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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재 Dec 13. 2023

정작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오노레 도미에의 '돈키호테'

오노레 도미에,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19세기, Black chalk and gray wash on wove paper, 20 x 29.8cm,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오노레 도미에,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1855년경, 참나무에 유채, 40.3 ×64.1cm, 런던 내셔널 갤러리소장.

오노레 도미에,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1866~1868년경, 캔버스에 유화, 102.0 x 78.0 cm, 베를린국립미술관 소장.

오노레 도미에,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1866-8년경, 캔버스에 유채, 40.2x33cm, The Armand Hammer Museum of Art and Cultural Center, Los Angeles 소장.

오노레 도미에,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1868년경, 캔버스에 유채,  51 x 32cm, 노이에 피나코텍, 뮌헨 소장.


오노레 도미에,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1868년~1872년경, 캔버스에 오일, 100 x 81cm, The Courtauld, London 소장.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Don Quixote and Sancho Panza'를 그린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1879)의 그림들입니다. 도미에는 말년에 17세기 스페인의 소설 『 돈키호테 Don Quixote』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러 점의 그림을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돈키호테의 어떤 면이 도미에를 이토록 매혹시켰을까요?


오노레 도미에는 프랑스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였으며,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한 예리한 논평을 제공하는 풍자적인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도미에는 1808년 2월 26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유리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8살이 된 도미에는 1816년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갔습니다.  그의 예술적 재능은 일찍부터 인정받았습니다. 초기에 그는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지만 곧 자신의 예술적 스타일을 추구하기 위해 아카데미 정규교육을 그만두었습니다.  1822년경 그는 알렉상드르 르누아르의 제자가 되었고, 1820년대 후반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옛 거장의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1830년부터 그는 풍자지에 만화를 그리며 정부와 전문직 종사자들, 프랑스 부르주아지를 풍자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젊은 날, 도미에는 도안사이자 석판화가로 일하면서 몇몇 출판물에 기고했습니다.  당시 도미에의 풍자적이고 정치적인 캐리커처는 널리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 불의를 비판했습니다. 그의 삽화에서는 주로 부패한 정부, 부르주아지, 변호사, 사법 시스템이 비판 대상이었습니다. 도미에는 정치 및 풍자 잡지인  ⌜La Caricature⌟에 기고하면서  1832년 왕 루이 필리프 Louis-Philippe를 공격적이고 무례하게 풍자한 캐리커처로 인해 법적으로 고발되어, 결국 6개월 동안이나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도미에의 작업은 주로 일상생활의 장면을 묘사했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관찰이 특징입니다. 캐리커처로 유명한 그였지만, 회화와 조각작업도 남겼습니다. 도미에의 유화 작업인 <봉기 L'EMEUTE>(c.1848)와 조각 작품인 <라타포알 Ratapoil>(c.1851)등은 그의 강한 정치적 신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영국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라타포알>은 19세기 중반 오노레 도미에가 만든 사회 풍자적인 조각품입니다. <라타포알>은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고 나중에 스스로를 황제라 칭한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권위주의 정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Ratapoil"이라는 용어는 교활하거나 사악한 사람을 의미하는 "rat"와 머리카락이나 모피를 의미하는 "poil"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입니다.  당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나타내는 이 조각품은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수염을 기른 남자를 묘사하고 있어 교활하고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 뽐내며 흔들어대는 인물을 형상화한 라타포일은 1852년 자신을 프랑스의 황제라고 선포한 루이 나폴레옹의 정치적 야망을 향한 도미에의 날카로운 비평입니다. 이 인물은 나중에 나폴레옹 3세가 된 루이-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정치적 심복이나 지지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종종 해석되기도 합니다. 1851년 루이-나폴레옹의 성공적인 쿠데타 이후 정부의 보복이 두려워 도미에는 남은 생애 동안 이 조각상을 숨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확고한 공화당원이자 정부 비판가였던 도미에는 그의 예술을 통해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풍자하고 비판했던 겁니다. 이처럼 <라타포알>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정치인과 사회적 사건에 대한 그의 반대를 표현한 도미에의 많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조각품은 도미에의 예리한 재치와 시각적 풍자를 사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전달하는 능력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도미에의 캐리커처와 <라타포알>과 같은 조각품은 프랑스 역사의 격동기 동안 정치적 논평의 더 넓은 맥락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872년에 도미에는 점차 시력을 잃어갔지만, 말년에도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가난과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도미에는 1879년 2월 1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미에의 작업은 후대 예술가들, 특히 마네 Édouard Manet, 드가 Edgar Degas, 피사로 Camille Pissarro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은 느슨한 붓놀림으로 일상생활과 인간 상호 작용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도미에의 시선에 감탄했습니다.     


더욱이 풍자와 유머를 사용하여 당대의 문제를 조명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도미에의 작업은 예술을 통해 현대 정치와 사회적 관심사에 참여하려는 후대 예술가들을 위한 길을 열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도미에의 영향은 19세기 프랑스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도미에의 판화나 캐리커쳐가 당대 사회, 정치적 문제와 세태를 다루는 반면, 그의 회화작업은 종종 문학적 출처에서 가져온 시대를 초월한 주제를 묘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중 도미에는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여러 점 남겼습니다. 


『 돈키호테 Don Quixote』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 추정 1547-1616)가 쓴 소설로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평가되며  종종 최초의 근대 유럽 소설로 간주됩니다.  이 소설의 영어 제목은 "라만차의 재치 있는 신사 돈키호테 The Ingenious Gentleman Don Quixote of La Mancha"입니다. 이 작품은 1605년과 1615년에 두 권으로 출판되었는데, 첫 번째 부분은 돈키호테의 광기에 대한 탐구이자 세르반테스 시대에 유행했던 기사도 로망스 소설 장르에 대한 풍자입니다. 기사도 문학에 심취한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가 스스로를 '돈키호테 데 라만차(Don Quixote de La Mancha)'로 칭하고, 농부 산초 판자( Sancho Panza)를 자신의 시종으로 고용하여 일련의 모험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돈키호테』의 2부에서는 이미 유명해고 여전히 미쳐있는 돈키호테의 모험은 더 복잡해지고, 그가 만나는 등장인물들은 그가 미친 기사라는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출판된 1부를 이어받아 논평하고 이러한 반응을 소설의 내러티브에 통합하면서, 세르반테스가 2부에서는 문학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과 스토리텔링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수세기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어 온『 돈키호테』는 스토리텔링의 본질, 인간 정신, 허구와 현실의 상호 작용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세계 문학의 걸작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오노레 도미에(Onoré Daumier)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그림은 표현력이 풍부하고 풍자적인 특성으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상징적인 문학 인물에 대한 도미에의 표현은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로 세르반테스가 창조한 인물 캐릭터의 본질을 포착합니다.


기사 돈키호테가 시종 산초를 데리고 모험의 길을 떠납니다. 풍자화가 도미에는 말과 당나귀를 통해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의 상반된 성격을 드러내면서 원작의 유머와 고귀한 비극성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꿈을 좇는 이상주의자인 돈키호테와 달리 산초는 현실에 확고히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실용적이고 회의적이며 삶의 실질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소박한 농부로서의 그의 묘사는 돈키호테의 낭만적이고 기사도적인 세계관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산초는 상식과 근거 있는 관점을 지닌 평범한 사람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바로 산초의 눈을 통해 돈키호테의 부조리함을 바라보며 낭만적인 이상과 현실의 가혹함 사이의 충돌을 목격하게 됩니다. 


도미에의 그림에서 모험에 대한 두 인물의 태도는 비록 함께 동행하는 길이지만 매우 상이하게 묘사됩니다. 도미에는 긴 얼굴, 깡마른 신체, 과장된 표정 등 돈키호테의 인물의 특징을 과장하기 위해 자신만의 캐리커처 기법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과장은 그림의 풍자적인 분위기에 기여합니다. 또 그의 그림 속 돈키호테는 일반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이상을 강조하면서 낡고 비현실적인 갑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돈키호테가 들고 있는 창은 우스꽝스럽게 기다란 것으로 그려져 그의 기사도 추구의 부조리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미에는 표현적인 동세를 사용하여 돈키호테의 열정을 전달합니다. 비쩍 말라 볼품없는 로시난테에 호기롭게 올라타 환상적인 모험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는 돈키호테의 몸짓은 이상적 비전과 그를 둘러싼 가혹한 현실 사이의 대조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반면에, 돈키호테의 마르고 길쭉한 체형과 달리 산초 판자는 키 작고 땅달막한 체형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상반된 신체적 대조를 통해 도미에는 산초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을 강조합니다. 또한 산초는 식량, 포도주통 또는 음식보따리로 짐작되는 물건과 함께 묘사됩니다. 비록 주인을 따라 모험의 길에 나섰지만, 산초에게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니까요. 이처럼 도미에의 그림에서 돈키호테의 고상한 이상과 산초의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감각 사이의 대조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도미에는 말년에 시력이 점차 약해졌고, 나중에는 거의 실명에 이르렀습니다. 말년에 그는 조각과 석판화를 주로 제작합니다. 아마도 판화와 조각은 시각보다는 촉각을 사용하여 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각 장애로 인해 도미에는 많은 작업을 할 수 없었고 재정적 어려움과 개인적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도미에는 그에게 늘 너그러운 친구였던 화가 장-밥티스트-카미유 코로가 구입하여 선물한 발몽두아 Valmondois의 조그만 집에 살다가 70세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쓸쓸한 인생의 말년, 눈도 보이지 않는 도미에는 돈키호테를 그렸습니다. 물론 이 주제를 이미 사십 대인 1850년부터 다루었지만, 도미에는 예순 무렵인 1866,7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돈키호테 작업을 시작했고, 그 후 몇 년 동안 이 주제에 천착하여 여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가 그린 마지막 돈키호테는 미완성으로 전해집니다. 어쩌면 돈키호테는 도미에가 던지는 당대 프랑스 사회에 대한, 그리고 생을 낭비하고 있는 우리들 삶의 태도에 대한, 그의 마지막 풍자였는지 모릅니다. 


도미에의 '돈키호테와 산초'는 인생의 도전, 이루지 못한 꿈, 그리고 개인의 이상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에 대한 가슴 아픈 성찰입니다. 희극과 비극 사이, 모험과 안주 사이, 변화와 전통 사이, 고상한 열망과 비참한 현실 사이.....  도미에가 돈키호테를 통해 정말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극명한 괴리에도 불구하고, 비록 꿈을 꾸는 일이 가당찮게 우스워 보일지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불굴의 정신이 아니었을까요. 


우리의 꿈은 멀고 달성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뜨겁던 사랑은 짝 없이 홀로 남아 스며오는 그리움으로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습니다. 또 이따금 내면의 악마와 맞서 두려움과 의심과 씨름하며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 깊은 곳에서 우리는 힘의 원천, 즉 역경이 닥쳐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결심을 발견합니다. 인생의 예측할 수 없는 여정에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장애물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종종 정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용감한 돈키호테를 꿈꾸기도 합니다. 돈키호테 모험의 여정은 때때로 우리가 달성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바로 그 과정에서 우리 삶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요. 19세기 프랑스에서 도미에는 돈키호테를 꿈꾸었습니다. 그는 프랑스혁명부터 제2차 나폴레옹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살면서, 그의 생애 대부분을 인간에 대한 예민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치인의 캐리커처와 만평을 제작하고, 시대와 사회를 풍자하는 일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도미에는 세상을 바꾸는 미술의 힘을 믿었고, 불확실한 생에 도전하고, 열정과 목적을 갖고 살았으며, 멈추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여정을 오롯이 살다 갔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돈키호테와 동일시하며 자기 삶의 초상처럼 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던 게 아닐까요, 마치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가 대서양에 추락해 죽은 애인을 생각하며  'Non, Je Ne Regrette Rien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를 목청껏 불렀듯.


도미에가 그린 일련의 '돈키호테와 산초'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 그 어디쯤에서 인간의 조건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살아있음'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시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길의 끝에 도착할 목적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길 자체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헌신에 대해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전진하고, 계속해서 꿈을 좇고, 하늘의 별들이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때에도 그것을 붙잡려는 꺾이지 않는 용기에 관한 것입니다. 


살다가 보면 가끔은 돈키호테의 호기로운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산초의 현실감을 밀치고 일어선 그 무모하리만치 대담한 열정이 비틀거리는 시간을 부축하여 오늘을 살게 하고 나아갈 힘이 되어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가 있습니다.


"정작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정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정작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정작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정작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으려 한다.


... 멈추지 않고 뒤돌아 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가겠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의 『 돈키호테 』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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