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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도 Jul 08. 2024

보이는 장애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있다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나에게, ‘보이는‘ 장애란

엄마의 서랍에서 나의 장애인 등록증을 발견했을 때, 누군가 머리를 세게 내리친 것 같았다. 내가 대한민국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심장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살, 성인이 되어서였다. 무려 14년 동안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았다. 그건 나의 장애가, 보이지 않는 장애였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장애인’하면 떠올리는 것은 불편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다.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짚고, 안내견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 이들은 배려와 도움이 필요하다고, 가족들의 고난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애인과 달랐다. 심장병을 앓았고, 수술을 여러 번 받은 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체육시간 격한 운동을 해야 할 때를 빼면, 특별한 도움을 받은 기억이 없다. 장애를 인식할 필요도 없이 비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공부하고, 경쟁하면서 살았다. 손에 꼽는 전교 석차를 차지하기도 했고, 전교 회장 선거에 나갈 정도로 친구가 많았다. 그래서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도 나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 전, 웹툰 작가 주호민 씨 아들 사건의 1심 판결이 났다. 자폐성 장애 아동인 주호민 씨 아들에게 특수 학급 교사가 한 언행이 아동학대로 인정됐다. 뜻밖에 이 사건이 드러낸 것은 함께 살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 부재였다. 장애 아동은 비장애인 아동과 같은 학급에서 교육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들, 왜 자녀가 장애가 있는데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았냐는 말들이 기사 밑을 가득 채웠다. 장애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장애인이 옮겨지는 전형적인 과정이다.

보이는 장애는 그래서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된다. 장애 자체 때문이 아니라,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라는 사람들 때문이다. 나 또한 장애가 사람들의 눈에 보였다면, 그렇기에 비장애인 아동과 분리되기를 요구 받았다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 답은 명확히 ‘아니다’이다. 우리는 특수 학급 아동이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전교 회장이 되어 비장애인 친구들을 돕는 세상을 상상하지 못한다. 누군가 ‘학창시절’을 상상해보라고 한다면, 이들은 그 상상 속 구석에도 자리하지 못한다. 보이는 장애는 이렇게 사람을 가린다. 그래서 한국의 특수교육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사는 도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해야 할까? 장애인인 내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친구로 지냈던 것은 운이 좋았던 일로 치부해야할까? 장애인은 분리되는 게 당연한 일일까?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비장애인과 어울려 사는 것은 이들의 기본적인 권리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는 장애인에게 통합 교육 시스템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2022년 가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에 특수교육을 받는 장애아동 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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