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파) 알면 알수록 똑똑했던 우가우가 조상님들
지금까지의 포커스가 인간 내부에서의 도약에 있었다면, 이제부턴 외부로 넓혀 조상님들이 지구에서 어떤 분탕질을 치고 다녔는지를 살펴보자. 일단 지구 탄생에 있어 가장 유력한 가설인 거대충돌설로 시작하자. 이게 가설인 이유는 충돌한 행성의 흔적을 찾을 방법이 없어서(...). 그거 알자고 지구 맨틀 밑까지 들어가 볼 순 없잖아.
46억 년 전의 원시 지구는 그 어떤 생명도 있을 수 없었다. 4시간마다 한 바퀴씩 자전했고, 표면에는 용암이 들끓었다. 하늘에서는 위험한 태양풍이 휘몰아쳤다. 그 지극히 테토남(상남자)스러웠던 지구가 변하게 된 건, 테이아라는 원시 행성과 충돌하게 되면서다. 왜 누구든 짝이 생기면 말랑말랑해지지 않는가.
이 격한 스킨십은 세 가지의 반대급부를 낳았다. ▲지구 내부에서 대량의 가스 등이 터져 나와 최초의 대기를 형성하였고, ▲테이아의 핵이 지구의 핵과 융합하여 지구에 태양풍을 막는 자기막이 생성됐다. ▲나머지 충돌의 부산물들은 하나로 뭉쳐져 달이 되었는데, 달은 지구의 자전을 지금과 같이 늦추는 등 테토남의 에겐화(여성화)에 일조했다.
보통의 러브스토리에서도 난관을 헤쳐나가야 진정한 트루 러브로 진일보하는 바, 원시 지구와 테이아에도 대규모 혜성 충돌이라는 시련이 닥쳤다. 혜성 무리의 막대한 얼음은 지구의 대기와 마찰하여 엄청난 비를 만들었고, 지구 지표면의 70퍼센트는 물로 덮이게 되었다. 사랑이 결실을 맺을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푸른 바다 위에서 오랫동안 대륙은 붙었다가 쪼개졌다 꽁냥꽁냥을 반복했다. 대륙 아래 판의 이동 때문이었는데, 그러한 판의 변동은 대륙의 이동과 더불어, 산맥과 협곡 등 다양한 지형지물을 만들었다. ‘대지구대’라는 단층 함몰지형(양쪽이 계단 형태로 된 협곡) 또한 그 일환이었고, 그중 동아프리카의 대지구대에서 한때 최초의 인류로 알려졌던 ‘루시’라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발견됐다.
지금이야 ‘루시’(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앞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 등이 발굴되어 ‘최초의 인류’라는 타이틀을 내려놔야 했지만, ‘루시’는 여전히 높은 위상을 가진다. 그 유골이 잘 남아 있어 당시 인류가 직립보행을 했다는 걸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즈음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우리네 조상들이 점차 땅으로 터전을 옮기는 과도기적 양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럼 왜 갑자기 나무 위에서 잘 살다가 땅으로 내려갔을까. ▲‘사피엔스의 식탁’에선 빙하기 등의 기후변화로 인해 울창한 아프리카의 삼림이 초원으로 변했고, 그로 인해 고인류의 일부가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오게 되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에선 좀더 구체적인 이유를 더했다. 앞서 말한 동아프리카 대지구대가 습한 적도 서풍을 막았고, 그것이 아프리카 동쪽을 건조케 한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동서로 나뉘었고 대지구대'라고 부르는 거대한 협곡도 생겨났다.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적도 서풍이 바로 이 대지구대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이후 대지구대 내부에서 풍요롭던 삼림이 초원으로 탈바꿈하는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적도 서풍이 닿지 않는 대지구대 동쪽에서 건조화가 진행된 덕분이었다. 전문가들은 바로 그 초원의 숲을 누비던 유인원이 인류로 진화했다고 추정한다.
-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나무 위에서 열매 따먹고 살던 고인류에게 나무 없는 초원지대는 대격변과도 같은 삶에 직면케 했다. 오늘의 먹거리를 찾아 더 많이 더 넓게 돌아다녀야 했을 것이고, 그 와중에 맹수들은 피해 다녀야 했다. 사족보행은 나무 위에서나 유용한 것. 죽은 동물의 사체를 뒤지는 것도 필연이다. 먹을 게 없잖아. 일단 아무거나 먹고 봐야지. 공교롭게도 안 그래도 추워진 날씨에 고열량 고단백의 육식은 가뭄의 단비였다.
아프리카 동쪽에서 발원한 고인류는 그렇게 식생활의 개선 등에 힘입어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로 거듭났고, 그 개선된 역량에 걸맞게 지구 여기저기로 활동범위를 넓혀나갔다. 호모 사피엔스가 전 세계를 헤집기에 앞서, 호모 에렉투스도 꽤나 지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학교 다닐 때 한번쯤은 들어봤을 북경원인(중국), 자바원인(인도네시아) 모두 호모 에렉투스다.
호모 사피엔스의 지구 정복을 살피기에 앞서, 그 족보(?)의 전반을 한번 짚고 가자. ‘총, 균, 쇠’ 등에 따르면, 600만 년 전, 인류는 유인원과 나뉘게 되었다. 두 종은 직립 여부로 구분된다. 42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가 있었고, 300~350만 년 전, ‘루시’라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있었다. 25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가 나타났고, 17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나타났다.
10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가 서아시아, 유럽, 아시아 등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5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고, 10만 년 전에 이르러, 호모 사피엔스는 현생 인류의 모습과 가까워졌다. 7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나타났다. 5만 년 전,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대약진’이라 명명한 이 시기에 호모 사피엔스는 작살 등 효과적인 사냥도구에 추운 날씨도 이겨낼 수 있는 의류 등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른 생활상을 보였다.
숫자가 크지 않아 별 느낌이 없을 수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지식의 나무를 직면하게 되는 데까지 장장 45만 년이 걸렸다는 게 새삼 낯설다. 사뭇 하긴 돌연변이라는 게 인풋 넣었다고 바로 나오는 아웃풋이었다면, 지금 이 시기에도 엑스맨 마냥 무수한 돌연변이가 판을 치고 있을 것이다. 매그니토는 국가 GDP 증진에 혁혁한 공을 세울 것 같다만.
아무튼 그간 제약되었던 활동범위가 이제 넓어졌다. 4만 5천년 전, 사피엔스는 배를 이용해 호주로 넘어가는 데 성공했고, 2만 년 전, 혹한을 자랑하는 시베리아까지 활동범위를 넓혔고, 이어 지금이야 바다지만, 당시엔 육지였던 베링해협을 건넜다. 그 결과, 1만 3천 년 전 북아메리카에서 ‘클로비스 문명’이 등장했다. 그리고 긴 시간 끝에 인류는 기어코 남아메리카까지 당도하였다.
원래는 이러했는데, `97년 칠레의 몬테베르데 유적으로 인류의 족보 ‘아메리카’ 파트에서 대격변이 일어났다. 몬테베르데 유적은 남미의 남단에 위치해서, 기존의 통념으론 1만 년 전 정도의 것이라야 아다리가 맞는데,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조사한 결과, 1만 5,0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남미에 북미의 클로비스 문명보다 빠른 무언가가 있었다.
For the moment, the majority of anatomical, archaeological and genetic evidence gives credence to the view that people were relatively recent arrivals to the Americas, probably sometime between 20,000 and 15,000 years ago. The current evidence presented here for the Monte Verde area best fits this scenario
- New Archaeological Evidence for an Early Human Presence at Monte Verde, Chile(2015)
그래서 제기되는 게 아메리카 이주가 육로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는 것. 사실 고인류가 북미에서 남미까지 걸어갔다는데, 북미와 남미 사이는 다리엔지협 등 열대 기후로 생태학적 단절이 있었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문명 간 교류 난이도가 극악이었던 것이고, 그래서 아메리카가 유럽에 털린 건데, 선사시대의 클로비스 문명이라고 뭐 다르겠나. 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배를 타고 남미로 들어갔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이유다.
넓게 보면, 이 몬테 베르데 유적이 특이한 건 아니다. 앞서 다룬 바 있는, 인류의 발전 도식에서 ‘종교’의 등장을 확 앞당겨버린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도 있지 않은가. 지금도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는 선사시대의 많은 부분이 보다 분명해진 것뿐이다. 그나저나, 남미에 최초로 온 애들은 누구일까. 일단 배를 탔다면, 호모 사피엔스가 유력할 것이다.
몇 가지만 더 짚고 가자. 앞서 4만 5천 년 전, 고인류가 호주에 상륙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상륙의 규모에 대해, ‘침입종 인간’은 기존의 통념과는 다르게 대규모였다는 주장을 실었다. 50~150명 정도의 어중간한 숫자가 아니라 20배인 1,000명 ~ 3,000명이 시조 집단이라야 1788년 당시 추산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77~120만 명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자 팻 시프먼은 침입생물학의 ‘10의 법칙’을 덧붙였다. 전체 종의 불과 10%만이 영역 확장을 시도한다. 이중 10%만이 야생으로 이동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다시 10%만이 자생하는 개체군으로 자리 잡는다. 최초 집단이 1,000명이라면, 100만의 10%, 10만 명이 본래의 거주지에서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이 정도 집단의 이동이라면,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신들이 갖춘 역량을 총동원하여 움직였다고 봐야 한다.
앨런 윌리엄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교수는 이처럼 다수가 집단으로 이주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의도적으로 이동했고 물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보여준다며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한 가족이 뗏목을 타고 표류하다가 우연히 떠내려온 게 아니다. 이들은 의지를 가지고 이동하고 탐험했다.”
- 침입종 인간, 팻 시프먼
이미 4만 5천 년 전에 굉장히 빼어난 항해술을 갖췄었다면, 1만 5천 년 전, 배를 타고 남미에 들어가는 것 또한 아주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북미에 다다른 뒤, 거기서 배를 타고 남미로 내려갔든, 남태평양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남미로 들어갔든 간에 말이다. 물론 연안 항해설은 베링 이주를 보완해 주는 학설로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태평양 이주설은 아직 멀었다는 건 차마 안비밀.
호주와 아메리카에 자리 잡은 고인류는 그 일대의 나와바리(구역) 정리에 들어갔고, 그 결과 유감스럽게도 그 일대의 대형 포유류가 씨가 말라버렸다. 이 대형 포유류의 부재를 놓고, 기후에 멸종했다는 주장과 인류가 학살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총, 균, 쇠’는 학살설의 손을 들었다. 기후변화가 한 번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한 큐에 쓸어버릴 순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남북아메리카 거대 동물군의 멸종에 관한 기후설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의 경우와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다. 남북아메리카의 대형동물들은 이미 22회에 걸친 빙하기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 그런데 인간이 정말 무해했다면 왜 하필 23회에 와서 대부분이 멸종하게 되었을까. 어떤 이론이 옳든 간에 나중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가축화할 수도 있었을 대형 야생 포유류 종의 대부분이 그렇게 없어지고 말았다.
- 총, 균, 쇠, 재러드 다이아몬드
아시아와 아프리카와는 달리, 아메리카와 호주의 대형 포유류들은 씨가 마른 것에 대해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포유류들의 경험 부족’을 꼽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선 오랫동안 인간과 투닥투닥거려 봤기에, ‘아 이놈은 보면 튀어야 한다’는 걸 체득하게 되었지만, 아메리카와 호주에선 그 몇백만 년 쌓인 경험이 없었다. 거기다 그 시기의 고인류는 생태계 허접이 아니라 사냥 스킬이 극에 달한 이들. 추풍낙엽일 수밖에 없었다.