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기
#5. souling
불과 한 두달 전 일인데.
겨울의 모습은
이리도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춥디 추웠던 겨울 끝자락 언젠가
길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낙옆은 쓸쓸해보였다.
보송보송히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렸던 풍경을 뒤로한 채
밝디 밝았던 정오의 태양도
다 녹이지 못한 눈 뭉치들은
차가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꽁꽁 얼어붙어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아무도 찾지 않은 공원 그늘 한켠
그 누구의 발길도, 손길도 닿지 않았나보다.
간만에 찾아온 따스한 햇살 기운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 공원을 거닐다
너를 보았다.
하얀 돌덩이가 되어버린
눈의 결정체들이
반사된 햇살의 반짝거림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여기야'
무슨일인가 궁금해
재촉해 가던 발 길을 멈추고
조심스레 다가가 보았다.
영롱하고 신비하게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결정체.
아름다움에 홀려
쪼그려 앉아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눈이 부셔 잠시 눈길을 돌린 바로 옆 자리.
보잘 것 없이 말라 비틀어진 낙옆이
차디찬 얼음 위에 힘없이 몸을 기대고 있었다.
안타까움이 밀려와 그것을 건드려보았다.
움직일리 없는 너에게 무슨 기대를 했을까.
그 무엇도 아닌 메마른 그것이
나의 가슴 한켠에 남아
돌아서기가 미안스러웠나보다.
바스라질새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낙옆의 줄기 끝을 가만히 집어 올렸다.
'너 참 예뻤겠어'
비록 지금은 생명수 한 모금도 할 수 없이
말라 비틀어진 흉한 모습일지 몰라도
푸르렀던 어느 나날들,
위대하리만치 커다란 나무 제일 높은 곳에서
높디 높은 하늘을 견주며 위풍당당히
녹음을 천하에 흩뿌렸을 그 모습을 그려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웠으리.
일랑이는 바람결에
초록 한가득 생명의 호흡을,
녹음의 향기를 뿜어냈을 너였다.
그런 상상은 너를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나와 다를 바 없이 한없이 슬퍼보였다.
작은 힘도 견뎌내지 못하고
으스러질 너의 몸체가 왜이리도 연약해보이는지.
조심히 안아 보듬어 주고만 싶었다.
네가 벗 삼아 지냈던 그곳에
조금이라도, 잠시라도 닿을 수 있도록
나의 작은 키로 발끝을 올리고 손을 뻗어
최대한 멀리 멀리 들어주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네 덕에 추웠던 겨울의 끝자락을 보고
따스한 봄을 기대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순간
나는 너에게 사람에게는 받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위로를 받았다.
네 온 몸을 녹여
파릇파릇한 새싹을 나에게 주었다.
사람이.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낙옆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지.
그저 말없이 하루 하루, 몇 십년. 몇 백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해낼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가기에
위대하고 고마운 자연 속에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런지.
그자리에서
나는 그저 치사하고 교만한
한 낱
생물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