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우주 Mar 31. 2024

선생님 찾기, 계속해도 될까요?

『마음』_책 읽는 마음



"내가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존경하는 이상, 그 사람은 반드시 저명한 인사여야만 한다고 형은 생각했다. 적어도 대학교수 정도는 될 거라고 추측했다. 이름도 없는 사람,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무슨 가치가 있냐."  『마음』 136쪽, 나쓰메 소세키, 문학동네



지난 2주간 내 안에 가득했던 것은 탄수화물도 알코올도 독서를 향한 갈급도 달리기에 대한 욕망도아니었다. 화, 화였다. ·

장난꾸러기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든 덩치 큰 아저씨의 얼굴이 턱에서 정수리까지 붉어지는 것처럼 일터에만 가면 내 마음 어딘가에 착지한 화가 어마어마한 기세로 마음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처음엔 참고 시킨 일을 하다가, 얼마 뒤엔 믿을 만한 사람에게 상사의 만행 뒷담화를 하기 시작했고, 얼마 전부터는 종종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으며 드디어 어제 아침, 필경사 바틀비만큼이나 멋있게 상사에게 대꾸했다. "아니요, 저는 그거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내가 무보수 서점원으로 간헐적으로 일하는 책방의(내 꿈은 직장 그만두고 유보수 상근직 서점원으로 이 책방에 취직하는 것이고, 책방지기의 꿈은 돈 많이 벌어 나를 보수 주며 채용하는 것이다. 피차 어렵다.) 벗님들과 낮술을 나누며 '저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요'라고 말을 꺼냈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고, 저 먼 우주부터 지금 내 발 아래 새싹까지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들을 정성들여 듣고 싶다고, 보르헤스와 움베르토 에코와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와 선감학원 유가족과 기후환경 투쟁 정치인과 일곱살 된 내 조카의 문장까지 정말이지 좋은 책을 읽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을 모시는 마음으로 지금껏 읽은 책들이 나의 인생관과 삶의 태도 같은 것들을 만들었고 그렇게 지어진 세계관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일터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내가 선생들을 만나 세운 세상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 세상 돌아가는 요령을 모르는 것쯤으로 취급했고 내게 나의 세상과 대치되는 행동들을 요구했다. 


스승들과 내가 세운 세상은 이런 것들을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이를 테면, 고객들로부터 나온 소중한 회사 예산을 이웃 권력자 몇을 위해 돌려 쓰는 것. 누가 보아도 안 될 일임이 내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보이는데 누구 한 명의 욕심을 위해 직원들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 무엇이 중요하고 시급한지 모르고 상급자 심기 생각만 하는 중간 관리자의 이랬다 저랬다에 장단 맞춰주는 것 등등.   


"도대체가 나는 이해를 못하겠다."가 "내가 이상한 거야? 아니, 내 말이 틀렸냐고!" 되었을 즈음 나는 마음을 넘어 몸 가득찬 화로 괴로웠다. '미치고 팔짝 뛴다'는 말을 체득했다. 사람이 미치는 지경에 닿을 만큼, 팔짝 뛰고 펄쩍 뛰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 없을 만큼 할 말이 많고(혹은 전혀 없고),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한 그 마음의 뜨거운 체온에 닿았다. 


이제 이 화를 어찌해야 할까나. 

어쩌긴 뭘 어쩌나. 또다른 선생을 찾아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수밖에. 오늘이 일요일이니까 내일이 월요일. 오늘 밤 읽은 책으로 내일 아침 투쟁한다. 






작가의 이전글 이제 정치를 해볼까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