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젊음에 대하여
아 그대는 내일의 젊음 잊지 말고 가져가요.
아 그대는 오늘의 선택을 미워하진 말구요.
-나와 내 이웃에게, 허회경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을 들으며 도서관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하교하는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오늘의 재밌는 일,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하느라 바쁜 아이들의 수다와 교복에서 배어 나오는 더운 땀 냄새가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소란스럽고 불쾌하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시선을 돌리니 학교가 허락하는 테두리 안에서 각자 자기의 개성대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교복을 입어본 지가 언제더라. 그때 한 여학생이 옆에 앉은 승객을 곁눈질로 흘겨보고 키득거리며 친구에게 수군거렸다. 나는 그들의 천진한 무례함에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무례함을 구분하고 지적하는 내 자신이 으쓱했다. 은연중에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점을 찾고 있었다. 그들이 부러웠다.
26살, 어른으로 인정받으며 살아온 지도 어언 7년이 지났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마냥 ‘나는 아직 어리니까 아무것도 몰라!’라고 떼쓰기에는 부끄러운 나이다. 친구들은 취직과 독립을 했다.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 이야기를 SNS에 올려 하소연하기도 하고 금요일에는 기쁜 마음으로 맥주를 들이킨다. 그렇게 으레 어른들처럼 치열한 삶 속에서 각자의 몫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젊음이 탐이 났나 보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내가 효율적이고 멋진 선택을 해서 더 나은 현재의 나를 만들어 줄 거라는 어렴풋한 기대 때문이다. 그때의 고민과 실패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잊고서 말이다. 세상은 젊음의 선택에 대해 더 너그럽다. 25살 짧게 다녀온 워킹 홀리데이는 나의 가치관을 변화시켰다. ‘세상은 넓고 나는 아직 못해본 게 많다.’ 하지만 서른 살 전에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사회구성원으로서 하나의 몫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나에게 더이상 너그럽지 않을 세상의 시선이 겁이 난다. 젊다는 건 무엇일까, 철없는 시절만이 가지는 따땃하고 말랑한 열정이 있다. 시간은 점점 나를 딱딱하고 차갑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버스 안 노란 좌석에 앉아 있던 누군가는 나의 젊음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두려운 건 결국, 그때만이 가지는 따땃하고 말랑한 마음을 잃는 것이다.
그대여. 내일의 젊음 잊지 말고 가져가요. 누구에게나 내일의 젊음은 있다.
26살, 나는 영원히 젊으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