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새로운 꿈을 찾아서
딸들아, 엄마도 공주병에 걸리고 싶은데 어쩌지?
나는 공주병에 걸린 딸이 두 명 있다.
많은 4-6세의 여아들이 대체로 공주를 좋아하지만 딱 그 나이대의 딸내미가 둘이나 있는 우리 집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공주 변신을 준비하는 여자들이 없다.
눈 뜨자마자 노란 벨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둘째 딸, 그 모습을 보고 어제저녁 내내 들었던 A Whole new world 노래의 쟈스민 공주드레스를 따라 입고 나오는 첫째 딸. 심지어 쟈스민은 배꼽도 보여야 한다며 투피스 드레스를 고르던 그녀다. 공주 노래, 공주 옷, 공주 머리, 공주 구두 등에도 굉장한 디테일을 살리며 마치 자신이 진짜 공주가 된 것마냥 신나하는 모습이다. 옛날엔 겉 멋 든다고 할머니, 엄마들이 안 사주고 못 하게 한 그런 모습들을 요즘 엄마들은 오히려 독려하기도 한다. 공주를 활용하여 아이들 한글도 떼고 영어도 배우고 상상력도 키우게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에 몰입했을 때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결과들을 보여준다.
나도 한 때 그런 모습이 있었다. 열심히 공부도 해봤고, 열심히 동아리 활동도 했고, 열심히 사랑도 했다.
내 인생의 1순위 목표는 아니었지만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즐겁게 일했고, 어쩌다 회사 동기와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열심히 육아를 하고 있다. 그 일이 무엇이건 나에게 주어지는 대로 내 승에 차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주변 사람들은 나의 그 모습을 보고 굉장히 열정적이었다고 말을 했다. 부끄럽기도 하면서 아,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싶었다. 무엇이든 최고의 결과를 내고 싶어 하는 욕심쟁이의 모습, 그걸 열정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부터, 아이들도 커가고 일상에 여유가 생기자 그렇게까지 내가 무언가에 대단히 애쓸 일이 없어졌다. 내가 루저가 되는 기분이었다. 처음엔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쯤 지나자 쉬는 시간이 끝났는데도 수업 시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운동장에서 방황하는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난 분명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지난 시간 쌓아놓은 결과들을 이렇게 쉽게 놓을 수 있었을까. 그동안 내가 보여준 열정들은 그저 내 자리에 충실하기 위한 의무감 때문이었을까? 속알맹이 없는 허울뿐이었을까?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것들이 정말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그런 열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갑자기 온갖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걸까
내가 잘하는 것은 뭘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내가 하는 이 일이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니까요”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예전에 TV에서 본 한비야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지여행가, 국제구호활동가 등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대단한 업적들을 남긴 분이지만 그런 경력보다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그녀가 방송에서 강호동에게 했던 이 한마디였다. 심장이 뛰게 만드는 일을 찾아 업으로 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아주 많이 부러웠다.
그리고 닮고 싶었다. 옷이 너무 좋아 혼자 동대문을 뛰어다니다가 어엿한 브랜드 사업가가 되어있는 친구를 볼 때도, 진심으로 아이를 좋아해서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아이 셋을 낳고 좋은 엄마의 꿈을 향해가는 친구를 볼 때에도 난 그 마음과 용기가 부러웠다. 그래, 그 동안 내가 열심히 했던 일들이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일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그만둘 수 있었을까?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아무리 눈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악착같이 뛰어넘고자 더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 게 과연 꿈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진짜 꿈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세상에 자신 없는 일이 태반이지만, 아내, 엄마, 딸, 며느리 등 주어지는 이름 말고 내 이름을 걸고 몰입할 수 있는 진짜배기 열정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오롯이 나의 용기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이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내가 누구인지부터 찾는 사춘기 소녀로 돌아가본다. 그러면서 한비야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내가 하는 이 일이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