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파) 침팬지와는 선을 긋게 한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
보통 판타지 소설이라 하면,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기사와 마법사가 각각 오러와 마법을 무작정 난사하고, 우월한 생물학적 완성도를 가진 엘프와 용접만 30년 해댔다고 온갖 성질이란 성질은 다 내는 제조업 장인 드워프, 제 몸뚱이 놔두고 굳이 인간으로 변신해서 다니는 특이 취향의 드래곤 등이 이합집산을 벌이는 광경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론 어반 판타지라고 현대를 배경으로, ‘어린이들의 친구! 흡혈귀를 멸하는 테디베어다!’를 외치며, 진마를 사냥하는 웨어베어(웨어울프가 늑대 인간이라면, 웨어베어는 곰 인간)가 나온다던지, 영국의 전설적인 아서왕이 사실은 여자였고 ‘내 몸은 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뻘소리의 주인공과 함께 성배를 얻으러 좌충우돌한다던지의 경우도 있다.
최근엔 ‘상태창’으로 대표되는, 현실에 게임을 이식하여, 캐릭터들의 성장을 게임 레벨업하듯 표현하는 게 트렌드다. 대개 주인공은 그 게임의 ‘고인물’(게임을 하도 많이 해서 온갖 것을 섭렵한 인간)로, 나 혼자만 아는 꿀팁을 모조리 독식하며 내로남불의 전형을 보여주는 게 특징인데, 한때 유행했던 ‘먼치킨 소설’의 새로운 변용이라 하겠다.
중세도 나왔고, 현대도 나왔는데, 먼 옛날이라고 못 나올 건 뭔가. 특히 문자 하나 제대로 있지 않은 역사의 저 너머, 유골과 유적 등으로만 당시의 전모를 그려내야 하는 선사시대는 한 점의 모자람 없는 판타지 그 자체라 하겠다. 그래서 2018년에 개봉한 영화 ‘알파 –위대한 여정-’은 여러모로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이 영화는 2만 년 전 유럽, 겨울나기를 위해 부족원들과 사냥에 나섰다가 불의의 사고로 낙오된 소년 ‘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고군분투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원시인치곤 걸친 게 현대인들의 가죽재킷 같다든지, 굳이 주둔지 근처를 놔두고 몇 날 며칠을 걸어 물소 사냥을 하러 간다든지 등은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자.
옛 지구의 풍경을 장엄하고 아름답게 묘사해 냈다는 걸 빼면, 이야기의 전반은 지극히 단순하고 뭐 없는데, 하나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케다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리에서 낙오된 늑대 하나를 보살피게 되는데, 서로를 경계하던 그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 교감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는 장면이 그것이다.
사냥이 미숙했던 케다는 늑대 ‘알파’의 도움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었고(첫 사냥에 실패했을 때 뭔가 한심하게 케다를 쳐다보는 알파의 모습이 개그포인트), 엄혹했던 밤의 추위를 ‘알파’를 끌어안으며 이겨낼 수 있었다. 얼어붙은 호수에 빠졌을 때, 사나운 호랑이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등의 역경 또한 알파와 함께였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이후 알파는 케다와 함께 부족으로 들어가는데, 거기서 다섯 새끼를 낳는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 무럭무럭 커가는 새끼들을 보여주다가, 영화는 어딘가로 나아가는 수많은 인간과 늑대들의 실루엣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결국 이 영화가 조명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 인간과 개의 첫 조우가 아니었나 싶다.
이번 이야기는 선사시대에 관한 것이다. 그간 여러 책에서 접해왔던, 그렇기에 파편화되어 갈수록 아리까리 해지, 옛 지구의 판타지를 하나로 묶어 봤다. 단권화해 본다는 소리다. 먼저 원시인에 대한 썰을 푼 뒤, 이들이 지구 곳곳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조명한다. 여기에 네안데르탈 인에 대한 내용도 들어가는데, 비리비리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다부졌던 네안데르탈 인을 제끼고 생태계에서 살아남았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늑대와의 동맹이다.
일개 농사꾼 자식에서 천하인의 자리까지 오른, 우리한테는 이런 개호로 자식이 따로 없지만, 아무튼 일본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소싯적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에게 줄곧 ‘원숭이’로 불렸다. 원숭이 같은 게, 밑바닥에서 일본 열도의 킹왕짱으로 우뚝 서고, 거기에 여자를 어지간히도 밝힌 색욕마인이었던 걸 보면, 인류를 딱 하나로 집약했을 때, 이 히데요시만큼 어울리는 게 없지 않나 싶다.
“우리 인간의 유전자 구조는 침팬지와 98퍼센트 이상이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이 새롭게 찾아낸 1.6퍼센트가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지니게 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 제3의 침팬지, 재러드 다이아몬드
지리학적 접근으로 문명 간 격차를 규명하여 대히트를 친 ‘총, 균, 쇠’의 출간에 앞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제3의 침팬지’를 저술한 바 있다. 이 ‘제3의 침팬지’는 인류를 뜻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사람과 원숭이의 DNA는 93% 똑같았고, 사람과 오랑우탄의 DNA는 96.4% 똑같았으며, 고릴라의 DNA와는 97.7% 일치했다. 침팬지와는 98.4% 일치하는 기염을 토한 바, 히데요시의 별명은 사실 원숭이가 아니라 침팬지여야 했다.
인간이 침팬지와 구별되는 핵심이 이 1.6%에 몰려 있다는 건데,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보다 구체적으로 인간과 침팬지를 이루는 아미노산(단백질의 기본 단위) 중 딱 5개가 다르다고 밝혔다. 그중 2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 하나에 근육질을 만드는 거 하나라고 하니, 엄밀히 다지면, 인간을 천하인,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서게 만든 비결은 1.6% 차이도 안 되는 3개의 유전자에 있는 셈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 DNA의 일부분은 잡동사니라는 것, 사람과 침팬지의 1.6퍼센트 차이 중 적어도 일부는 잡동사니라는 것, 그리고 기능적으로 중요한 차이를 일으키는 유전자는 1.6퍼센트 안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작은 부분에 있다는 게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 제3의 침팬지, 재러드 다이아몬드
그럼 이 1.6%도 안 되는 차이를 좀 더 와닿게 해석할 순 없을까. ‘총, 균, 쇠’에서 영감을 얻어 ‘사피엔스’를 저술했다고 알려진 유발 하라리의 견해를 덧붙여보자.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 하라리가 호모 사피엔스의 급격한 인지 발달을 두고 거론한 개념인데, 그는 우연히 인간에게 유전자 돌연변이가 나타났고, 그것이 인간의 뇌 내부 배선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쳤다고 분석했다. 그때의 결정적 요인이 ‘지식의 나무’다.
이 ‘지식의 나무’은 인간에게 무엇을 선사했을까. 허구를 말하는 능력, 즉 상상력이다. 뻥치는 스킬을 얻은 셈인데, 이 별 거 아닌 것 같은 능력이 사피엔스를 지금까지의 원시인들과는 선을 긋게 했다. 이제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신’을 들먹이며, ‘저 뒷산의 곰은 웅녀라고 하는데, 내 수호신!’이라고 떠들게 됐다. 신화, 전설, 종교의 등장이다. 이렇게 보면 중2병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증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중2병이 무서운 건, 오글거려도 뭔가 뽀대가 나긴 했는지, ‘야 너두? 야 나두!’라며, 주변에 있는 애들이 하나 둘 호응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너도 나도 웅녀 누나가 내 수호신이라며 떠들기 시작했고, 궁극적으로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대규모의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마, 우리가 남이가!’라는 집단의식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통념상으론 무리를 짓는다는 게 그냥 자연스레 ‘모이고 모이다 보니 많아졌다’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론 보이지 않는 한계가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무리를 형성하는 건 잘해야 150명 남짓이며, 침팬지 무리도 20~50마리에 그친다. 1백 마리가 넘는 집단은 손에 꼽을 정도. 사실 가만 생각해 보면, 현대에서조차 친목만으로 저렇게 무리를 짓는 건 대단한 일이다. 일단 난 못한다.
아무튼, 이 지식의 나무는 대규모 집단을 형성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는데, 나아가 이것은 인류의 발전 도식을 뒤집는 도발적 주장으로까지 이어진다. 생각보다 ‘종교’가 엄청나게 빨리 등장했다는 건데, 여기에 대한 근거로 제기되는 게 바로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다. 이 선사시대의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9,500년으로 확인되는데, 통설대로 하면, 이때는 농경이 시작되기 전이라 대규모 집단이 없었어야 하는 수렵채집인의 시기다.
괴베클리 테페를 건설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 무리와 부족에 속한 수천 명의 수렵채집인을 오랫동안 협력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런 노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세련된 종교나 이데올로기 시스템밖에 없다.
-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기존의 ‘수렵채집 → 농업발견 → 정주사회 → 종교형성 → 국가등장’에서 ‘수렵채집 → (종교 형성) → 농업발견 → 정주사회’로 바뀌는 혁신은, 인간이 먹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앙을 위해 모였다는, 어찌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타이틀에 썩 어울리는 전환이라 하겠다. 밥 때문에 모였다고 하면 모냥 빠지는 일 아닌가. 그리고 이게 고작 3개의 유전자 때문이라는 게 새삼 신선하다.
그럼 왜 갑자기 바뀐 걸까? 왜 갑자기 지식의 나무가 생기고, 왜 갑자기 뇌내 배선의 변화가 생긴 걸까? 이에 대한 건, 마찬가지로 ‘총, 균, 쇠’에서 영감을 얻어 ‘사피엔스의 식탁’을 저술한 인제대학교 명예교수 문갑순의 견해를 덧붙여보자. 식품영양학이라는 전공에 걸맞게,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빅히스토리로서 인류의 식생활을 긴 호흡으로 풀어냈다.
주목하는 부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 하빌리스 → 호모 에렉투스’. 어릴 때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최초의 인류, 하빌리스는 최초의 도구 사용, 에렉투스는 최초로 불 사용’ 등 도표로 짧게 요약된 것만 보고 가서, 재미도 없고 지루했는데, 이 ‘사피엔스의 식탁’에선 참 재밌게 읽었다. 저 도구와 불의 사용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소화에 쓰이는 에너지를 아껴 뇌로 에너지를 몰아줄 수 있게 만들었다.
고인류는 직립보행을 했다는 점 외에 침팬지나 고릴라 등의 유인원과 두뇌의 용량, 두개골, 치아형질에서 크게 차이가 없었다. 이빨의 구조 때문에 유인원처럼 입이 튀어나왔고 영양가가 낮은 식물성 먹이를 먹고 소화시켜야 했으므로 창자가 크고 배가 불룩했고 따라서 구부정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 사피엔스의 식탁, 문갑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하빌리스, 에렉투스로 승급을 할 때마다 인간의 뇌용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하빌리스는 피테쿠스보다 1/3 이상 뇌용량이 늘었고, 에렉투스는 하빌리스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뇌는 쓰면 좋긴 한데, 비싸다. 인체의 2%인 주제에 에너지는 20%를 쓰고 있으니. 무슨 데이터센터인 양 에너지를 흡입하는 이 하마를 감당할 수 있게 해 준 게 바로 식생활의 개선, 육식과 화식(火食)을 통한 음식의 질 개선이다.
영국 런던대학교 인류학과 레슬리 아이엘로와 피터 힐러 교수는 인간이 큰 뇌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음식의 질 개선으로 창자가 짧아졌기 때문이라는 ‘비싼 조직 가설’을 주장했다. 육식은 동일한 양으로도 더 많은 에너지를 얻게 했고, 불로 먹거리를 익혀먹는 건 소화에 부담을 줄여, 굳이 기존과 같이 큰 장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게 했다. 뇌만큼 에너지 부담이 큰 장의 축소는 뇌에 에너지 몰아주기를 가능케 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순간, 뇌내 배선에서 환골탈태를 끌어내지 않았을까.
유명한 전략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브실골과 다이아, 마스터 간에 현격한 갭이 드러나듯 뇌의 티어 상승(승급)은 그들의 삶에서 강렬한 변화를 일으켰다. 하빌리스가 육식을 했을지라도 어디까지나 죽은 동물을 헤집는 청소부에 불과했다면, 에렉투스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사냥꾼 테크트리를 타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슐리안 주먹도끼로 대표되는 보다 정교한 무기를 만들었고, 자신들만의 언어로 본격적인 협동 사냥에 나섰다.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이 마스터 티어의 에렉투스가 한번 더 도약하여 나타난 챌린저 티어다. 사피엔스는 에렉투스보다 더 정교한 도구를 썼고, 에렉투스에겐 없는 뻥치는 스킬로 대규모 집단을 이뤘다. 이것은 전 세계로 사피엔스로 뻗어나가는 근간이었고, 지구 곳곳의 대형 포유류가 멸종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알파 –위대한 여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들은 자신이 몸빵이 되어줄 늑대와 동맹을 맺어 극강의 사냥팀을 꾸리는 데 성공했고, 이것은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단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