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the Company Thinks #9
직장인의 주수입은 월급이며 월급은 이직할 때 높이는 것이 진리다.
직장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성과급이 펑펑 나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급여 계좌를 불리는 방법은 이직할 때가 거의 유일하다. 매년 연봉협상을 통해 인상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내에서 정해진 인상률을 따르고 회사가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간 채용을 진행하면서 열심히 노력한 많은 경력자들이 본인의 가치보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이런 분들의 유형과 극복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퇴사 통보를 한 후에 회사가 연봉을 높여주겠다고 하는 케이스도 간혹 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고용 안정에 리스크가 큰 방법은 제외하자. 그리고 연봉협상 잘하는 방법은 이미 글들이 많이 있으니 찾아보면 되고 우리는 '이직할 때'에 포커스 해보자.
챕터 3의 주제는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회사의 입장에서 직장인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이전 글들과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노하우와 전술들을 담았다.
전편인 '박수받으며 퇴사하는 법'에서 밝힌 것처럼 회사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약 300 여 명을 채용하고 200여 명을 떠나보내면서 얻은 경험을 최대한 날것으로 담았다.
우선 한국 사람들은 돈 얘기에 익숙하지 않다.
이것도 유교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보통 인터뷰를 잘 진행했다가도 처우이야기만 나오면 직전까지 쌓아 올린 좋은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인생에 몇 안 되는 이직이라는 경험이 낯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음은 처우를 이야기할 때 관찰되는 몇 가지 웃픈 유형들이다.
'알아서 챙겨 주세요' 유형
이 유형은 희망연봉을 물어보면 '알아서 달라' 또는 '내규에 따르겠다'로 답한다. 희망연봉을 물어보지 않고 회사가 통보하는 경우에도 Yes/No를 할 뿐 자신의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이 유형의 사람들에게 돈 이야기란 너무도 어려운 것이다. '회사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 평가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며 나의 가치 평가를 회사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성장과정에서 돈 이야기는 파렴치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을 가능성이 의심될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가치는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기 이전에 내가 나서서 증명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통틀어 이직의 기회는 몇 번 오지 않는다. 1년마다 회사를 갈아타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직의 기회는 20년 직장생활 중 5~6번 내외지 않을까 싶다(이보다 이직이 잦다면 의미 있는 연봉 인상은 힘들다). 극 'I'형이어도 자신의 가치는 분명하게 이야기하자.
'근자감' 유형
이직할 때는 연봉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며 성공적인 경우 30~40%까지도 인상이 가능하다. 연간 연봉협상에서의 인상률이 최고 성과자의 경우도 10%를 넘기 힘든 것을 보면 이직 시 처우 협의는 중요하다.
물론 높은 인상률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현직장에서 본인의 차별화된 전략과 성과를 실현했고 구체적인 노하우와 숫자까지 언급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이 경우 회사 내에서의 인상률은 통상 3~5% 수준인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회사는 이직 시 높은 인상률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가끔 근거 없는 자신감을 희망연봉으로 표출하는 분들이 있다. 인터뷰 자리에서 딱히 경쟁력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간의 성과도 시장 평균 수준이었는데 인상률은 30%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다. 마치 '이직할 땐 당연히 이 정도는 높여 받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큰 착각이다. 웬만한 회사는 해당 직군의 시장 평균 연봉 테이블을 가지고 있다. 어떤 포지션의 몇 연차 직원이라면 형성되는 최저 최고 수준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이지만 회사는 수십 명을 보고 사람을 뽑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만약 뚜렷한 역량의 우위가 없는 경우에 근자감에서 비롯된 인상 요구는 지원자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된다. 허황된 사람으로 말이다.
티끌 모아 태산 만드는 유형
연봉을 높이기 위해 근거를 만들라는 글들이 많다. 예정되어 있던 연봉 인상률이라든지,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성과라든지 근거가 있으면 유리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마치 온 우주의 티끌을 다 모으듯 지금 회사에서 누리는 세세한 복지사항까지 모두 나의 연봉으로 계산해 달라는 사람이 있다.
연봉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급여는 기본급에 정기적인 성과급이다. 지난해와 올해 성과급의 평균도 써먹을 수 있겠다. 좀 더 범위를 넓히면 주차슬롯이나 유류비, 법인차량 지원까지도 패키지로 포함할 수 있다. 본인차량을 영업용으로 쓰는 경우에 유류비만큼 연봉을 더 인상해 달라는 것은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기본급, 성과급 외에 복지카드 20만 원어치, 15만 원짜리 건강검진, 야근식대, 교통비, 통신비, 명절 상여금 20만 원, 아직 확정도 되지 않았지만 꽤나 오를 거라고 주장하는 내년도 연봉 인상까지를 포함해서 계산해 달라는 사람도 있다.
회사마다 다를 수 있지만 우리 회사의 경우 처우협상 과정도 눈여겨본다. 인터뷰 자리보다 오히려 솔직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회사에서 받는 모든 복지사항들을 연봉으로 계산해 달라고는 하지 말자. 복지는 회사마다 고유의 정책을 따른다. 아니, 그전에 티끌을 모으고 있는 당신의 가치가 너무 낮아 보일 수 있다.
승자의 협박 유형
지원자도 여러 명 중 하나이듯, 나에게 오퍼를 주는 회사도 당신네 회사뿐 아니라 여러 곳이 있다는 역전략의 관점이다. 개발자 품귀현상이 한창일 때 어느 백엔드 개발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다른 곳에서 오퍼 받은 금액이 이 금액입니다. 이 금액이 어렵다면 입사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원자의 역량이 뛰어나고 정말로 오퍼 받은 또 다른 곳이 있다면 이는 매우 강력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두 곳에 대한 선호도에 크게 차이가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본인의 역량이 시장 평균 이하라면 문제가 된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회사는 시장 데이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합격된 회사가 여러 곳인 것처럼 지원자가 옵션을 많이 들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위와 같은 강수는 최대한 나중에 두기 바란다. 자신감을 비칠 수는 있지만 미묘하게 회사와 뜻을 같이 할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유계약 용병선수와 같은 기대치를 갖게 만든다.
즉 능력은 있어도 '급여 조건만으로 회사를 결정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럼 입사 후에도 연봉에 대한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다른 가치들보다 더욱 성과만을 예의주시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 내가 이직 시 연봉을 멋지게 올리고 싶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현직장에서 자신의 역량과 성취 경험을 달성률, 성장률 등의 수치와 함께 차곡차곡 잘 쌓아놓는 것은 기본이니 패스하자. 결정권이 있는 상대방과 협상할 때 나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는 협상의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자. 내 몸값을 30-40%를 높이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첫째로 중요한 건 메타인지 꼭 해야 한다. 낯설겠지만 시장에서의 나의 평가, 평균 연봉 수준을 파악해 보자.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평균 이상을 해낸다고 생각하는 오류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적(?)을 알아야 하지만 나도 알아야 한다. 회사가 시장 데이터에 기반하여 포지션과 연차에 따른 연봉 테이블을 가지고 있다면 냉정하게 그 테이블의 어느 정도 위치에 내가 있을지를 아는 것이 협상의 기본이다.
나와 같은 직종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정보를 얻는 것은 주변 지인, 팀동료, 업계 모임, 헤드헌터, 링크드인 같은 곳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나와 유사한 포지션과 연차의 다른 사람 이력서를 보는 것도 좋은 팁이다. 나보다 이룬 성과가 많고 업무 커버리지도 넓은 사람의 이력서가 있을 거고 그 반대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장 최고 수준의 연봉은 얼마고 이를 받으려면 어느 정도 역량치가 있어야 되는지 감을 잡는다.
이러한 정보를 토대로 내가 요구할 수 있는 연봉 수준을 정한다.
둘째로 일단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우두커니 기다리지 말고 근거를 들어서 희망하는 수준을 진지하게 제안하자는 뜻이다. 타당한 근거를 들어 협상에 임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가치는 일단 올라간다. 주장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다.
회사의 프로세스가 선통보 방식이라면 먼저 안을 듣고 이야기해도 된다. 하지만 이때 할 이야기는 Yes/No의 단답식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수준을 또박또박 근거를 들어서 이야기해야 한다.
또 희망연봉을 물어오는 경우여도 '얼마입니다'라고 금액만 이야기하지 말고 근거를 꼭 이야기하자. 10%가 아닌 30% 인상을 주장하려면 말이다.
우리 회사의 모바일 개발자 중 한 분은 연차가 15년인데도 8년 차 수준의 연봉으로 입사하신 분이 있다. 연차 대비 스킬 수준이 높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입사 후에는 기대 이상의 준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시는 게 아닌가! 본인의 실력을 모르지 않았을 터인데 유독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이 분은 인터뷰 당시에 협상 자체를 시도하지 않으셨었다(이후 우리는 연봉협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수준을 맞춰가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다음과 같이 협상의 포문을 열도록 하자.
"제가 원하는 기본급 수준은 이 정도입니다. 다소 높은 인상률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제가 그 근거를 함께 말씀드려도 될까요?"
셋째로 처우 협의는 협상이다. 협상에서 사용할 전략은 근거로 말하기다. 시장에서의 나의 위치를 파악했다면 내가 남들보다 못한 점은 제쳐두고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게 성취한 부분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걸 회사의 성과 기여도와 연결시켜서 이야기하자. 그리고 성과를 이야기할 때는 항상 숫자가 따라와야 한다.
직전 직장에서의 근무기간이 길수록 깊이 있게 업무를 경험했기에 설득력이 있다.
업무 커버리지가 넓은 경우 시야가 넓고 프로세스를 완성도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점을 어필할 수 있다.
불리한 시장 포지션에서 만들어낸 성과는 현재 회사의 위치가 불리하다면 이점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가 아닌 혼자서 완수해 낸 프로젝트가 있다면 일당백의 인재가 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케이스를 실제로 보았고 대략 40% 수준을 인상해서 채용했다.
"제가 제시한 수준에 비해 다소 경력이 짧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PM 포지션에서 남들과 다르게 시장조사, 기획, 실행, 운영의 모든 A-Z를 경험해 보았습니다. 보통 PM들은 본인이 담당한 작은 부분밖에는 경험하지 못한다는 걸 아실 겁니다. 저는 매우 유니크한 케이스로 실제로 서비스 운영 이후에 고객들의 반응을 다시 서비스에 반영하면서 전환율을 37% 높인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원자들보다 회사에 훨씬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상대적으로 열위에 놓인 회사에서 영업을 해왔습니다. 소규모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니치마켓을 잘 공략하여 월매출액을 2년간 200% 이상 달성하였죠. 이와 같은 특별한 경험은 지금 귀사의 상황에도 잘 적용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30%의 연봉인상률이 높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강점은 적어도 B2B 영업에 있어서 30% 이상의 큰 가치를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협상은 공감을 기반으로 한다. 와튼스쿨의 협상학 교수인 모리 타헤리포어(Mori Taheripour)의 말씀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다른 옵션이 있으니 싫음 말아'라는 태도는 좋지 않다.
"사실은 저는 이미 다른 곳에서 이 연봉으로 제안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만 있다면 귀사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귀사의 비전이 제가 갖고 있는 생각과 일치(Alignment & Motivation)하고, 현재 회사 상황이 제가 경험했던 환경과 유사하여 어려운 목표도 해 낼 자신이 있기 때문(Performance)입니다. 한번 더 고려를 부탁드립니다."
옵션을 들고 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진정성 있게 어필하는 것도 좋다.
"저는 귀사에서 필요로 하는 포지션에 명확히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성취했던 결과들은 귀사의 마케팅팀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진정으로 올인해서 모든 역량을 발휘하려면 경제적인 걱정은 더 이상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가 제시드린 금액은 단순히 높은 금액이 아니라 귀사에서 제가 가진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금액입니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자신 있다면 목표달성을 조건으로 베팅하자. 내가 시장의 다른 지원자들보다 낫다는 점을 충분히 어필했는데도 추가 인상은 어렵고, 나는 여전히 이 회사가 좋다면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수습기간 동안엔 회사의 조건대로 일하고 그 기간 동안 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수습 종료 후 인상률을 높여달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수습기간은 채용을 검증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인터뷰 때 보여주지 못한 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인상률 조정의 조건은 타이트한 숫자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지만 내가 자신 있다면 도전해 볼 수 있다. 실패해도 채용 자체가 취소되는 것도 아니니 크게 손해 보는 것은 없다.
수습기간이 짧다면 기간에 상관없이 목표 달성 시점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나의 가치를 스스로 검증했고 그게 회사에도 크게 기여하는 것이 맞다면 합리적인 제안이라는 것이다. 지원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높은 인상이 아깝지 않은데 완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회사 입장에서도 테이크할 것이다.
지난 8년 동안의 회사 운영과 채용의 사례들로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추려보았다. 이 글이 열심히 노력하고 커리어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유독 이직할 때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상률이라는 산수가 가진 성격은 이렇다. 4,000만 원의 연봉에서 30% 인상에 성공하면 5,200만 원이 되고 다시 30%를 인상한다면 6,760만 원이 된다. 하지만 4,000만 원의 연봉에서 10%밖에 인상시키지 못해서 4,400만 원이 된다면 6,760만 원을 만들려면 그다음에 54%를 인상시켜야 한다.
어느 회사든 쉽지 않은 인상률이다. 그래서 회사가 싫어서 도망치듯 이직하는 것보다, 나의 포트폴리오를 착실히 쌓아서 준비가 되었을 때 이직하는 것이 연봉을 높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