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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Apr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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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선』_책 읽는 마음


  "총 사러 가자, 응?"


고질 두통이 시작돼 예민 게이지가 솟고 있는데 초등학생 끼별곰의 총타령이 시작됐다. 

"갑자기 웬 총이야."

  "옛날부터 가지고 싶었다고. 쭉 가지고 싶었는데 오늘 말하는 것뿐이야."

"위험해서 좀 그래."

  "총알은 안 넣으면 되잖아."

"네 나이에 총 좀 유치한 거 아니야? 애기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재밌으면 되는 거지. 남들이 어떻게 보는 지가 뭐가 중요해."


만사가 싫은 게 두통이다. 문구점에 가면 총값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안 가려는 마당에 총 사자고 뉘인 몸 일으켜 옷 갈아입고 차를 몰고 주차난 전쟁터에 다녀오자니. 아가야, 총 그거 안 사면 안 되겠니?

하지만 끼별곰의 대꾸 논리가 옳았다. 안 된다고 할수록 궁색해져만 가고, 문득 옛날옛적 한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1년간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가 선물을 사준다고 했다. 무엇이 갖고 싶냐는 물음에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비비탄 소총을 말했다. "인형 같은 거 아니고?" 잠깐 당황해했던 아빠가 기억난다. 한껏 신이 나 문구점으로 달려가던 길, 꼭 쥐었던 아빠의 손도 기억한다.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봐." 얼마나 멋진 말인지. 커다란 총을 품에 안고 행복했었다. 집에 두고 학교에 가는 마음이란. 수업시간에도 총 생각. 애지중지 하였던 그 총이, 몹시도 소중히 여겼던 그 마음이 떠올랐다. 



'자기파괴' '자기부정'의 과정은 그야말로 필수적이다.      - 『탁월한 사유의 시선』 93쪽, 최진석


여자애가 무슨 총이냐고 누군가는 그랬다. 여자애여서 총이 갖고 싶었던 마음을 왜 모르지. 

강해지고 싶었다. 누구도 나를 약하게 보지 않기를 원했다. 힘으로 나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고 위협받지 않으며 나와 나의 세계를 지키고 싶었다. 강해지고 싶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런 이유로 철학의 힘을 가진 자가 되고 싶다. 내 스스로 세운 철학을 지킬 수 있는 이가 되고 싶다. 나의 철학이 옳기를, 내가 옳은 철학을 살아가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철학자 최진석은 철학적 시선, 그러니까 탄생과 같이 새롭고 높은 시선을 가지려면 익숙해진 것과 결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무엇에 가장 익숙할까. 세상에 누구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 모모씨들학생으로, 친구로, 어딘가의 구성원으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나 자신이 아닐까. 철학하는 자, 철학을 살아가는 세계시민이 되고자 하는 지금, 학습되고 길들여진 개체로서의 나를 이만큼 떨어트려 놓고 객관적 재단을 해보아야 할 시점인 듯하다. 


개체로 종속되어 살아온 나약한 나를 잘라낼 용기가 내게 있는지 생각해본다. 있으면 다행이고 없다해도 상관없다. 마음 먹으면 되지.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러자 마음 먹으면 되지. 비비탄 총은 끼별곰에게 물려주고 철학적 시선을 갖을 수 있을 만큼 사유를 다지면 된다. 높은 시선을 갖게 된다면 그 눈높이에 나를 올려맞추어 살아간다면 그게 바로 철학을 살아가는 걸 테니까. 꽤 근사하고 멋지고 강하다. 


그래서 오늘 내가 해보는 것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으로 신문을 읽는 일. 사람에게 정의로운 세상인지 재단하는 일. 부정의한 조각을 날카롭게 살펴보며 목소리를 내는 일. 내가 낸 말을 행동하는 일. 오늘도 세월호 10주기 기사들을 읽으며 그런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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