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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영 Jun 16. 2024

유월의 단상

0601

6월의 첫날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새로운 달의 시작은 가끔은 두렵기도, 혹은 의미 없기도 하다. 나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아니면 여전히 사라지고 싶어서. 나는 주 7일 일을 하기 때문에 익숙하게 커피를 사들고 출근했다. 회사에서 문득 마음이 시려와서 울기도 했다.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것 같지만, 그 대상은 실체가 없다. 나는 여전히 세상에서 멀어지려 한다. 온갖 뒤엉킨 마음으로 6월을 맞이한다.


0602

문득 정말 내가 사라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한다. 여전히 존재의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왜 삶은 원하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고 나에게 와서 낭비되는 걸까. 거울 속 내가 낯설다. 더이상 웃지 않고 무표정을 짓고 있다. 언제까지 버티고 버텨야 할까. 온 세상이 불안한데.


0603

이 하루를 버텨낸 끝에 찾아온 건 상실감이었다. 마음의 용량이 100이라면 쓸모없는 것들로 100을 채워넣고 중요한 것들은 근처에 나뒹굴고 있는 것 같다. 이 우울이 지겨워서 오늘도 나를 해칠 생각을 한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남을 정도로 손을 꽉 쥐었다. 아프다. 아프지만 해소감이 들기도 한다. 울면서 약을 털어넣고 잠들었다.


0604

삶이 아득하게만 느껴질 때 더이상 내가 잡을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아닌 버팀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0605

나는 주 1회 정신분석적 치료를 받는다.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 들어가자마자 이번 주는 잘 지냈다고 말했다. 이건 내 습관이다. 힘들 때 그 반대로 말해버리는 것. 오랜만에 진료실에서 울었다. 황급히 괜찮다고 말하며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요즘의 나는 괜찮지 않다. 그리고 지독하게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다. 셰익스피의 말처럼 인생은 연극이고 모두가 배우라면,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가보다. 이제 모든 걸 그만두고 싶다.


0606

오랜만에 찾아온 휴일이었다. 오전에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는 책 한 권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날이 더웠다. 서점에 들러 전시된 내 책을 봤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독자들과 어느 정도로 이어져 있을까? 내 책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있을까? 솔직한 글을 써내려가고 싶지만 그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술을 마시니 죽고 싶었다. 알코올은 어려운 일을 쉽게 만들기도 한다. 내일도 숨쉬고 살아가야 한다는 끔찍한 사실이 나를 괴롭힌다. 정말이지 죽고 싶다.


0607

익숙한 무기력감이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출근했다. 내가 일하는 학원은 여전하다. 무기력한 강사와 공부가 싫은 학생들의 조합이라니. 반복되는 매일을 살아내는 게 버거워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밤도 안온히 눈을 감길. 내일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


0608

괴롭다. 남은 비상약 12알을 모조리 뜯어서 한 곳에 모았다. 아프다. 이제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아픈 건지 헷갈릴 정도이다. 약을 삼킬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 걸 알기에 그만뒀다. 나는 어느 부분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 감정 없는 울음만 터져나온다. 이 세상에 머물러 있지만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까 더이상 도와 달라고 말하지 않을래.


0609

무엇을 써내려가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요즘에는 매일 자살을 생각한다. 내가 죽어야 모든 고통이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죽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더이상 무언가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건 끊임없는 절망 뿐이다.


0610

너무나 지쳐버린 탓에 숨쉬고 살아가는 것조차 힘이 든다. 오전 내내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오후에 출근했다. 일을 하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나서 얼른 닦아내고 웃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해를 하고 싶다. 나를 망쳐야만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이 허망하고 끔찍한 우울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0611

어젯밤에 수면 유도제 20알과 자나팜 12알을 한번에 삼켰다. 정말 작은 가능성일지라도 내가 죽기를 바라고 한 행동이었다. 오늘 아침에 멀쩡히 눈을 뜨니 너무나 절망스러웠다. 죽지 못해서 오는 절망, 그것이 무엇인지 알까. 제발 더이상 깨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 삶을 이어나가야 하나요. 신이 있다면 이제 그만 저를 포기해주세요.


0612

병원에 다녀왔고, 입원 권유를 받았다.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까지 하셨다. 나는 모두 거절했다. 내 보호자는 나 자신이고, 입원을 하면 잃을 게 너무 많다. 애초에 입원은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나는 살고 싶지 않다. 물길이 끊겨버린 강처럼 내 마음은 너무나 메말라버려서, 단 한 순간도 살아 있고 싶지 않다. 모든 것에 지쳐버려서 자꾸 나를 죽이는 방법만 찾는다. 삶의 끈은 더이상 없다. 죽음이 유일한 탈출구이다.


0613

죽지 않고 살아만 있자고 스스로 주문을 건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주 7일 일하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한다. 녹슨 기계가 된 것마냥 어떻게든 굴러간다. 이건 살기 위한 발버둥인가, 후회 없이 죽기 위한 행위인가.


0614

병원 외래를 갔다가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 후 응급실로 향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내가 나를 어떻게든 죽일 것 같았다. 응급의학과 교수님을 거쳐 정신과 교수님과 면담을 진행했다. “아무 이유가 없는데 자살 충동과 불안이 너무 심해요.“ 선생님은 잘 오셨다고 칭찬해주셨다. 최근 있었던 독자의 죽음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니, 나도 힘든 상황이기에 그럴 때는 같은 환자분들과 만나는 걸 피하라고 하셨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원래도 나보다는 남을 챙기는 타입이라, 지금처럼 불안정할 때에도 남을 챙기면 내가 없어져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오늘을 살아냈고, 나는 달달한 초코우유 한 잔을 마시고 잠들 것이다. 그리고 내일이 찾아오겠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0615

출근해서 일하던 중 날카로운 불안이 나를 덮쳤고, 나는 상담 선생님에게 SOS를 요청했다. 퇴근 후 선생님과 통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잠깐 멈췄던 상담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떠오르는 대로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제 마음을 온전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라고 답했다.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도움 요청을 하고 싶었다. 여기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잡아 달라고. 매일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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