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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May 09. 2024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의 해방일지』_책 읽는 마음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 『아버지의 해방일지』 42쪽, 정지아




우리 큰외삼촌은 짱구. 앞으로도 옆으로도 짱구여서 큽니다, 머리가. 군에 입대해서는 맞는 모자가 없어 특별주문을 했더라나요. 

짱구여서 머리가 좋았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전해진 삼촌의 일화들은 여느 집처럼 장손 신격화가 없지 않은 듯 하지만, 공부를 깨나 했던 삼촌은 당시 안기부에 원서를 냈다고 합니다. 필기시험도 합격, 면접도 합격, 신체검사도 합격.

최종 불합격. 신원조회에서 할머니의 사돈의 팔촌의 몇 촌의 어떻게 되는 이가 빨갱이들에게 먹을 걸 내주었다나요. 할머니는 알지도 못하는 어떤 이가 그 언젠가 빨갱이들에게요.  


할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해보려 할 때마다 실패합니다. 그것은 같은 부모인 할아버지도 불가능했던 영역일 거라 생각합니다. 삼촌이 어떤 분노 혹은 한탄 혹은 합리화를 거쳐 그 일을 흘려보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도 끝내 알지 못할 테고요.


"아버지가 죽었다"라고 시작하는, 빨치산 아비를 이야기하는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금세, 손에서 놓을 틈 없이 재밌게 읽었습니다.  


화자의 아버지는 지리산 자락에서 총알에 쫓기면서도, 어린 딸과 생이별해야 했던 감옥살이를 하고 나서도, 보증 빚을 떠안고서도 사회주의의 신념을 살아낸 사람입니다. 인민을 사랑하여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가 그가 뇌는 십팔번 후렴구입니다. 

빨치산이라는 전력도 감당하기 힘든데 오만 오지랖 인민 사랑이라니. 딸의 뻗치는 반항심, 백 번 천 번 그럴만 하겠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보내는 3일 동안 딸은 자신이 몰랐던 (어쩌면 모르는 척 하고 싶었던) 아버지의 삶을 듣게 됩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아버지의 생을 한 조각씩 들려줍니다. 아버지가 살폈던 그들마다의 사정이 조각조각 모아져 아버지의 사정이 되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스포가 되므로 생략.   

 

작가는 제목을 어찌하여 '아버지의 해방일지'라 지었을까요.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해방되었다는 걸까요. 

재밌는 소설 한 편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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