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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현 Sep 14. 2023

열네 살에 혼자 떠난 중국 (1)

중국어라는 무기를 찾아내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우면서 자라곤 한다. 한국어도 아직 익숙지 않은 시기부터 말이다. 나도 남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영어 대신 중국어를 배웠다는 것 말고는.


    어린 시절 나는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라왔다. 자연스레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많지 않았고, 그러면서 나는 할머니와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유치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유치원에서 보냈으니 말이다. 부모님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유치원에 있는 나를 위해 중국어를 배우게 하셨고, 그 영향으로 나는 영어보단 중국어를 먼저 시작하게 되었다(그리고 이 판단이 내 인생을 크게 바꾸기도 하였다).

    노래를 부르고, 카드놀이를 하며 단어암기는 없는 언어공부. 어린 시절의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한자를 유독 좋아했다고 하니, 중국어라는 놀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만약에 중국어를 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나는 금방 포기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중국어는 의외로 나랑 잘 맞았다. 오히려 중국어를 알기 전에 자주 접했던 한자보다 쉬웠으니 말이다(우리가 사용하는 한자는 번체자를 사용하고 중국어는 간체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 韓國, 韩国처럼 말이다). 나는 <마법천자문>을 보며 한자를 구경하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그렇게 재미있어 한 한자랑 비슷하면서도 단순한 중국어가 나랑 잘 맞는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꾸준히 중국어를 공부하며 천천히 성장해 나갔다. 나도 남들보다 잘하는 것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나만의 무기를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학습 스타일 또한 변화가 생겼다. 기존엔 노래를 부르며 언어랑 친해지는 기회를 가지는 ‘놀이’ 형식으로 학습을 했다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HSK(汉语水平考试, 중국어 어학시험)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단어암기와 회화 연습 등 진정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암기한 단어들을 토대로 문장을 만들고 한어병음이 없는 글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2015년, 초등학교 6학년, 열세 살이라는 나이로 HSK 3급을 합격하였다. 점수도 250점으로 전혀 낮지 않은 점수였다. 내가 열심히 한 일에 대한 첫 보상을 받은 듯 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무기로 삼고 싶은 것에 대한 증명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중국에서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 없니?


    같은 해 - HSK 3급 시험을 합격한 그 해 - 부모님께서는 나를 거실로 불러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다.


“중국에서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 없니?”


    부모님은 딱 한 마디의 말만 하셨다. 믿기지 않았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어보다 중국어가 좋은 건 사실이었고 중국이 앞으로 더 성장할 거라는 사실은 초등학교 6학년 당시의 나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생각들은 다 머릿속에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 막상 밖으로 꺼내려하니까 거부감부터 들었다. 겁이 많이 났다. 더불어 창피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주변 친구들한테 내 중국어 실력을 과시하며 앞으로 중국은 최고가 될 거라고 큰소리치던 내가 너무 싫었다. 남들은 이런 기회가 있으면 다들 좋다고 달려들 텐데, 난 왜 선뜻 가겠다고 대답하지 못할까, 답답하기만 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던 탓이었을까, 일단은 보류하고 초등학교 과정은 다 마치기로 했다. 만약에 유학을 가더라도 중학교로 넘어가는 시점에 떠나자고, 그렇게 약속을 하고 난 이제 중국으로 떠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 채 살아가게 되었다. 중국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마인드로 중국어 공부도 더욱 열심히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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