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머리가 멋스럽게 만져지더라니, 집밖으로 나오자마자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에 산발이 되고 말았다. 그가 맞은 바람도 이러했을까. 오늘은 바람이 키운 시인, 서정주를 만나러 간다.
어제 저녁 하다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미당시'라는 시 장르가 있는 줄 알았잖아. 미당시들만 모아놓은 문학관인 줄 알았어!”
하다야, 내가 얘기해줬잖아, 서정주 시인 문학관에 가는 거라고. 네가 방긋 웃으면서 좋다고 그랬잖아. 정말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미당은 시인 서정주의 호다. 웬만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다는 걸 알게 한 시인.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을 키운 팔 할을 생각해보게 한 시인. 지하철역이나 공중화장실에서 언젠가 본 적 있는 시구를 만나게 해준 시인. 문학 소년이 아니었더라도, 시집 펼쳐 읽던 소녀가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미당 서정주 덕에 시와 가까이 살아왔다.
하지만 문학관 유람기에 미당시문학관을 넣어도 되는 걸까, 고민했다. 서정주 시인은 일본이 조선의 청소년과 청년들을, 그 생때같던 생명들을 전쟁에 동원하던 일을 도왔다. 젊은이들에게는 일본의 승리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 목숨 바치자고, 부모들에겐 자녀를 전쟁터로 내보내자고 선동하는 글을 썼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후엔 신군부 정권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고 전두환 생일을 기념하는 축시를 썼다. 이 시인을 소개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는 분명 아름다운 시를 썼다. 마음을 흔드는 시를 썼다. 사후엔 나라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교과서에 실린 그의 언어로 시라는 세계를 배웠다. 일본 편에 섰던 시인, 국가폭력 범법자를 옹호했던 시인, 우리 문학에 빼어난 시의 역사를 만든 시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시를 남긴 시인 서정주가 궁금했다.
미당시문학관은 시인이 태어나고 묻힌 전북 고창에 있다. 봉암초등학교 선운 분교였던 건물을 손보아 문학관으로 만들었다. 흰 외벽의 단층 건물이 뒤편에 솟아있는 소요산 앞에 그림처럼 앉아있고 어린이들이 뛰놀았을 운동장은 이제 너른 잔디밭이 되어있다. 문학관을 담고 있는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1층 전시는 벽에 걸어놓은 시인의 일대기와 그 아래 놓인 유품을 살펴보는 동선을 따라 관람할 수 있다. 일대기는 1915년, 1세부터 시작하는데 ‘이야기 구술능력이 뛰어난 외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성장’했다는 문장이 너무나 정겨웠다. 신기하게도 마침 박완서 작가의 『세상에 예쁜 것』을 읽은 참이었다. 옛날이야기를 좋아했던 작가가 어른들에게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어른들은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면 가난하다는데” 하면서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고 한다. 이야기가 풍부한 집안에서 태어난 걸 어떤 부잣집에 태어난 것보다 큰 복으로 알고 자랑스럽게 여긴다며 서정주 시인의 시를 빌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이야기였다’고 했다. 특히, 좋은 이야기는 상상력을 길러주고, 옳은 것을 알아보게 하고, 사람과 사물에 대한 사랑의 능력을 키워주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한다*던 글에서 이상하게 따듯한 위안을 얻었던 즈음이라 서정주 시인의 가장 중요한 일생 줄거리의 앞머리에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옛날이야기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으니 몹시 반가울 수 밖에.
*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이야기」, 박완서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