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었다. 당장 상담실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예의 없는 행동인 것 같아서 참았다. 선생님의 존재 자체가 불편하다, 나는 그냥 이러다 죽어야 할 사람이다.. 등의 말을 내뱉으며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선생님은 무력감을 느낀다고 하셨다.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나에게도 화가 나고 실망했지만, 스스로에게도 화가 나고 실망스럽다고.
"제가 없는 게 더 낫다는 말씀이시네요"
"그게 그냥 포기하겠다는 말씀이잖아요"
이렇게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내가 실제로 하고 싶었던 말은 "제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그냥 포기해주세요" 였다. 모든 치료적 행위를 그만두고 싶었다. 매주 가는 병원도, 매주 가는 상담도 모두 그만두고 온전히 혼자서 자살을 선택하고 싶었다. 결코 닿을 수 없는 희망을 붙잡고 구차하게 사느니, 제정신일 때 나의 선택으로 죽고 싶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하셨다. "어떤 것도 저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해요"라는 말에, 보고 싶지 않아서, 또는 해봐야 소용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냐고 되물어보셨다. 예전에 의사 선생님도 비슷한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이런 면에서 용기를 내야 할 것 같다고. 혼자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도와 주겠다고. 나는 그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간 실격>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즉 저에게는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라는 의미가 그때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 구절을 한참이나 되뇌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내가 주인인 삶'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 방법을 모른다. 남들이 생각하는 행복을, 사회가 생각하는 행복을 위한 삶은 살아봤다. 10대 때는 공부, 20대 때는 대학 생활과 유학, 세계 여행, 연애, 취업 등. 각 단계에 맞게 모든 걸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온 건 공허함과 자살 충동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내가 살아온 모든 궤적은 쓸모 없는 것이 되었다. 숨이 막혀서 도저히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정년 보장이 되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건, 내가 내 삶을 살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그 후 여러 시도를 하기도 했고, 책을 출간했고, 독립을 했다. 3년동안 파도같이 살았다. 어떨 때는 세상이 주는 환희에 가득 차 있었고, 때로는 극심한 자살 충동을 버티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치료는 장기전이다.. 라는 이야기를 치료자들에게 듣기는 했지만, 3년이 그렇게 짧은 시간은 아니기에, 나는 나아지지 않는 스스로를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어제, 내가 자꾸만 반항적으로 굴자 선생님이 두 번이나 먼저 물어보셨다.
"자영씨, 내가 필요해요? 내가 도움이 돼요?"
나는 그 질문을 두 번째로 듣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필요하다고.
그러자 선생님은 그럼 포기하지 않는다고, 내가 나의 삶을 살게 되어 상담을 하산하거나, 본인이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마지막에는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자주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시는데, 어른이 그 말을 하기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 진심으로 다가온다.
나만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꽤 자주 나를 포기하고 싶지만, 그때마다 나를 잡아준 건 '삶에 대한 책임감'과 '치료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사소한 책임감으로 겨우 실을 이어잡고 살아간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다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더 많이 생기길 바란다. 스스로에게 찾든, 타인에게 찾든. 그것이 외적인 이유이든, 내면적 이유이든.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상어에게 전부 물어 뜯기는 한이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