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끊고 2주가 지나기까지는 정말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첫 일주일은 신체적 부작용으로 걸어다니기도 힘들었고, 그 다음 일주일은 끝없는 자살 충동으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상상으로 수없이 많이 나를 죽였다. 감정 조절도 힘들었다. 툭하면 눈물이 나와 울면서 다녔고 평소에는 좋게 넘어갈 것들에 대해 화가 났다.
2주가 지나니 마법처럼 어지러움이 사라졌다. 하지만 충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번씩 불쑥 찾아와 나를 휘젓고 간다. 그럼에도 버틴다. 왜 이렇게까지 버티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 진료 시간에 솔직한 마음을 전부 말씀드렸다. 약을 더이상 먹고 싶지 않고, 내 이런 행동을 선생님이 싫어하실 것 같고, 더이상 병원에 나오지 말라고 하실 것 같고.. 나에게 남은 길은 이제 자살 또는 완치 둘 뿐이라고. 자살하든가 이걸 극복하고 살아내든가 해야 하는데 방향을 잃었다고. 자꾸만 자살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방법을 알려달라고.
선생님은 내가 자꾸만 양 극단을 생각한다고 하셨다. 내 선택은 모 아니면 도라고. 그리고 지금까지 그런 절박한 상황으로 스스로 들어가 살아남는 게 생존 방식이었을 수 있다고. 그리고선 삶에는 그 두 가지 방향만이 있는 게 아니라고 하셨다. ‘Another way of being’을 찾아야 한다고.
또한 앞으로의 치료를 위해서는 안전에 대한 약속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자주 자책과 자기비하를 하는 걸(또 ‘사고’를 쳤어요.., 저는 정신병자예요..) 지적하시며, 선생님이 지금까지 봐온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다. 가진 내적 자원과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고. 내가 잠깐의 자살 충동에 못 이겨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확언하셨다.
나를 믿는다고 하셨다. 나 스스로는 아직 나를 믿지 못하는 것 같지만, 선생님은 나를 믿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도 진료시간에 솔직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치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가장 챌린징한 일이라고 하셨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씀은, 나는 지금 허허벌판에 혼자 있는 게 아니라고, 선생님이 옆에서, 또는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믿고 본인을 파트너로 잘 활용하라고. 선생님은 종종 우리는 동등한 관계임을 강조하는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선생님과의 관계를 상하관계로 인지하는 걸 알고 계신 것 같다.
약은 감정 조절을 도와주는 항우울제 딱 한 알만 먹기를 권하셨지만 거절했다. 선생님은 내 의견이 그렇다면 존중해준다고 하셨다. 약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얘기해보기로 했다. 당분간은 상담 치료만 이어가기로 했다. 더이상 병원에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으시고, 당연하다는 듯 다음주에 보자고 말하셨다.
Another way of being. 내가 앞으로 삶을 살아갈 것이라면, 기어이 그래야만 한다면,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럴 능력이 있을까?
내일은 친한 동생과 등산을 가기로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몸을 움직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