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덜어내는 것이 먼저일까? 덜어내야 진리를 담을 수 있고,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마음에 온갖 욕심과 번민이 가득한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품겠는가? 마음의 자리가 비좁아서 진리가 들어갈 틈이 없다. 진리를 품으려면 하늘로부터 타고난 본성을 보존하는 데 저해되는 요소를 먼저 덜어내야 한다."
-『오십의 주역공부』167쪽, 김동완
가끔, 미친 거 아닐까 생각하며 과자를 폭식한다. 갈급 들린 사람마냥 맛도 향도 모른 채 마구마구 먹어제낀다. 누군가 본다면 필시 실성한 듯 여길법한데 그래서 누가 볼까봐 더 허겁지겁이다. 그런 날은 내가 과자를 먹은 것이 아니라 과자가 나를 집어삼킨 날이다.
그렇게 책을 읽을 때가 있다.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걸신들린 듯이 읽는다. 어쩌면, 읽는 것이 아니라 화를 풀어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질주해 한 권을 독파하고 나면 나 자신이 가엽다. 무엇에 그렇게 쫓겼니. 뭐에 그리 화가 났니. 안쓰러워 울어주고 싶을 때가 있다.
한 때는 산도 그렇게 탔다. 자전거도 그리 탔고 근력 운동도 그렇게 했다. 어째서 그렇게 과했을까.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마주한 것들과 내게 온 것들을 담아두고 찬찬히 살펴볼 공간이 내 안에 없었기 때문이다. 꿈꾸는 것, 이룬 것 들만을 죄 끌어안고 틀어쥐고 있으니 새로운 것을,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그것들을 담을 공간이 없었다. 좋은 것은 기껍고 반가운 마음으로 '너 참 예쁘구나' 말해줄 시공간이 필요하다. 싫은 것은 의아한 마음으로 '너에게 왜 동의 되지 않지?' 물어보아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칠 새 없이 계속해 새로운 상황과 사람을 맞아야 했으니 버거웠던 것이다. 조급했던 것이고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던 것이다.
어떻게 공간을 만들어야 할까. 무엇을 덜어내야 할까.
꿈은 남겨두고 싶다. 지금 괴롭지 않자고 소망하는 바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꿈이라는 탈을 쓰고 있는 허황과 망상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다 보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잘라내도 되는 욕심인지 알 수 있겠지.
지금껏 이룬 것들은 어떻게 할까. 모두 버리고 無의 상태로 매 순간을 시작하는 것은 아직 이만큼의 내공으로는 불가. 자랑하고픈 것들과 지우고 싶은 것들을 먼저 나누고 정말 뽐내도 되는 건지, 진정 쓸모없는 건지 돌이켜보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낯붉거나 때로는 괴로운 시간일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남길 수도 덜어낼 수도 없으니, 그리하여 새로운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없으니 거쳐보는 수밖에.
공간이 생기면, 그러니까 꼭 있어야 할 것들만 남으면 내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할 수 있고(없고) 무엇을 꿈꾸는 사람인지 알게 되면, 갈급도 화도 생겨나지 않을 것 같다.
보자. 그동안 방황하는 심정과 선생을 구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왔고, 그렇게 읽은 책의 독서후담을 몇 글자 남길 수 있지만 아직 힘 가진 글을 써내진 못한다. 글공부 부지런히 갈고닦아 스스로 생명 잇는 글을 쓰고 싶다. 오늘의 글을 쓰며 얻은 결론은 이것, 나의 본질이 이렇다는 것. 자, 이제 삽질 더욱 분발해 공간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