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18:00 퇴근할 즈음_
나 : 고생했다. 술 한잔 할까?
직원 : 학원 가야 돼요.
나 : ??
직원 : 노무사 준비하고 있어요.
나 : ??
나는 직장병행 노무사 준비생이다. 처음부터 노무사란 직업에 뜻이 있었냐 하면, 그렇지 않다. 노무사란 직업을 알게 된 건 우연찮은 대화에서였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하듯이 하루의 고단함을 풀고자 직장동료에게 술 한잔 제안하는 중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당연하게도 내 대답은, 학원? 노무사? 그게 먼데.
평생직장 개념의 모호화, 전통적인 업무방식의 변화, 평균 수명의 연장 등 환경적인 변화로 조직에 대한 회의감으로 퇴사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일과 가정의 양립을 선호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문직종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금에 와서야 체감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듣은 바도 없었고, 하루하루 떨어지는 업무를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으며, 주위의 직업이라 봐야 대단히 제한적이어서 생각지 못했다. 나름 사람구실하며 사는데 감사하며 굳이 눈을 돌리지 않았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연찮게 노무사를 알게 됐고, 지금은 9년 차 직장인이며 생유예 직장병행 수험생이다.
사전적인 공인노무사란, 노동분야의 전문적인 법률, 경영, 경제 지식 서비스의 수요에 대응하여 탄생한 제도로서, 민형사 송무를 주로 담당하는 변호사와는 달리 노동법률, 경영자문, 인사노무, 4대 보험, 정부지원금, 컨설팅, 경영학술용역 등에 있어서의 광범위한 노동 관련 지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다. 덧붙이자면, 급여생활근로자라면 현 조직에 입사 지원을 하는 순간부터 퇴사하는 순간까지, 그리고 하루 중 대다수의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구속받는 행동양식 또는 근로조건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밀착형 직업이다. 그러다 보니 일상이 교과서인 셈인지라 상당히 효용감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급부로 한 때는 자부심이었던 이 조직에 순간순간 아쉬워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현재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걸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직장생활 9년 중 아직도 기억나는 취임사가 있다. 모든 직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출퇴근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별반 다를 바 없는 취임사였건만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건, 기관 특성상 외부평가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여서 직원들의 피로감이 상당했고, 본인도 다르지 않아서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타성에 젖어서 관성으로 출근하는 일상이었다. 그 와중에 직원들의 편에서 제 역할을 하겠다니 반가움에 금할 길이 없었건만, 단순 포부에 그친 말에 마음이 동했던 것인지 마음에 담아두고선 실망만이 쌓였다. 그 이후 달라졌냐 묻는다면 다르지 아니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출퇴근할 수 있게 하겠다는 말은 의미 없는 선언으로 가슴에 남았다. 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는가, 돈을 받았다면 최적의 컨디션으로 재주를 부릴 수 있게 배려의무를 다하였는가 또한 외부의 날 선 평가에 책임을 곰에게 떠밀고 회피하지 않았는가, 왜 항상 소모되고 소멸되는 건 곰이어야 하는가라는 생각만 쌓여갔다. 그래서인지 노무사가 된다면 제1은, 무엇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보장하고, 고생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반대로 받은 만큼 책임지는 동일노동 동일가치라는 이 시대의 격언을 실로 실천할 수 있게 역할을 다하고 싶다.
언어라고 하면 제2외국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노동법 또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교감, 즉 상대방과 공감하는 것이 언어의 목적이라면, 노동법을 통해서 사회현상을 읽고 공동체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노동법 또한 언어라 해도 틀림이 없다. 노동법에 국한할 것 없이 주위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한다면 구분이 없다. 최근에 관심을 끈 기사가 있다. ‘독일 의사들이 의사 수 늘리기에 찬성하는 이유(시사인 vol.825)‘. 독일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의사 단체들도 의대 정원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 의대 정원 확대라는 사안에서 두 국가 간 의견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노동조합은 대부분이 기업별 노조이고 임금 등 근로조건을 기업별로 결정한다. 그런 연유로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불평등, 중소기업 인력 유출 및 수급난이 발생하는데, 독일은 산별 노조가 특징이다 보니 단체협약으로 정해진 월급을 동일하게 받는 환경이라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없어 오히려 의대 정원 확대에 힘이 실린다는 것이다. 독일처럼 산별 노조가 답이 될 수 있을까. 간단히 생각할 문제는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새로운 시각에서 논쟁적인 사회문제를 해석하는 눈을 가지고 생각해 볼 여지를 던질 수 있음에 상당한 쓸모를 느꼈다는 게 본인의 감상이다. 노무사가 된다면 제2는, 전문가라는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갈등을 조장하기보다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공동체 또는 조직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쓸모를 다하고 싶다.
왜 노무사를 준비하게 됐고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했음에도 결국에 나는 직장병행 노무사 수험생일 뿐이다. 모든 수험생이 그러하듯이 합격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다. 남 모를 고생에도 합격하지 못하면 알아주지 않으며, 의지부족에서 심하게는 실패자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1년 안에 붙었다더라 다른 전문직 자격증보다 쉽다더라 인터넷상에 떠돌지만 사실 1년 안에 붙는 게 대단한 거다. 지금은 준비생일 뿐이지만 언젠가는 노무사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