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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있는 심리 Feb 27. 2024

[진상의 심리]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일삼는 진상

공평한 세상 가설과 통제감

*사례는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의 남편이 얼마 전, 아주 이상한 소리를 했어요. 주말 저녁,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TV로 뉴스를 보고 있을 때였죠. 뉴스에서는 며칠 전에 일어난 성범죄를 다뤘고, 저는 그 보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 했어요. 그때 그 이가 글쎄, 이렇게 말을 하는 거에요.

 "옷을 저렇게 입은 상태로 술 취해서 거리에 누워있으니까 저런 일이 생기지."

 그 말을 듣자 어찌나 화가 나던지. 잘못한 사람은 누가 봐도 범죄자 아닌가요? 그 이는 매번 이런 식으로 피해자를 욕하더군요. 제 남편을 제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흔히 피해자에게 피해에 대한 책임을 돌려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우리는 '2차 가해'라고 한다. 분명 잘못한 사람은 가해자임에도,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거나 혹은 원인 제공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2차 가해를 하는 것일까?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2차 가해, 그들의 심리를 파헤쳐보자.




공평한 세상 가설

 

통제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갑자기 2차 가해에서 통제감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여 당황했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통제할 수 없는 일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인생살이가 모두 우연하지 않고,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공평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Melvin J. Lerner,1966)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평한 세상 가설이 적용되면 세상은 공평하고 공정하다. 그리고 정의롭고 질서정연하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보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권선징악'이 현실에 있다고 굳게 믿는다.



 사실 이 믿음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가령, 어떤 사람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면,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 사람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응당한 결과를 보게 된거야." 문제는 이 가설이 범죄의 피해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속담이 있는데,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랴'이다. 평소에 여지를 줬으니 소문이 도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에게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부주의한 사람들인 것이고,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가해자를 자극하는 등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이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머리가 나쁘거나 게으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들이 믿는 세상과는 거리가 있다. 권선징악, 인과응보는 현실에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세상이 공평할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사실 이들은 정말 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는 것보다는, 그렇게 믿어야지 스스로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까 '통제감'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는데, 이들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 불안을 느낀다.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면, 나의 앞날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앞서 말한 교통사고, 성폭행, 가난 등 도저히 겪고 싶지 않은 불행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주의를 기울이고, 몸을 사리고, 공부를 하고 부지런해도 말이다.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진상들은 자신, 혹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도 그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을 버티지 못해 세상은 공평하다고 믿고 싶어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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