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놀랐냐고 물어보지 않았던 그날
아빠와 바람난 아줌마를 엄마로 알고 있었던 5살의 나는 그 시절 유아원이라는 곳에 다녔다. 집에서 나와서는 좀 데려다 주나 싶다가 “여기서부턴 혼자 갈 수 있지? “라고 금방 손을 놓고 다른 길로 엄마는 가버렸다. 아쉬웠지만 투정 부려도 들어줄 사람은 없는 거 아니깐.
근데 이 날따라 내 어린 시절의 등원길이 생생하다. 불청객이 등장했기 때문. 커다란 진돗개 한 마리가 나를 쫓아와서 길을 가로막았다. 너무 무서워서 가슴이 두근두근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진돗개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왜 도와달라고 소리치진 못했을까. 그러다가 타이밍을 보곤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헐떡거릴 만큼 힘차게 달렸지만 5살짜리가 달려봤자지…
금방 흰색백구는 내 앞을 또 가로막았고 나와 다시 눈싸움을 했다. 이번엔 눈물이 터진 채로 달렸다. 아까보다 더 심장은 두근두근 했다. 달리다가 모르는 아줌마 옷자락을 잡고 개를 가리켰다. 멀리서 그놈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사나운 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공격할 마음도 없었던 것 같고.
내 유아원 가방을 보고 그 아주머니는 나를 유아원까지 데려다주고 상황을 선생님께 설명해 주셨다. 내 얼굴에는 눈물이 말라붙은 느낌이 들었다. 하원할 즘에 엄마가 왔고 선생님께서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엄마는 집에 가는 길에 내게 말했다.
“유미야 그럴 때를 대비해서 가방에 돌멩이 같은 걸 넣어가지고 다녀야 돼.”
“다음에 또 개가 나타나면 돌멩이를 던져.”
나는 돌멩이를 미리 준비하지 않은 나를 자책했다.
“그때 집 앞에서 주운 돌멩이랑 장난감 진주 목걸이 알맹이를 내 가방에 넣어둘걸…“
지금 생각해 보면 5살밖에 안된 애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아무도 놀랐냐고 포옹해 주는 사람도 없이 결국엔 그 모든 일을 내가 해결하지 못했음을 자책했다.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의 사정이 있겠지라고 항상 생각했다.
애는 애 같아야 하는데 너무 눈치가 빠르고 분위기 파악이 빨랐던 나는 어른들의 사정을 필요 이상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커온 나는 결혼한 이후 아이를 낳고 내 상황 때문에 아이에게 상처주게 되는 상황을 극도로 힘들어했다. 마음이 당근 채 썰듯 썰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첫째 아들이 5살 되었을 때 나는 회사를 퇴직했다. 회사에서 야근하며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엄마를 부르는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시기이지만… 5살 시절 울고 싶어도 못 울던 내면아이가 있던 나는 투정 부려주고 엄마를 찾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옆에 있어주고 안아주고 싶었다.
경단녀다 무슨 충이다 말도 안 되는 단어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 그런 걸 갖다 붙이려는 사람들이 안 됐지. 요즘은 워킹맘이 많아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상황만 가능하다면 어린 시절 애정을 듬뿍 주는 양육자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고 축복이다. 내가 그렇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해 더 그렇게 생각하는 점도 분명 있다. 물론 육아란 만만치 않은 일이고 그런 희생보단 내 자리에서 내 할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이에게는 훌륭한 교육이지만 내 선택은 이렇고 지금까지 후회는 없다.
3년간 그 집에서 숨죽여 놀고 잘해보려고 했던 내 모습이 가끔 떠오르지만 지금 우리 집에서 깔깔 거리며 웃으며 놀다가 "엄마 안아줘~" 하며 양팔 벌리는 내 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나는 다 괜찮다. 더 이상 안아달라고 하지 않을 때까지 마음껏 무한번 안아주고 싶다.
나는 글쓰기로, 내 아이들과 사랑을 주고받는 것으로 내 상처들을 모두 덜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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