 다른 유행과 위계로 수렴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죠.


예술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던 뒤샹의 [변기]

물론 모든 문화 자본이 지적 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예술이 난해하다고 해서, 그것을 소비하는 모든 사람이 허세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힙스터’나 ‘홍대병’은 차별화된 취향을 통해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욕망이 만든 문화적 풍경입니다. 다름을 선택하려다 보편화된 감성의 틀에 갇히고, 그것이 되레 조롱의 대상이 되는 아이러니가 생겨버리는데요. 결국 이는 취향마저 자본화되는 사회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증명하려는 현대인의 초상이 아닐까요?


너무 추상적인가요? 그럼 조금 더 직관적으로 설명해 봅시다.




II

힙스터적 방정식

폴 스말디노의 ‘힙스터 패러독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대학교수인 폴 스말디노의 ‘힙스터 패러독스(역설)’는 아예 이를 수학적으로 도식화해 버립니다.


‘다름’으로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모습, 그리고 다름을 선택한 사람들이 결국 공통된 특성으로 수렴하는 아이러니. 앞서 설명한 ‘인디밴드 특’이라는 영상에서 강렬하게 보여주는 모순을 설명하죠.


Paul Smaldino's [Hipster Paradox]

현대인의 ‘다름을 향한 열망’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힙스터 패러독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밝혀진 흥미로운 현상인데요.


사람들은 자신을 남들과 다르게 보이게 하려는 심리에서 독특한 선택을 하지만, 그런 비슷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결국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겁니다.


즉, 모두가 ‘다르게’ 보이려고 하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비슷한 방식으로 다르게 보이려 하게 되고, 그 결과 ‘다름’이 또 하나의 ‘같음’이 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cN-PwgTdewA&pp=ygUW7Z6Z7Iqk7YSwIOyKpO2DgO2EsO2MqQ%3D%3D

개인적으로 좋았던 영상

스말디노 교수는 주류를 피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결국 한정되어 있고, 대중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 차이로 인해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 패러독스는 현대 소비문화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속칭 ‘힙스터’는 무언가를 고를 때, 순수하게 내가 좋아서라기보단, 그 선택이 나를 어떻게 보이게 만들지를 의식하곤 하는데요.


그렇기에 남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그 안에 사회적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욕망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고 있는 것까지, 이 역설의 부품으로 기능하는 것이겠죠?




III

진짜 '인디'


저항 정신이 강한 '펑크'의 대표주자, 그린 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은 말합니다.


어떤 녀석이 와서 내게 '펑크가 뭐냐'라고 묻는다면 난 쓰레기통을 걷어차며 대답할 것이다. "이게 펑크야!"
곧이어 그 녀석이 나를 따라 쓰레기통을 걷어찬 후 '이게 펑크냐'고 묻는다면 난 대답할 것이다. "넌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내고 있는 거야."


'힙스터' 현상이 전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주류 문화에 대한 비판, 독립적인 감성, 새로운 흐름에 대한 감수성은 많은 창작자들과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방향성을 제공해 왔습니다. 많은 서브컬처와 예술 운동들이 이런 비주류적 시도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다름’을 선택하는 행위가 또 다른 규범이나 강박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힙스터처럼 보이기 싫어서 주류를 외면하거나, 남들과 겹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선택을 고르는 태도는 오히려 자유로운 취향이 아니라 또 다른 눈치 보기 문화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나도 힙스터인가?’라는 생각에 대해 우리는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시다.


당신은 정말 당신이 좋아하는 걸 선택하고 있나요


결국 힙스터란, 단순히 유행을 거스르는 스타일이 아니라,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현대인의 욕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에 선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빌리 조의 말마따나 우리는 타인에게 질문하지 않으며 따라가지 않는 '인디'를 지향할 뿐이지, '힙스터'가 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인디는 어디로 갔을까요? 주류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자신의 위치에 취하지 않으며 개성을 통해 '나 자신'을 찾으려는 이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오랜 고민 끝에 든 생각은 인디는 장소가 아니라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타일이 아니라 질문이 아닐까요. 지금 내가 듣는 이 음악, 정말 나다운가요? 아니면 ‘나답게 느껴지도록 설계된’ 유행의 일부일 뿐일까요?


질문을 멈추는 순간, 더 이상 인디가 아닌 게 아닐까요? 진짜 인디는 "다르게 보이기"가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려는 자세"에서 시작되는 것이리라, 믿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어떤 장르, 어떤 밈보다도 오래가는 듯도 합니다.


힙스터가 아니라면 인디는 끝났냐고요? 아니요, 계속 새로 시작 중입니다.

당신이 지금 다시 묻고 있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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