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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Apr 30. 2024

한 글자, 한 문장에 무젖는 마음

『한자 줍기』_책 읽는 마음



오늘 밤엔 선물처럼 옛날 사람들과 닿아 긴 대화를 나누었다. 
시간의 창문을 여러 번 건너다녔다.  
- 『한자 줍기』



매년 연말이 되면 다짐을 한다. 내년엔 적은 책을 천천히, 깊게 읽어야지. 하면서 위시리스트에 이 책 저 책을 담는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위시리스트가 늘어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니 책 읽는 마음이 급하다. 와우! 싶은 문장을 만나도 시간이 없다. 다음 문장을 향해, 마지막 문장을 향해, 다음 책의 첫문장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걸신 들린 듯한 독서가 탐탁지 않지만 하루는 24시간 뿐이고 읽고 싶은 책은 몹시도 많으니 서둘러 눈을 옮긴다. 


저자 최다정은 단 한 글자의 한자漢字로도 옛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는 젊은 학자다. 세월과 세월이 겹쳐 흐르기 전, 누군가가 자신이 겪은 심정을 써놓은 글을 정성 다해 소중히 여긴다. 몇 획의 글자에 담긴 심정은 흠뻑 매혹당한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창자가 끊기는 가슴앓이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시절의 그 마음들을 지금의 말로 번역하는 일을 그는 사랑해 마지 않는다. 


그리하여 글자들마다의 뜻을 사전적 의미로 정의하는 대신 자신이 살아온 삶의 순간들로 설명한다. 이를 테면, 거슬러 올라갈 소溯에 '그립다는 말'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이렇게 풀어낸다. 



溯는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다. 내가 있는 여기에서 당신이 있는 그쪽으로 자꾸만 거슬러 올라가는 마음이, 그리움이라 여긴 것이다. 당장 거기로 달려가 당신이 잘 지내는지 보고 싶다는 문장을 꾸역꾸역 한 자에 담아냈다."   114쪽


당신이 잘 지내는지 보고 싶어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슬러 올라갈 溯를 어떻게 설명해낼까. 최다정은 이 세 문장을 써냈는데.


수년 전 나는 우주宇宙라는 이름을 지어 나에게 주었다. 크게 지어주어 아직 그 뜻을 뾰족히 하지 못하고 있다. 

'끝이 없다는 무한, 시간과 만물을 포용한다는 공간' 같은 사전의 문장들을 가끔 바라보며 내가 어디까지 한계 없을 수 있는지, 끌어안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오늘은 책 읽기를 멈추고 이 두 글자가 건네는 말, 억겁의 세월을 거쳐 전해진 그 심정들을 바라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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