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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연 Oct 10. 2024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

프레임의 함정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긴 세월 인생이라는 길을 걸으며 사연 없이 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 학년의 대표를 맡고, 업무의 장을 맡고, 상담위원이라는 자리를 맡고 서있다 보니 참 많은 이들의 사연을 접한다. 그 사람에게는 지금 이 고민이 가장 무겁고도 버거운 것이겠지 생각하며 듣다 보면, 세상에 고민이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자주 절감한다. 그저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이야기부터,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아 어려운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있다. 나는 어디에 내 이야기를 해야 하나 주변을 둘러보다가도 끝내 입을 다물고야 마는. 그렇게 말을 않고 사니 사람들은 나도 뭔가 고민은 있겠지, 짐작하면서도 나를 성실하고 강인한 사람으로만 본다.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털어놓은 나의 이야기가 없으니 오히려 부담 없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상담사로서 ‘아, 저 사람은 입도 무겁고, 견뎌낼 힘이 있는 사람이라 의지할 수 있겠구나’하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나의 전략이었다. 내가 스스로에게 씌워놓은 하나의 프레임. 그렇다면 당신의 주변에는 이런 프레임들로 인해 당신이 속고 있는 것들은 없는가?


 오늘은, 케케묵은 아픔 하나가 신발에 들어간 작은 돌멩이 하나처럼 유난히 거슬리던 하루였다. 발달한 문명의 힘을 빌려 내게 평생의 상처를 남긴 사람을 슬쩍 염탐해 보자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추앙받는 그 사람이 보인다. 모두가 그 사람을 위로하고, 때로는 함께 분노하며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 사실에 잠시 머리를 맞은 듯 띵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사람들이 그토록 그를 옹호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게 내 감정을 사그라들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왜냐고, 그 사람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미지란 한순간에 결정되기도 하는 것이라서, 결정 하나에 사건 하나에 뒤집히기도 한다. 그간의 살아온 삶 따위는 고려할 새도 없이 말이다. 이야기 하나, 긴 삶의 어느 하루만을 놓고 사람들은 진실을 가리고자 한다. 고작 하나만을 놓고 말이다. 그렇게 결정된 진실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편을 들며 프레임을 씌운다.


 당신은 ‘피해자’라는 단어에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되는가?


 그래, 내가 염탐하던 그 사람은 어느 하루에 있어서는 피해자가 맞지만, 내 삶에 있어서 만큼은 그는 피해자일 수가 없었다. 그가 쌓아 올린 그의 나날들을 모두 알기에. 그를 향해 감히 위선이라 칭하고 싶을 만큼이나 나는 그를 원망한다. 나를 향해 날 선 말들을 뱉으며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던 그를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처받고 삶이 무너진 이가 비단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하지만, 그가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순간 그런 사실들은 중요치 않아 지는 것이다. 피해자라는 하나의 프레임이 씌워지며 거기에 걸맞은 이미지들이 그에게 덧씌워진다. 억울함도, 슬픔도 모두 그의 것이 되어버리고야 만다. 그 반대편에 선 나는 그런 것들을 느낄 자격을 박탈당한다.


 사람에게는 ‘인지부조화’를 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상황이 어긋나있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을 인지부조화라고 하는데, 그가 피해자인 동시에 누군가에게 악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무수히 많은 뉴스 속에서, 가해자는 악인이고 피해자는 선량하고 억울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당연시하며 살아가니까.

 그렇게 바로 보이는 프레임에 망설임 없이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옹호하고, 그 반대선 상에 서있는 이들은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한다. 세상에 다신 없을 악인이며 사회악이라 확신하면서. 그들의 이미지는 그렇게 단 한순간에 단정 지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오늘 내가 악에 받쳐 글을 써 내려간 이유는 이 이야길 하고 싶어서였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어느 단어나, 사람이나, 사건 앞에 놓인 프레임을 벗어나 조금만 더 서사를 읽어주길 바라서. 그래서 무작정 단어 하나에 현혹되어 누군가를 옹호하지 않기를 바라서. 그래서 그 모습에 나처럼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누군가가 생기지 않길 바라서.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나는 그에게 악이라도 쓸 것이다. 도대체 나에게 왜 그랬느냐고. 내가 너에게 무얼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네가 어느 여중생의 삶을 처절하게 짓밟고 무너뜨렸던 것처럼, 너는 나 역시도 그렇게 만들려 하지 않았느냐고. 처절하게 그를 원망할 것이다. 나는 더이상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가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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