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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영 Jul 08. 2024

나도

나도 우울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우울증을 겪기 전의 나는 마냥 해맑고 밝은 사람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했고,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할 수 있었다.


우울증은 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내가 가진 긍정적인 감정을 모조리 쓰레기통에 버리고 남은 건 공허와 무기력, 그리고 자책 뿐이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너무 버거워서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한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사고가 나서 즉사하길 바라고, 잠에 들기 전에는 다음날 깨어나지 않길 바란다.


나는 가면을 잘 쓰는 사람이다. 학원에서는 잘 웃는 선생님을 연기하고 가족들 앞에서는 나아가는 우울증 환자 역할을 한다. 병원이나 상담실에서도 내 가면은 지속된다. 힘들다고, 도와 달라는 그 한 마디를 꺼내지 못해서 한참을 침묵한다. 이 가면은 너무나 두껍고 견고해서 스스로 절대 깰 수가 없다.


나도 솔직한 사람이고 싶다. 힘든 마음을 글로 쓰지 않고 사람들에게 직접 표현하고 싶다. 그걸 항상 가로막는 건 내가 가진 자책감과 죄책감이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것, 그리고 나 스스로를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나는 힘들어 마땅한 존재이다.


나도 정말 우울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오늘도 끝없는 고통에 지쳐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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