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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선 Jun 30. 2024

도루강 인근에서 어슬렁거리다

돌바닥에 부딪치는 현란한 빗소리에 잠이 깼다.

포르투에서의 아침을 제대로 맞는 날이다

친구들이 깰까 싶어 살금살금 조심하며 그림 정리를 하는 사이 

부스스 일어난 동생은  빵을 사 오겠다며 나간다.

이 빗속에? 

언니들 먹거리 챙기느라 애쓰는 동생이 고맙다.

할아버지가 갓 구운 빵이라며 우리를 불러 식탁 앞에 앉힌다. 

이른 아침이라 향좋은 커피는 없어도 빵에 진심인 포르투에서 

눈치 안 보고 실컷 먹을 수 있어 좋다.



숙소를 아침에 일찍 비워주기로 해서

서둘러 짐을 꾸리고 우버 택시를 불러 골목길을 돌아 돌아

10분 정도 달렸을까,  도루강 뷰가 펼쳐지는 숙소를 기대했는데

도심 골목 중간쯤에 위치한 건물 앞에 우리를 내려놓고 가버린다.


여긴 어디? 건물 안에는 한 남자가 아침을 준비하는 듯하고 

저 멀리 책상 앞에 젊은 청년이 앉아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아침을 준비하던 친절맨은 공간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탁자로 우리를 안내하며 우리의 얘기를 유심히 듣더니 

릴랙스하며 쉬라고 한다.

하나 둘 사람들이 탁자로 모이고 우리까지 아홉 명이 앉아 건네주는 커피와 빵을 대접받았다. 

브라질, 영국, 포르투, 국적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명상하는 종교단체를 이끌어가는 창단 멤버라는 얘기를 한다.

동생의 소개를 시작으로 우린 자연스럽게 그들과 얘기를 이어 갔고 

그림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 청년 마르코와 

서로의 그림을 보여주며 우린 곧 인스타 친구가 되었다.


선한 눈매의 정감 있는 표정과 신뢰가 듬뿍 배어있는 말투로

짐을 봐 주겠다는 얘기에 

숙소로 이동하기 전에 포르투 시내를 다시 걸었다. 

넓지 않은 도시 포르투를 걷다 보면 유명 명소와 자주 만나게 된다.

골목을 돌고 돌아 나오면 포루투 시청앞이고 렐루서점을 만나고 카르무성당앞이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며 시야를 가리지만 사람들이 생각보다 우산을 쓰지 않는다. 

우비나 아웃도어만을 걸친 채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다니고 있다.

가게들을 기웃거리다 볼량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 향신료 그리고 먹거리들이 늘어서 있는 장터를 둘러보고 나오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개어있다. 

환하게 개인 하늘은 하루의 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알아챈듯하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비싼 신발을 구입했다. 

무겁지 않고 튼튼한 신발로.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속설을 믿고 싶다.

지금 신고 온 운동화가 맥없이 뒤꿈치부터 닳고 있어 빗물이 곧 스밀 태세다. 

기분 좋은 쇼핑을 하고

커피를 즐기는 명상센터 분들에게 선물 할 브라질 원두를 구입하였다.

마르코는 가벼운 허그로 나와의 만남을 표현한다. 



우리는 또다시 택시를 불러 골목골목을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나무계단이다. 

힘겹게 캐리어를 끌어올리고 방문을 여는 순간 

숙소 창문을 통해 보이는 도루강의 풍경이라니.......

표현할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반스케쳐 스승이신 승빈작가님이 많이 그렸던 풍경이 여기 있었다. 

좋은 숙소를 선택해 준 동생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창밖 풍경으로 만족할 수 없어 서둘러 밖으로 나오니 재즈 바가 보인다.

빼꼼히 열려 있는 재즈 바로 들어가 와인 한 잔씩을 주문한다. 

재즈 바 테라스에 서니 도루강의 반짝이는 물빛, 

느릿느릿 비행하는 갈매기, 주황색 지붕의 집들,

따뜻하고 아늑한 시간의 숨소리가 가슴속에 스며든다.

비릿한 비 내음을 몰고 오는 습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지만

여행자의 마음은 더없이 풍성하다.

저널 북을 꺼내 그림을 그린다.

그래 이게 진짜 어반의 매력이지. 



갑자기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진다.

마침 저녁으로 예약한 로컬 맛집으로 향할 시간이다. 

빗물에 반질거리는 돌바닥을 조심스럽게 걸어 

멀지 않은 곳에 높고 긴 문이 열리며 오픈을 알리자마자 

두 번째 고객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오늘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또다시 저널 북을 꺼내 하나 둘 나오는 요리를 퀵드로잉으로 스케치한다.


쉽게 맛보기 힘든 농어 한 마리가 숯불에 구어져 나왔다. 

큼직하게 썰어 익힌 감자와 양배추 찜, 그 위에 길쭉한 당근의 달큰한 맛까지 완벽했다.

두 딸과 어머니가 함께 운영하는 식당으로

끊임없이 고객들을 살피면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손님들과 얘기를 주고 받고 친척집에 놀러온 듯 편안하고 정겨운 대화가 이어진다.

그림을 보여주며 할머니와 사진을 찍고 따님한테  사인을 받고... 기분 좋은 밤이 지나고 있다. 


우린 그 길로 도루강변으로 걸어 나와 물결에 비치어 환상적인 모습으로 반짝이는 야경에 취해 본다.

강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틈을 지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맥도날드를 지나고 

따뜻한 불빛 아래  달콤한 포트와인과 샹그리아 향을 맡으며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파두 바를 지나고

곁을 지나는 트램의 불빛에 넋을 잃는다. 

도루강을 배경 삼아 사진 속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 행복하다.

화려한 불빛이 잔물결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 밤

더 느리게 걷고

더 느리게 느껴보는

더없는 낭만적인 포르투의 밤이 가슴속으로 훅~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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