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작년 6월,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일기 쓰는 숙제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글을 써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다. 그런데 어쩌다가, 왜, 갑자기 글을 쓰게 되었을까?
오랜 시간 동안 꿈꿔왔던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하게 되었고, 승무원 직업 특성상 1년에 한 번 가기도 힘든 해외를 밥 먹듯이 다녔다. 운이 좋게 사무장 직책도 이른 나이에 맡게 되어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회사 생활을 했다. 어디선가 나 자신을 소개할 자리가 있을 때면 이런 상황을 늘어놓았고 나 자신이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비행 생활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하 그래. 진짜 올해까지 만 이야..'
내 안에 그 녀석과 끝없는 협상을 한다. 그러던 중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나의 번아웃의 싹을 더 키웠다. 끝을 알 수 없는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졌다.
'퇴사'가 온 머릿속을 지배한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나의 30대 초반의 시간을 의미 없이 날려버릴 것 같았다.
실 뭉텅이가 엉킨 것 마냥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단 뭐가 됐든 써보자.' 마음으로 블로그를 개설했다.
그리고 무작정 써 내려갔다.
지난 나의 비행 생활을 회상하며 기록을 해나갔다. 행복한 추억이 가득했던 비행,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IRRE(비정상 상황) 비행, 진상 승객으로 힘들었던 비행 모두 글로 털어놓았다. 무의미하다고만 느낀 10년의 비행 생활이 글로 남겨놓으니 의미 있어지는 순간이 되었다(지나고 나면 행복했던 순간만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퇴사를 꿈꾸던 내가 글을 쓰며 번아웃에서 빠져나왔다.
그렇게 글을 쓴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기록용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좋아해 주셨다. 네이버 블로그 말고도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다음 메인 화면에는 10번이 넘게 글이 올라가기도 하고, 하루에 많게는 10만 이 넘는 조회 수가 나오기도 했다.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벌어졌다.
인터파크 트리플 매거진과 협업을 하기도 하고, 내 글과 인스타그램 릴스가 뉴스 기사화가 되기도 하고, tvN 방송국에서 방송 출연 제의 연락까지 왔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뿐인데 나를 둘러싼 것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욕심이 생겼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 바로 책을 출판하는 일이다. 나는 입사 10주년을 앞두고 퇴사가 아닌 책 출판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최근에 한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하게 되었다.
PS. '블로그에서 글 좀 썼다고 무슨 책을 내?'라는 시선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한 번뿐인 인생 누가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고, 후회 없이 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저질러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