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을 하고 신랑이 출근을 하자 왜 이리 심심한지. 차라리 휴직을 하지 말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땐 나의 영원한 친구.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책을 보던지 음악을 듣던지 혼자만의 시간을 좀 즐겨라. "
' 엇 ! 안통할 때도 있구나.'
책은 읽으면 금방 지루했고 혼자 있으려니 너무 힘이 들었다.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말할 상대가 없으니 말이다. 시간이 더디 갔고 침대에 누워만 있으려니 답답해 미칠것 같았다. 바쁘다고 연락못한 친구와 통화를 해볼까? 얼마전 출산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잘 지냈어 ? "
" 웅 잘 지내지. 넌 잘 지내고 있어 ?"
" 그럼. 아기도 잘 크고 ? "
지인들과 연락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오가는 아이 이야기로 최대한 연락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깨에 뽕이차 하늘을 찔렀고 자연스런 대화가 두렵지 않은 내가 좋았다. 얼마나 느끼고 싶은 감정이었는지... 감격이 몰려왔다. 신체 중에 혀는 제일 간사하다고 했던가.
" 나 임신했어. 아기는 몇개월 됬지 ?
" 어머 너무 축하해. "
어찌보면 심심했다기 보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답답하고 대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답답한건 핑계였을 뿐...
이전에 안부차 전화온 지인이 " 아이는 안가져요? "라고 물은적이 있다.
" 아이가 갖고 싶다고 바로 가져 지는 건가요? ㅎㅎ "
답변하니
" 아... 아이가 안생기는 거구나 ? "
너무 상처가 되어 부리나케 전화를 끈었던 기억이 있다. 애꿎게 다른사람에게 화풀이 할 필요는 없지만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아기 주제가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얼마나 받고 싶은 축하였는지... 친구는 그날 바로 임산부를 위한 바디로션 세트를 선물로 보내주었다.
까톡
퇴원을 하고 동생이 몸은 괜찮은지 연락이 왔다.
- 몸은 괜찮아 ?
- 웅 괜찮아. 오늘 친구한테 임신 소식들려주니 선물 보내줬네 . 임산부용 로션이 따로 있더라 ..
- 친구한테 이야기 했어 ?
- 웅
- 나는 지인들한테는 12주 지나고 나서 이야기 했어. 가족한테만 이야기 하고
아차 싶었다. 원래 안정기가 지나야 이야기 하는 것이 좋다고 누누이 들었는데 그만 승리의 도취감에 빠져 나도 모르게 절제력이 무뎌진 것이었다.
아... 깊은 한숨과 속상함이 흘러나왔다. 왜 이렇게 신중하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마음을 못지키는지 이제부터라도 지켜야지. 절대 12주 지나기 전에 이야기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에 다짐을 했다.
다음날 아침...
" 여보 오늘 혼자 병원가도 괜찮겠어? "
" 내가 무슨 어린애야 ? 병원을 왜 혼자 못가.. "
" 혼자 보내기 싫어서 그러지. "
" 괜찮아."
출근을 한지 얼마 안되서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 여보 "
" 웅 왜 ? "
" 나 잘 이겨내볼게... 아파도 잘 참고 화이팅해서 우리 가족 내가 잘 이끌어볼게 약한 소리 안하고 "
" 뭐야.. 지금도 잘하고 있어.. "
"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계속 아프니까..."
올 한해 계속 건강 이슈로 힘들어하던 본인을 이겨내보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가 생겼으니 더 힘을 낼거라는 내용이었다.
"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오늘 일 잘하고 나 병원 이따가 갔다와서 전화 할게 . "
택시를 타고 병원을 가는 중에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 병원 다녀 왔어? "
" 아니 가는 중이야. "
" 갔다와서 전화해. 기다리고 있을 께. "
' 병원 다녀오는 일에 왜 이렇게 다들 걱정인지 유난히 전화들이 많네'
병원에서의 대기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늦게 도착했고 다행히 환자가 별로 없어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의 크기를 재는데 0.8 미리 정도 였다. 사일전에 0.67이었기 때문에 사일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커 있어야 했다.
' 왜 이렇게 안컸지 ?'
심장소리를 듣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심장이 멈췄어요. "
" 심장이 멈췄다구요? 깜박거리는 것도 안보이나요? "
" 네 .이 쯤에 심장이 있는데 전혀 깜박거리지 않네요. "
' 무슨 소리지 ? 그럴리가 없는 데 "
진료실에 앉자 마자 물었다.
" 그럼 며칠 뒤에 오면 되는 건가요? "
" ...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 이럴 때 계류유산 됬다고 합니다. 유산이에요 "
" 유산이요 ? "
믿을수가 없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심장이 뛰고 잘 자라고 있었는 데 말도 안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멍하니 눈만 깜박이고 있자 선생님이 말했다.
" 남편분 같이 오셨을까요? "
" 아니요..."
기계처럼 대답이 나왔다.
" 마음 추스리시고 소파술 수술 날짜 잡으시고 태아 염색체 검사도 진행하는 걸로 할게요 "
" 염색체 검사요? 그건 뭔가요 ? "
" 염색체가 이상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거에요. "
" 만약 염색체 이상이 없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요? 엄마에게 문제가 있는 건가요? "
" 일단 염색체 검사 결과 보고 이야기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
병원을 나오는 데 주변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음소거된 세상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듯 멍하니 땅만 바라봤다. 아차 전화 하기로 했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 여보.. 나 병원 왔어 "
" 웅 . 난 이제 점심 먹으러 왔찌롱... "
" 여보.. 이게.. 내가... 나 유산이래... 아이가 심장이 멈췄대."
" ...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여보... "
" ... "
나보다 더 충격이 심했나보다.
" 여보 "
다시 한번 불렀다.
" 정말이야 ? "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웅웅. 나 유산이래.. 나 삶의 소망이 끊어진거 같아. 살고 싶지 않아. 흑흑흑 "
" 어디야.. 내가 갈게... "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준 아이가 이렇게 허망하고 허무하게 갔다니.. 그 어떤 손도 쓸수 없이 그냥 가버리다니... 믿을 수 없어서 알아듣지 못해서 며칠 지나면 괜찮은 거냐고 선생님에게 말했던 내가 스쳐지났다. 갑자기 너무 안쓰럽고 가여웠다. 내가 너무 가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다. 회사에 이야기가 알려질 테고 또 이야기는 어떻게 꺼내야 할지... 수술은 또 어떤건지... 그래.. 어쩐지 나한테 이렇게 좋은 일이 쉽게 생길리 없지. 항상 남들보다 늦고 항상 남들 축하만 해주고 항상 남들이 다 깨닫고 난 뒤에 뒷북
으로 맨 나중에 뭔가를 받았으니까... 자기비애와 연민 정죄감... 부정적인 모든 것들이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