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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고수정 Oct 23. 2024

운동화 끈

(읽은 책 독후)

 오후 2시에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에 가는 길이다. 제발 버스가 바로 와야 할 텐데. 지각이다. 길 위의 상황만 어떻게 잘 풀리면 선방인 셈. 버스정류장을 향해 다리 근력을 최대한으로 쓰고 있는데, 운동화 끈이 풀려 버렸다. 다시 다잡아 매고 발걸음에 힘을 줬다.


 횡단보도로 가는 길은 폭이 다소 좁다. 몇 달 전부터 인도 옆 공터에서 공사까지 시작되고 있었다. 공사 때문에 높다란 안전벽이 세워져 인도의 폭은 더 좁게 느껴지는데, 도로 옆 연석에도 가드레일이 쳐져 있다. 인도는 더 좁아졌다. 공사장 입구에는 건설노동자 두어 명이 상주하면서 행인들과 덤프트럭 같은 중장비의 진로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들 때문에 인도는 좁디좁아졌다.


 그래서 마주 걸어오는 사람이 의식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상황은 마치 지나가는 초등학생을 유심히 살펴보라는 압박 같다. 실제로 학교 근처라 여기는 학생들의 등하굣길이다. 내 시선은 마주 오는 사람을 굳이 보지 않고 잠시 땅을 봤을 뿐인데, 그때 딱 지나가던 아이의 운동화 끈이 풀린 게 눈에 들어왔다. 내 입에선 ‘아가, 운동화 끈 풀렸어’가 바로 나왔다. 그 학생도 내 말을 듣고서야 끈이 풀린 걸 알아차린 눈치다. 1분 전에 내 운동화 끈을 다잡아서 그게 잘 보였던 걸까. 나도 어린이와 살고 있어서 잘 보였던 걸까. 가야 할 길 바쁜데,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있는데, 진심으로 넘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그만큼 컸다고?


 인제 와서 판단하자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잘 보였다. 김소영 작가의 산문집 <어린이라는 세계>에는 운동화를 새로 산 제자의 끈을 묶어 준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 익숙하지 않아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책에 등장하는 어린이는 자신의 보호자를 만나자마자 “풋살화 끈 한 쪽은 내가 묶었어”라며 의기양양하게 자랑했다. 나는 그 부분을 읽은 적이 있어서 어린이의 운동화 끈이 내 관심사에 있었던 거였다.


 좁은 인도에서 마주친 학생이 운동화 끈을 스스로 묶었는지 안 묶었는지 매우 궁금하다. 지켜보다가 끈을 묶는 게 시원치 않았으면 내가 묶어 줄걸. 건널목 신호등도 초록으로 바로 바뀌어서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가버렸다. 마침맞게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자,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지각하는 바람에 좋은 어른이 되는 기회를 놓친 기분이다.


 아직 우리 집 어린이는 끈이 있는 운동화를 신지 않는다. 일명 찍찍이 운동화다. 찍찍이 신세가 지긋지긋하고 더 이상 멋져 보이지 않을 때가 오면 끈 운동화를 사달라고 하겠지. 끈을 묶는 것이 서툴 때, 혹시라도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학교 근처에, 학원 근처에, 아니면 동네 어느 곳이든 어린이의 끈 풀린 운동화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있길 기도해 본다.


[인천광역시교육청 서구도서관 2023 평생교육 읽.걷.쓰 글쓰기 특강 수업 참여작] 2023.12.01

출처: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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