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를 온전히 믿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나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를 신뢰한다. 내 능력에 대한 믿음, 관계에 대한 믿음, 가치관에 대한 믿음. 다만, 내가 앞으로도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없지는 않고 종종 있다가 사라짐을 반복한다.
“선생님이 저를 믿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제가 원했던 건, 그래도 얘가 자살 충동을 이기고 삶을 살아가겠지, 하고 믿어주는 거였어요”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은 결코 나를 믿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왜 지난 진료 시간에 이 말을 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간다고,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스스로도 아주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거를 받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걸 스스로 speak할 수 있으면 더 좋겠죠. (중략). 자기도 사실은 이렇게 잘 회복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당장 그런 생각이 기꺼이 매일매일 들지 않을 뿐. 그걸 스스로 자각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그걸 치료자들에게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삶에 대한 확신은 스스로에게 있어야 한다. 내가 삶을 완전히 놓아버린다면 치료자들이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다. 지금처럼 약을 먹지도 않고 입원도 하지 않으려면, 나 스스로 어느 정도는 일어서야 한다.
사실은 숨을 쉬고 존재하는 모든 순간이 괴롭다. 삶에 대한 의지는 가끔 반짝 찾아오지만, 죽음에 대한 열망이 더 크다. 그래서 나는 삶보다는 버팀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억지로라도 밥을 챙겨먹고, 취미 생활을 한다.
“자영씨가 쓴 책 제목이 ‘사실은 살고 싶었다’였잖아요. 때로는 잘 살고 싶다, 이렇게 목적 의식을 가지고 살고 싶다, 이런 얘기를 분명히 자발적으로 하실 때도 있었던 것 같아서요”
사실 내가 생각하는 자발성은, 삶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온전히 내린 스스로의 결정이라면, 나는 삶이든 죽음이든 모두 존중할 수 있다. 생각의 끝에서 자살하는 게 내가 내린 결정이라면, 나는 그것 또한 옳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니 죽으면 안 된다는, 그런 사탕발림같은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나도 알고 있다. 선생님은 내가 스스로를 믿고 밝은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걸. 내 인지 과정이 부분적으로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 다르다. 나는 여전히 매일 자살을 생각하고, 다른 방법으로든 언제 죽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삶에 대한 의지와 자발성이 있을까? 그 부분을 좀 더 꺼내서 가공한다면, 버팀이 아닌 삶이 되는 순간이 올까? 무엇보다, 내가 진정으로 그걸 원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