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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종 Aug 30. 2023

나의 첫 중동, 첫 아랍,
그리고 나의 첫 월드컵

프롤로그

프롤로그     

 이번에도 아시아다. 짧지 않은 스물아홉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아시아를 떠나본 적이 없다. 어릴 적 우리집은 장거리 해외여행을 갈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유럽이든 미국이든 낯선 풍경과 낯선 문화의 서구권 여행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성인이 된 후 두 번의 탈아시아 시도가 있었다. 첫 번째는 군 전역 직후였다. 당시 군인들의 평균 월급은 20만 원 정도였는데 매달 10만 원씩 모으고, 약간의 용돈을 더해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당시 가고자 했던 곳은 프랑스 니스. 누구나 그런 경험이 한 번쯤 있겠지만, 어떤 사진을 보고 무언가에 홀린 듯 빠져드는 여행지가 있다. 나에게는 그게 니스 해변이었다. 해변에 누워 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면, 21개월 군생활 노고에 대한 완벽한 보상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쌓여가는 월급통장을 보며 조금씩 계획을 세워가던 시기, 생활관 텔레비전에 갑자기 유럽의 뉴스가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IS 테러였다. 이슬람 무장단체 IS. 생전 처음 들어보는 조직이 유럽 곳곳에서 테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초창기 테러단체의 목표지점은 서유럽이었고, 그중에서도 프랑스였다. 심지어 니스 해변에서의 사건사고도 터져 나왔다.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는 무분별한 테러와 부모님의 만류 끝에 나의 첫 유럽여행 시도는 좌절됐다. 그렇게 복학을 하고 취준을 거쳐 회사원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월급도 벌겠다. 길게 쓸 수 있는 첫 휴가는 미국으로 떠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의 최애 스포츠는 농구. 팍팍했던 취준 시기에 힘이 돼줬던 NBA 경기를 보고 싶었다. 클리블랜드 시절부터 좋아한 르브론 제임스가 레이커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우승도 가능한 시즌이었다. 여행시기를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역시 레이커스의 경기 일정이었다. 지금보다도 농구에 미쳐있던 때라, LA에 가서 10일 동안 농구만 네 번 보는 일정을 잡았다. 농구 팬에게 완벽한 일주일이 있었다. 3월 4일부터 11일까지 레이커스의 상대팀은 네 팀. 필라델피아, 밀워키, 클리퍼스, 마지막으로 브루클린이었다. 르브론과 AD에 이어서, 필라델피아의 엠비드와 시몬스, 밀워키의 아데토쿤보, 클리퍼스의 폴조지와 레너드, 브루클린의 듀란트와 어빙을 만날 수 있었다. 커리와 탐슨을 제외하면 NBA 최고의 스타들을 모두 볼 수 있는 환상적인 일주일이었다. 8개월 전부터 비행기를 예매하고 휴가도 올려놨다. 여행을 100일 정도 앞두고 이제 막 숙소와 동선을 고려할 때였다. 당시 나는 토요일 아침뉴스를 하고 있었는데, 연초부터 이상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신으로 등장하던 그 뉴스는, 한 주가 지나자 리포트가 되더니, 한 달이 더 지나자 온 뉴스를, 온 나라를, 온 세계를 점령했다. 그렇다. 코로나19다. 당연하게도 휴가를 떠날 수 없었다. 무리해서 미국에 간다 하더라도, NBA 역시 무관중 경기를 하며, 나의 별들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위약금과 함께 비행기를 취소했다. 그러나 위약금보다 더 쓰라린 건 내 인생 가장 기대했던 10일이 증발했다는 사실이었다. 

 IS테러와 코로나19. 어쩌면, 무리해서라도 떠났다면 색다른 추억이 됐을 테지만, 나는 그 정도로 과감하진 못했고, 그 정도로 용감하지도 않았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그렇게, 나의 두 번의 탈아시아 시도는 무산되며, 30년 인생을 고스란히 아시아에서 보내게 됐다.     

스포츠 캐스터를 하면서 즐거운 점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출장이다. 올림픽과 월드컵 등 세계인들이 모이는 축제의 현장에 직접 가서, 그 열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게 이 직업의 강력한 매력이다. 입사 이후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해외출장에 나섰고, 2021년 도쿄 하계올림픽, 이듬해 베이징 동계올림픽, 그리고 같은 해 11월, 카타르 월드컵에 참여하게 됐다. 도쿄는 첫 해외출장이라 들떴고, 베이징은 생애 첫 중국행이라 설렜다. 카타르는 무려 첫 ‘월드컵’이고 나의 첫 중동, 첫 아랍,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아시아긴 했지만 첫 장거리라 기대가 컸다. 

기대와 별개로, 장장 열 시간이 걸리는 비행, 잠이 안 오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걱정도 됐다. 그래서 탑승 전 라운지에서 양주를 충분히 마셨다. 취하면 잠이 잘 오겠지 하며. 사실 그냥 비싼 술을 공짜로 먹을 수 있어서 그런 것도 맞다. 부정하지 않겠다. 한편으로는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가면 어떡하나 걱정돼서, 탑승 직전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오기도 했다. 항공편은 카타르 국적기 카타르항공이었다. 처음 타보는 항공사였고, 타 본 비행기 중에 외국인 승무원이 가장 많아서 신기하기도 했다. 좌석은 생각보다 넉넉했고, 무엇보다도 특별했다. 쿠션과 담요까지 ‘Football is amazing’이라는 문구가 적힌 월드컵 에디션으로 준비돼있었다. 이륙 전 안내영상 역시 남달랐다. 락커룸 안에서 레반도스프키 등 실제 축구선수들이 벨트와 구명조끼 착용법을 직접 알려줬다. 이륙도 하기 전에, 그저 비행기를 탄 것 뿐인데, 정말로 월드컵에 간다는 게 실감 났다. 기체가 성층권에 진입한 뒤, 곧바로 기내식이 나왔다. 이미 라운지에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왔지만, 기내식 배는 또 따로 있지 않은가. 닭고기덮밥. 그리고 레드와인을 곁들이며 기분 좋은 설렘에 취했다. 걱정과 달리, 기대했던 대로 금세 잠이 들었고 여섯 시간 쯤 뒤, 비몽사몽 겨우겨우 눈을 떠서 두 번째 기내식을 먹었다. 아이패드에 담아갔던 영화는 단 한 편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카타르에 도착했다.        


처음 타보는 카타르항공


Football is Amazing. 비행기를 타자마자 월드컵에 간다는 게 실감이 났다.
첫번째 기내식. 맛은 무난했다. 와인이 맛있었다. 두 잔 정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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