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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영 Nov 27. 2024

내가 가진 힘

“이것에 뭔가 다른, 나의 과거의 어떤 경험이나 오리지널한 관계에서의 뭔가가 더 있을까? 이렇게 좀 트레이스해가는 것 같아요. 이제 그 과정에서 당연히 그러면 그런 걸 좀 더 생각하게 되고. 이제 우리 치료 scene에서의 액팅아웃은 없잖아요. 여기서 갑자기 ‘선생님 또 입원하라고 하면 약 많이 먹을 거예요’, 이런 건 이제 없잖아요”

선생님의 이 말을 듣고 감회가 새로웠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힘들 때마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풀던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선생님이 먼저 ‘이제는 액팅 아웃이 없잖아요’라고 말씀하시다니. 액팅 아웃을 하지 않게 된 건 약을 끊은 후부터이다. 그러니까, 이제 2개월 정도가 되었다. 선생님은 예전에 내가 약을 먹지 않는 대신 약이 해주던 역할을 스스로 해야 한다고 하셨다. 오늘의 진료에서도, 약을 먹을 상태가 아니게 스스로 조절한다면 약을 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걱정되는 건, 내가 치료의 threshold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가끔은 앞에 있는 것 같다가도 보면 한참 뒤에 있기도 해서 걱정되는 건 있다고. 그럼에도 나는 내 이런 힘듦과 우울함을 온전히 마주하며 분석하고 이해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일상 속에서 이런 노력들을 하시는 가운데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용하시는 방향으로,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는 방향으로 가시는 건 좋다고 생각을 해요”

선생님은 이제 내가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것 같다고 하셨다. 한번 해본다면 그 후는 더 쉬울 거라고. 지금의 내 숙제는 엄마와의 관계이다. 앞으로 다루어야 할 것은 수없이 많지만(엄마와의 관계, 삶의 방향, 삶의 무의미감, 죽음, 자살 충동, 식이 문제..), 지금 나를 가장 신경 쓰이게 하는 건 엄마이다.

최근 심리상담 시간에도 엄마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때 “이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요”라고 말했었다. 선생님은 이 말을 듣더니, “중요한 문제가 아닌 거로 치부하고 싶죠?”라고 되물어보셨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자주 액팅 아웃을 했던 이유는, 치료자들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데에서 오는 절망감, 정말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 나를 망치고 싶은 마음 등이 혼합된 것이었다. 내가 힘들다는 걸 표현하는 방식은 말이 아닌 자학적인 행동이었다. 그걸 그만둔 건, 약이 없어서도 있지만, 이제는 그 방식이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실 자살을 할 거면 투신을 하는 게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다. 나는 그저 죽고 싶은 용기가 없어서 애매한 방식의 자해만 해왔을 뿐이다.

치료의 첫 단계는 넘어선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방황한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자주 들고, 내가 너무 나약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자꾸만 외부의 확인을 받으려 한다. 의사 선생님에게 나를 믿어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스스로는 나를 믿지 않는다.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도 있지만, 내 힘으로 해나가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걸 이제는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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