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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Apr 08. 2024

내 나이 열셋, 좌우명을 지었으니

『감정경제학』_ 책 읽는 마음



"그 틀은 상대에게 휘둘리는 감정을 잡아주고, 자신에게 도취되는 것을 막아줘야 한다."

『감정경제학』 199쪽, 조원경



주식 책을 정성껏 읽고 있다. 명작의 명문을 접하듯 한 문장 한 문장 소중히 읽는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데 그 간절한 마음이 매매를 망친다. 주식 창이 열리면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조급한 마음이 판단력을 무너뜨린다. 아직 지켜보아야 할 시점에 기다리지 못하고 매수해버린다. 비싼 가격에 사버렸으니 더 반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마이너스 수익률을 들여다보는 신세가 된다. 


'자신만의 매매원칙이 있어야 한다'

전에 읽었을 땐 가볍게 넘겼던 문장이다. 실패를 거듭한 지금 다시 읽으며 이어지는 말, 매매원칙이 없으면 그때그때의 감정과 상황에 휘둘려 매매하게 되고,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라는 충고에 진심의 미간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원경 교수는 『감정경제학』을 통해 이성의 영역일 것 같은 '경제학'이 실은 인간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학문이라 말한다. 

목차가 흥미롭다. 상실감이 부르는 치명적인 화, 애착이 부르는 편견과 삽질, 신뢰감이 만드는 후광 효과의 진실, 상황에 따라 잔혹해지는 인간의 심리, 사소함이 부르는 재앙, 동정과 연민이 주는 힘과 오류, 순수에 대한 온전한 갈망. 

표지에 그려진 사람 ─ 누군가의 큰손에 옷자락이 잡혀 허공에 달랑 떠있는 ─ 을 보고 있자니 주체적이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린다. 내가 그렇게 쉽게 놀아날 것 같아? 이래봬도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고 내가!


저자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틀'의 중요성을 말한다. 저마다의 경험과 지식과 기질로 만들어진 틀을 바르게 잡아 외부로부터 휘둘리지 않고 내부의 오판단에 기울지 않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 멋진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30여년 전, 초등학교 6학년 즈음, 그럴듯한 좌우명을 갖고 싶어 잔뜩 멋부려 만든, 지금 떠올리니 다소 민망한 문장,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다만 원칙을 어떻게, 얼마나 변용하는 지가 중요하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알고 있었네. 내가 인생의 진리를 알고 있었네. 


실용서는 책으로 여기지 않았던 오만함을 버리고 주식 책에 몰두하는 이유는 지금 일터가 힘이 들기 때문이다. 처음 직장인이 되었을 땐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였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조직의 큰 일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자아도 자랐다. 기준이라는 것이 생겼고 판단이라는 것을 하게 됐다. 기준으로는 옳지 않은 , 판단으로는 적절치 않은 방법에 동원될 때마다 사람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을 하면 열패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의 기준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이상적이거나 협소해서 세상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 기준을 고수하고 싶다. 선한 이들에게서 나온 자원을 권력자만을 위해서 쓰고 싶지는 않다. 어떤 자리에 있다고 해서 공공의 규칙에서 열외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이 높은 자리에 있는 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감추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선작후행이랄까. 열세 살에 겉멋들어 만든 좌우명을 지금껏 세월을 들여 책과 신문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크고 작은 일을 성공하고 실패하면서 확인하고 있다. 기왕에 지어놓은 좌우명, 닳고 닳을 때까지 써먹어야 반짝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이 겉멋진 좌우명에 대어보고 나를 그 일에 사용할지 말지 판단해보는 용도로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며칠 전 아침 부장님에게 외친 "저는 그 일 업무라 생각하지 않아요."는 꽤 멋진 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장님은 내게 서류를 건넸지만 이제 조금씩 '나만의 매매원칙 세우기'의 걸음마를 시작한 나는 주식으로 월급보다 더 큰 돈을 벌어 일 그만두고 나갈 거니까 괜찮다. 세상을 이해하고 그곳에 참여하는 틀을 점점 더 멋지게 만들고 행하는 어른이 될 거니까. 괜찮다. 주식 잘 될 때까지 일단은 참고 다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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