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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순한기쁨 Aug 17. 2023

발걸음을 맞추는 일, 그 마음.

오늘은 광복절, 아빠의 생신이다.


각자 사느라 바쁜 세 딸들이 남편과 자식을 대동해 모처럼 모두 모여 앉아 밥 한 끼를 먹고 차를 마시는 날.


2년 전 암으로 생을 마감한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언제나 그랬듯, 단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파한 자리.

참, 멋쩍은 사람들! 나, 그리고 나의 가족…



각자의 속도와 리듬대로 알아서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하나둘씩 모여들었는데, 아빠와 내 남편이 안 보인다.


'남편은 또 어딜 간 거지? 화장실에 가면 간다 일러줘야지, 여기 모기도 많고 저기 흡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전화는 왜 안 받아?'라는 답답한 마음에 짜증이 났다. 온종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네 살배기 딸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서서 멍하니 먼 데를 바라보니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기다림의 시간은 늘 왜 이렇게 더디게만 흘러가는 걸까?


마치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기분으로, 조금 더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니..

저 멀리서 느린 속도로 나란히 걸어오는 남편과 아빠가 보였다.




아빠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내 곁에 다가온 남편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대체 말도 없이 어딜 갔었냐고.


"아버님 걸음에 맞춰드렸지."라고 답하는 남편의 말간 얼굴을 바라보다 울컥했다.



하...... 딸이 셋이나 있어도 소용없구나.



남편에게, '나는 생각도 못했는데, 고마워.'라는 인사를 건넸다.

더불어, 아빠와 함께 걸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냐고 물었더니..

아버님이 걷기도 힘드셔서 거침 숨을 내쉬셨는데 무슨 대화를 나눴겠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은 그저 아버님의 걸음을 맞춰드렸을 뿐이라고.



아... 맞다. 우리 아빠가 폐기능이 많이 안 좋지.

언제 갑자기 쓰러진대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아빠는 병들고 늙어버렸는데..




나무라서 미안하다, 남편.

무심해서 미안해요, 아빠.




하루를 마감하는 늦은 밤,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까는 잘 들어가셨냐고.

여름옷을 이제야 선물하고는 겸연쩍어 "너무 늦었다."라는 이야기를 꺼내니, "내년에 입으면 돼지. 고맙다."라는 아빠의 답이 돌아왔다.


전화를 끊자마자 맴도는 한 단어에 울음이 차올랐다.

내년......

그 내년이 올까?

.

.








고마워, 남편.

당신 덕분에, 아빠의 발걸음이 외롭지 않았을 것 같아.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 많이 했었잖아, 우리.

가족사진 한 장 찍어둘 걸 그랬다고.

더 늦기 전에 사진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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