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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Paloma Feb 19. 2024

Hello there, London!

시작은 한 통의 문자 메시지였다. 

[소멸 예정 마일리지: 50,978마일]

지금까지는 매년 조금씩 없어지는 것을 두고 보았지만, 이번에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심지어 경영마저 불안정한 아시아나 항공사의 것이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어디라도 가보자 마음을 먹었다. 노트북을 열어 서울-런던 사이의 여정을 검색했다. 최대한 내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바쁘지 않은 날을 모두 고려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구간은 1월 말과 2월이었다. 하지만 마일리지로 좌석을 구매해야 하니, 내가 원하는 날을 지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출도착 날짜를 앞뒤로 옮겨가며 여러번의 검색끝에 겨우 일정을 맞추어 예약을 마쳤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티켓구입 다음에 한꺼번에 몰려왔다. 4년 전 독일 ‘마인츠(Mainz)’ 여행을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국내여행만 다니다 보니,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낯설었다. 나는 여태껏 적당한 예산을 잡아 현금으로 환전을 해서 지갑에 들고 다니는 아날로그식의 여행을 해왔다. 주로 '유로(EURO)'를 사용했으니 여행이 끝나고 돈이 남더라도 다른 나라로 갈 때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방법으로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런던의 모든 대중교통과 소비활동은 카드나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을 통해 ‘컨택리스(contactless)’로 결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구글페이’, ‘애플페이’, ‘트래블월렛’, ‘트래블로그’, ‘오이스터카드’… 세상에 이게 다 뭔가? 생소한 이 시스템부터 먼저 파악해야 했다. 


구글페이’와 ‘애플페이’는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오이스터카드’는 일정금액을 충전해 가며 사용하는 런던의 선불 교통카드였다. 여정이 끝난 후 남은 금액을 환불받을 수 있지만, 7파운드의 카드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었다. ‘트래블월렛’과 ‘트래블로그’는 은행 계좌에 연동시켜 일정 금액을 온라인 환전으로 카드에 넣어두고 꺼내 쓰는 일종의 체크카드 같은 것이었다. 여행 중 돈이 모자라면 연동된 계좌에서 계속 추가할 수도 있고, 카드를 분실했다면 앱에서 결제를 막는 기능도 있었다. 교통과 소비 모든 결제를 할 수 있고 돈이 남으면 한화로 재환전도 가능했다. 서비스회사도 ‘비자’, ‘마스터’, ‘유니온’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 편리해 보였다. 나는 ‘트래블월렛’과 ‘트래블로그’를 각각 ‘비자’와 ‘마스터’로 지정해 카드신청을 해 두었다. 카드는 이틀 만에 집으로 배송되었다. 휴대전화에 다운로드해 둔 앱을 활성화시키고 일단 500파운드를 환전해 넣었다. 하지만 여전히 처음 보는 이 플라스틱 카드가 런던에서 통용될 것인가 불안했다. 결제오류가 날 경우를 대비해 해외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도 따로 챙겼다. 아주 오래전에 나는 멍청하게도 신용카드 한 장만 들고 여행을 떠났다가 그 카드가 국내전용이라 큰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여행 전에는 해외결제 신용카드를 반드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다음은 최신 정보를 수집할 차례였다. 서점과 도서관을 다니며 새로운 장소를 메모하고, 인터넷을 찾았다. 검색을 하면 할수록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옛날의 런던이 아니었다. 책과 온라인상에 정보가 너무 많이 넘쳐나는 탓이었다. 계속해서 로컬 맛집과 숨은 관광지를 구글맵에 저장하다가 갑자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온라인상에서 유명하다면 그것이 진짜 로컬의 맛집일까? 의문스러웠고, 그런 곳을 찾아다니다 대표 관광지를 놓칠 수도 있었다. 더구나 남편은 런던 방문이 처음이었다. 나는 메모해 두었던 스폿들을 무시하고 내가 잘 아는 포인트로 동선을 다시 계획했다. 지난 5년 동안 수리와 단장을 마친 ‘빅벤(Big Ben)’을 시작으로 ‘버킹엄 궁(Buckingham Palace)’,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 ‘타워브리지(Tower Bridge)’… 등의 전통적인 관광지에 ‘런던아이(London Eye)’, ‘더 샤드(The Shard)’, ‘테이트 모던(Tate Modern)’같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랜드마크를 추가했다. ‘토트넘(Tottenham Hotspur)’ 경기장 투어도 포함했다. 아쉽게도 경기관람 티켓은 구하지 못했다. 축구 티켓을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그전에는 짐작도 못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는 날은 여유가 있어야 했고, ‘소호(Soho’)의 펍에서 맥주를 시켜놓고 멍 때리는 시간도 있어야 했다. ‘웨스트엔드(West End)’의 수많은 뮤지컬 중 아무것이라도 하나 보고 싶었다. ‘코벤트가든(Covent Garden)’의 예쁘고 화려한 가게를 구경하는 것도 놓칠 수 없었다. 이러한 곳들만 가지고도 일정이 꽉꽉 채워졌다. 로컬만 안다는 숨은 맛집? 그런 곳까지 갈 시간은 없었다. 


매일매일 호텔도 검색했다. 지구상에서 부동산이 가장 비싼 도시인 줄 알고는 있었으나, 현재 런던 시내의 숙박비는 내 상상을 초월했다. ‘깨끗하면서 중심가에 위치하는 글로벌체인의 호텔’이 내가 찾는 조건이었다. 때문에 총 여행경비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호텔예약으로 사용했다. 물론 더 찾아보면 게스트하우스나 비앤비 같은 곳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런던 미술관 산책’이라는 책도 한 권 샀다. 준비를 빠짐없이 마쳤는데도, 오랜만 집을 떠나 먼 곳으로 가는 길은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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