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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Apr 09. 2024

의사 수와 책방 수



"인생에는 책 한 권 분량의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전달할 수 없는 철학이 있다."

- 『서점은 왜 계속 생길까』 37쪽, 이시바시 다케후미


마음에서 소중한 것이 뭉텅뭉텅 빠져나간 날, 여느 날과는 다른 심정으로 책을 읽는다. 

공들여 좋은 책을 고른다. 소란스럽지 않아야 하고 횡설수설 해서도 안 된다. 기왕이면 조근조근, 또박또박, 서두르지 않는 책이 좋겠다. 책을 고르면 조도가 낮은 공간을 찾아 작은 스탠드만 켜둔 채, 휑뎅그렁한 마음을 쿠션 안듯 품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한다. 나의 체온과 문장의 온도가 더해져 마음에 온기가 돈다. 문장이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다. 마음이 문장을 차곡차곡 받아 담는다. 온기와 숨과 문장을 담은 마음이 긴장을 풀 때 '다시'가 찾아온다. 그렇게 좋은 책을 읽어 내가 다시 산다. 


책에 의지해 사는 사람에게 책공간은 숨쉴곳이자 재생의 공간이며 영원한 노스탤지어다. 날 선 세파에 상처 그어질 때 그곳으로 가 벌어지고 멍울진 곳을 보듬는다. 생명을 연장한다. 


살고픈 희망과 살리고픈 소망으로 벗 똘라뷔와 작은 책방을 열었다. 큰 길에서 두 골목 들어가야해서 좋고 바로 앞 작은 공원을 정원처럼 내다볼 수 있어 좋은 곳이다. 간판 대신 '책방서륜' 네 글자만 붙여두어 생계를 걱정해주는 이들로부터 지청구를 듣기도 하지만 이 곳이 필요한 이들은 약속되어 있었던 것 마냥 제 발로 찾아와준다. 


적은 돈으로(생계 걱정할 법 하다) 좋은 책을 들여야 하니 책을 선정할 때마다 마음이 갈팡질팡이다. 좋은 책들이 너무 많은 것도 같고 때로는 너무 없는 것도 같다. 한 권 분량의 말을 담아놓지 않으면 안 되었던 책이면 좋겠다. 


어쩌면, 의사를 늘리는 것만큼이나 책방을 살리고 늘리는 것이 시급한 일일지도 모른다. 포기하려는 이를 붙들고, 상처난 이를 보듬고, 사라지려는 이를 되살리는 공간이 삶의 현장 곳곳에 있어주어야 한다. 


올해, 책방의 생명을 연장하는 예산이 어떤 날의 마음처럼 뭉텅뭉텅 잘려나갔다. 위험을 감지하기를. 좋은 책으로, 좋은 책을 이어주는 책공간으로 많고 많은 이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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